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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24. 2024

엄마의 마음으로 지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 나를 힘나게 하는 한마디는...

  출장가는 길,하이톡으로 날아온 학부모님의 따듯한 문자가 내 마음을 데웠다.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의 마음이라. 그 문장이 내 가슴 속에 콕 박혀 들어왔다.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내 마음 속엔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 1학년 학부모이자 4학년 담임교사. 그래서인지 올해 맡은 아이들에겐 선생님이자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 생활지도를 하거나 수업을 할 때마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면 어떻게 지도하는 게 좋을까? 엄마의 입장에선 선생님이 어떻게 반응하거나 지도해주면 좋을까 겹의 눈으로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


 매해 학년과 반이 달라지는 교사라는 직업. 매해 달라지는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 지 고민하는 건 매해 머리 아픈 숙제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학기 시작 첫날에 어떤 교사로 아이들을 맞이할 지 늘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마음 속에선 두개의 자아상이 대립하게 되는데 바로 엄격한 선생님이 되느냐, 친근한 선생님이 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교직에 첫발을 내딛은 24살 새내기 교사시절, 나는 각슴엔 교사라는 부푼 꿈을 안고, 머릿속엔 교실에 차분히 앉아 나를 기다릴 천사같은 아이들을 그리며 설레는 첫 발을 내딛었다. 첫날 담임 소개시간에 나는 ,첫제자인 5학년 아이들을 향해 밝디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너희와 띠동갑이니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친구같은 교사가 될거야. 너희들도 선생님을 친구로 편하게 대해주렴”


 그 말을 내뱉은 이후 포근한 교실이 될 거라는 내 예상과는 영 딴판으로 교실 분위기가 흘러갔다. 하루가 다르게 난장판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가슴에 가시가 걸린 듯 숨이 턱 막혀왔달까. 친구같은 교사가 아닌 그냥 친구인 교사. 권위도 규칙도 존재하지 않고 늘 삐꺽대던 교실. 아이들을 향한 훈육은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늘 내 말은 소란스러운 교실 어딘가로 먼지처럼 흩어지곤 했다. 마침 반에 유명한 장난꾸러기 남자아이 둘까지 있어서 나는 거의 매일 눈물을 쏟으며 학교를 다녔고, 아이들에게도 그저 한해를 자신들의 등쌀에 못이긴 안쓰러운 교사로 마음 속 한켠에 남았을거다.


 그 해를 반면교사 삼아 다음 해 5학년 담임을 맡아 들어간 첫 날.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엄한 표정과 검은 색 자켓을 입고 아이들을 맞이했다. 첫날의 싸늘한 분위기때문인지 아이들은 내 앞에서만큼은 얼음이 되었다. 그 덕분인지 학급 규칙도 잘 지켰고 선생님말이라면 철저히 듣는 등 작년과는 사뭇 다른 정돈된 분위기의 평온한 교실이 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 그렇게 보낸 일 년은 행복하지 만은 않았다. 마음 한 켠 내어주지 않는 엄격한 교사가면을 쓴 나는, 아이들과 내포형성이 되지 않아 교실엔 늘 차가움이 감돌았고,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사고를 치며 크고 작은 소동을 만들며 서로 얼굴을 붉히며 암울하게 학기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온탕과 냉탕을 오간 2년 후,나는 엄한 선생님과 친근한 선생님 그 사이 어딘가를 애매하게 왔다갔다하며 12년차인 지금껏 교직생활을 아슬하게 이어오고 있다. 작년엔 두 아이를 낳고 복직한 첫해라 뭣도 모르고 정신없이 한 해를 보냈고, 올해는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며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첫날을 맞이했다. 수업만 가르치는 머리쓰는 교사가 아닌 바로 마음도 함께 써주는 그런 교사 말이다.


 첫 아이가 1학년 입학 후,쳇바퀴 돌듯 도는 학원스케줄로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곁에서 지켜보며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학원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야기 나누어보기도 하고, 잠자리 들기 전 아이에게 읽어준 책 중 괜찮은 책들을 골라 아침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반아이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수업 전엔 늘 스트레칭과 심호흡으로 아이들 마음을 안정시키고,매일 10분 정도 짬을 내어 아이들에게 그날의 기분을 묻곤 한다. 물론 학교업무로 바쁠 땐 생략 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그런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는 편이다. 짬을 내어 그런 속내를 듣다보면 참 다양한 답변들이 나온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엄마한테 혼나고 등교해서 속상한 아이.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 속이 답답하다는 아이. 친한 친구와 놀이터에서 사소한 문제로 싸워서 화해못해 고민이라는 아이. 26명 아이들은 등교길 무거운 가방만큼이나 무거운 고민들을 안고 학교에 온다.


 나도 엄마지만 사실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들어볼 시간도 잘 없고, 학원 후 돌아오면 숙제에 밥먹고 자느라 대화할 시간이 참 없는데 학교에서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면 아이의 마음이 참 가뿐하겠다고. 그런 엄마의 마음으로 반아이들에게 그날의 기분이나 마음을 묻곤 한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참 좋아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건. “해결되지 않았지만 속은 시원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공감해줘서 좋아요”


 집에서는 못하지만 학교에선 편히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의 마음. 학교에서 그렇게라도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고 오는 아이. 내가 엄마라면 참 좋은 활동이겠다는 마음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활동을 하고 오면 어쩐지 내 아이에게도 기분이나 그날의 마음을 묻곤 한다. 반 아이들에게서 내 아이로, 그리고 내 아이에게서 반아이들에게로 가는 선순환의 구조를 이룬달까.


 하지만 다양한 아이들이 존재하기에 평온함과 삐걱댐이 수시로 교차하는 교실이다. 크고 작은 갈등들. 그리고 아이들이 교실에서 벌이는 부적절한 행동들. 나는 그런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을 바로 잡을 때도 엄마의 렌즈를 불러온다. 그 행위를 한 마음은 이해해주되 선을 지키도록 확실히 알려주는 것. 지각을 자주 하는 00이에겐 시간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지각을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써 돌아보게  하고, 평소 욕설을 자주 내뱉는  00이에겐 그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쓰고 바로 잡을 용어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며 단호하게 지도한다. 그 순간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그냥 보아넘길 수 없게 된다. 나도 신이 아니라 몇 번의 지도로 당장은 그 나쁜 습관을 바꿀 순 없지만 꾸준히 이어가면 아이들은 조금씩은 나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학교에는 이렇게 엄마의 마음으로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이 참 많다. 모이면 늘 아이들 얘기, 졸은 수업준비 공유, 수업자료 제작 등 쉬는 시간도 쉬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참 많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유독 교사들에 대한 안좋은 소식들이 연이어 들리고, 일부 교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만 접하고 이렇게 다채로운 빛깔을 내는 교실 속 모습을  그저 잿빛으로만 보는 시선들이 늘어나고 있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더불어 자신의 아이 말만 믿고 교사를 믿지 못해 발생하는 학부모들의 크고 작은 민원들.  그로 인해 점점 아이들 지도에 힘을 잃어가는 선생님들도 많아지고 있다.

 알아주진 않지만 작은 교실에서 많은 아이들과 분투하며 나름대로 그 아이들의 학교엄마 역할을 하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우리 아이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를 가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차피 지도해봤자 안돼. 민원만 키울 뿐이야. 그냥 대충하자. 라는 마음이 아닌 그래도 내가 하는 게 누군가의 마음 속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그런 선생님들. 나는 우리 아이가 그런 좋은 선생님들 아래에서 좋은 영향을 받길 바라는 마음에 나도 더 열심히 지도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무리 팍팍한 교육 현장이라도 한 줄기 희망은 있다. 바로 나의 지도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따듯한 문자.아까 퇴근 후 받은 문자에 나는 내가 허투루 지도하고 있지 않구나, 내가 하는 활동들이 무의미 하지 않다는 사실에 어깨가 솟는다.


 최근 읽은 책 권영애 선생님의 그 아이 만의 단 한사람 이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아이를 변화시키는 데는 선생님 부모 어른 그 들중 한 명이라도 있으면 된다고. 그 한 명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지도하면 그래도 성장한다고. 콩나물 시루에 든 콩에 물을 한 두번 줘놓고선 금방 자라지 않는다고 포기해버리고 물을 주지 않는다면 영영 그 콩나물은 자랄 수 없다고.

 

 나는 학교에서 만큼은 체력이 닿는 한 내 아이를 돌본다는 심정으로 학교엄마로 26명 아이들의 단 한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려 한다. 아이들을 위함이라고 하지만 갈수록 팍팍해지는 교육현실 속 내 마음이 버티기 위해서. 그리고 내 아이가 교육받을 환경은 좀 더 밝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에서.

 나는 이제 학기초 마다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내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을 가진 교사. 그렇다고 내 아이의 마음의 상처만 크게 바라보고 잘못된 행동에 흐린 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일이 있을 땐 누구보다 엄마의 마음으로 따끔하게 바른 길로 인도하는 그런 교사.


 오늘 퇴근 후 받은 한 아이 엄마의 문자로 인해 더 이상 학기 첫날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지."

마음 속에 깊이 각인해본다.


감사한 일: 퇴근 후 받은 우리 반 학부모님의 문자로 인해 교사로서의 자아상을 결정할 수 있게 됨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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