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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y 08. 2024

선생님이 우주라는 아이,힘이 납니다

반 아이들 일기검사를 하며 울컥하는 순간

 얼마 전, 한 아이의 일기검사를 하다가 한 문장에 한동안 시선이 멈췄다. "선생님은 우리의 우주예요" 그말에 갑자기 축 늘어진 어깨가 솟는다. 매 주 한 편씩 쓰는 일기, 요즘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그 마저도 힘겨워 하지만 이렇게 나는 일기를 통해 반 아이들의 마음을 받고 힘을 얻을 때가 많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한자한자 댓글을 쓰며 일기검사를 하는 것에 소홀할 수가 없다.

 요즘들어 무기력하고 힘이 빠지는 하루가 연일 이어지는 중이다. 몸이 힘드니 타오르던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자칭 수업에 있어서 프로열정러인 나, 자나깨나 수업 준비에 어딜 나가서도 이걸 수업에 쓰면 어떨까?고민하는 나는 늘 뇌가 격동하는 상태였다. 쉴틈없이 굴린 탓인지 뇌가 반항이라도 하듯 느릿느릿 움짓이기 시작했다.

 매사 의욕이 없고 푹 빠져들어 하던 수업 준비도 예전같지 않게 힘이 빠진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지친 상태로 스물여섯명의 아이들을 상대하다보면 금새 기가 빨리고 젖은 빨래처럼 늘어지고야 만다.

 학교현장에서 늘 느끼는 거지만 , 학교라는 공간은 늘 평온할 수만은 없는 곳이다. 삐걱댐과 평온함이 수시로 교차하는 순간. 그 순간순간을 교사로서 평온하게 유지하기란 참 버거울 때가 있다. 내가 늘 루틴처럼 하는 아침마다 아이들의 기분을 물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힘겨울 때가 찾아온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얘기하다가 금방 샛길로 빠지며 금새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말싸움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사방팔방 흩어진 모래알을 두 손으로 곱게 모아 다시 예쁘게 정리하는 것도 교사의 몫. 평소라면 예쁜 말로 마무리하지만 어떤 날은 나도 날카로워져 기분을 물었다가 서로 기분만 상하는 경우도 생긴다.

 교사로서 슬럼프가 찾아오는 시기가 가끔 있는데 요즘이 그런 것 같다. 내 나름의 열정을 쏟으며 아이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활동을 많이 하고 싶은데 시간이 흐를 수록 잘 따르지 않는 아이들. 그 과정에서 불만을 표출하는 아이들. 몇 번을 얘기해도 좋지 않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들. 그런 몇몇 아이들을 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잘하고 있는건가? 아이들은 내가 계획하고 있는 수업활동을 만족스러워 하며 잘 따라오는 건가? 이 아이들을 내가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의욕이 꺾이는 순간도 수시로 찾아온다.

 의욕이 넘치는 성격 탓에 학기 초 계획한 일들이 참 많았다.  매일 아침 기분 묻고 나누기, 일주일 두번 세줄쓰기,매일 독서록 쓰기,매일 알림장 감사일기, 수업 중간중간 배움노트 기록, 책에서 읽은 교훈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하브루타로 수업관련 질문 만들기 등. 나의 열정이 전해진 것인지 아이들은 다행히도 잘 따라오고 있는 듯 하지만, 26명의 모든 것을 일일이 검사하고 피드백 하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 눈감아버리고도 싶지만 꼬박꼬박 검사맡으러 나오며 나의 칭찬댓글에 웃음짓는 아이들 때문에 쉽게 놓을 순 없다.

 그리고 매주 주어지는 일기, 초등학교때 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졌던 나는 일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기에 아이들에게 일기는 절대 빼먹지 않게 강조한다. 그 덕분인지 우리반 아이들은 월요일 일기제출날 한 명도 빠짐없이 내는 쾌거를 이룬다. 나는 그런 일기를 검사하며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와 생각에 푹빠져든다.

 처음엔 형식적으로 쓰던 일기가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들의 진솔한 마음이 드러난다. 학교 업무에 지치거나, 수업준비가 막막하거나, 머릿속에 온갖 걱정들이 둥둥 떠다닐 땐 아이들의 일기장을 편다. 아이들의 얼굴을 닮은 손글씨가 빼곡히 적힌 일기장. 나는 26개의 세상을 한 번에 들여다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눈으로 읽고 최대한 정성스레 댓글을 단다.

 하지만 요 며칠 찾아온 슬럼프로 인해 그 좋아해 마지않던 아이들의 일기장 검사도 밀린 숙제처럼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난 한 주는 현장체험학습에, 체육대회에 몸과 마음이 지쳐 좀처럼 일기검사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다 아이들의 채근에 정신차리고 커피 한잔을 홀짝인 후 분홍색 일기장 하나를 펼쳐든다.

 일기장을 늘 성실히 쓰는 이름도 예쁜 우리반 여자아이의 일기. 주제일기였는데 제목은 우리 선생님을 소개합니다였다. 평소 표현도 잘하지 않고 조용한 아이라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던 아이였는데 이런 내용의 일기를 쓰다니 조금 의외였다. 나는 일기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자 한자를 눈에 박는 심정으로 읽어내려갔다.

내가 하고 있는 미덕통장,세줄쓰기,배움노트,독서록, 감사일기에 대한 칭찬의 글이었다. 자신은 이런 활동을 통해 많이 성장한 것 같고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내용. 그 내용을 읽는 데 가슴이 뜨거워져 왔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가 내 가슴을 울렸다.

 "선생님은 우리의 우주이시다. 우리를 위해 많은 것들을 주시는 데 우리는 수업시간에 떠들기도 많이 하고, 보답을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하다. 나는 앞으로 선생님이 해주시는 활동을 더 열심히 하며 보답하려고 해야겠다."

 우주라는 그 한마디에 나는 축 늘어졌던 어깨가 다시금 펴지는 것을 느낀다. 일기 속 그 문장에 지금껏 내 양어꺠를 짓누르던 슬럼프가 일순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문장 사이사이 꽃을 달아주고 싶을 만큼 그 아이가 쓴 문장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나의 애씀을 알아주는 한 아이가 있다는 것. 아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는 한 사람의 어른 만 있어도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해나가듯. 어른도 마찬가지다. 내 애씀과 정성을 알아주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는 한 아이만 있어도 그 어른은 자신이 가진 열정을 더 쏟고자 노력하고, 다시금 힘을 내서 일어낼 수 있다.

 자 , 다시 한 호흡을 고르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겠다. 힘들면 조금씩 강약을 조절해나가며, 대신 아이들을 위한 마음은 놓지 말되, 내 기분도 가끔 물어주고, 너무 무리하지 말기. 그리고 모든 걸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아이의 일기 속 우주라는 문장을 언제든 떠올리며. 그렇게 열심히 한 발 한 발 내딛어가야지.

 아들에게 엄마의 존재가 우주이듯이, 학교에선 선생님의 존재가 우주이므로. 우주가 무너지거나 까맣게 물들들지 않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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