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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y 22. 2024

짜증이 자꾸 날 때는 어떻하죠 선생님?

감정은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이 중요하단다.

 월요일, 책상 위에 쌓아둔 일기를 검사하다 한 아이의 일기장에 시선이 멈췄다. 우리 반에서 달리기를 잘하고 인사도 씩씩하게 잘하고 늘 밝은 표정을 가진 아이. 그 아이의 일기장에서 짜증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니 조금 생소했다.  공책에 반듯한 글씨로 써내려간 그날의 일기는.요즘 이상하게 자꾸 짜증이 많이 난다는 것이다.


 엄마도 요즘 자신에게 짜증을 많이 부린다고 했고, 자신도 그것을 인정한다고. 그날은 딸기 스무디가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블루베리 스무디를 먹으라고 해서 짜증이 났고, 하는 일이 뜻대로 안되어 짜증 또 짜증이 난다고 아이는 문장 첫 시작부터 끝까지 짜증이라는 단어로 일갈했다. 그러면서 문장의 말미에 짜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이 들고 자꾸 짜증만 부리는 자기를 가족과 친구들이 싫어할까 겁이 난다는 것.


 그 일기를 읽고 어떤 댓글을 써주면 좋을 까 골몰하다,머릿 속에 스치듯 지나가는 문장이 있었다. 어제 잠자리 독서에서 첫째 아이에게 읽어준 동화 "나에게 해주는 멋진말 에서 마주한 문장이 생각났다.


"이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마음 속에 이런 말들이 맴돌면 난 말할 거예요."


"시간이 흐르듯 지나갈 거야. 나쁜 기분도 내내 머물지 않아"


 마음 속에 콕박혀 몇번이고 곱씹던 그 문장들. 나는 그 문장을 인용하여 그 아이의 일기장 밑에 정성스레 답글을 달아주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꽃을 박는 심정으로.


 "00아, 짜증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거야.그 감정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멋진일이야.  짜증이라는 감정도 시간이 흐르듯 어느새 지나갈거란다. 억지로 웃으려 억지로 기분좋으려 하지 말고 가만히 그 감정을 내버려두고 지나갈 때 까지 기다려보자"


 일기장을 내려놓고 나도 가만히 생각에 빠진다. 학교에 출근함과 동시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하루. 기분좋게 출근해도 이내 이런저런 상황들로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곤 한다. 갑자기 날아든 업무 폭탄 메세지. 아이들이 내는 크고 작은 소음과 갈등들. 늘 내 마음같지 않은 아이들의 태도. 자꾸 부정적인 말들을 일삼고 수업을 방해하는 여타의 행동들. 그런 것들에 내 마음 속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몇번이고 파도가 커다란 곡선을 만들며 요동친다.


 그 뿐이랴. 퇴근해서도 이어지는 학교 생활의 연장선. 학교에서는 26명의 아이들이, 집에서는 8살,4살 두 아이가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갈등과 소음에 마음 속에 짜증이 불쑥 솟구친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말투도 거칠어지고 남편에게도 별거 아닌 일로 볼멘소리를 내뱉곤 한다. 기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며 감정의 소용돌이에 쉽게 휩쓸리고야 만다.


 그러다보면 짜증,우울,화,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꼭 나인 것만 같아 더 우울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휘감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도 든다. 어서빨리 그 감정에게서 도피하고자 안간힘을 쓰다보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되곤 한다. 산책도 해보고 운동도 해보고 달달한 음료도 마셔보지만 쉽사리 그 감정은 도망가지 않는다. 얼마전 아이가 사들고 온 찐득이 장난감 마냥 내게 철썩 들러붙어 뗼려고 할 수록 더 들러붙는 아주 센 녀석.


 그러다가 마주한 그림책의 한 문장에 머릿 속에 불이 환히 켜진 것 같았다. 감정은 시간과도 같아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흘러가게 마련이라는 것. 억지로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들지 말고 흐르는 물처럼 가만히 바라보면서 내가 왜 그런 감정이 자꾸 드는 지 스스로에게도 질문해보고, 감정을 억지로 굽히려 들지말고 내버려두면서 어서 지나가길 바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조회 시간에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기의 주인공인 아이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챈 듯 유독 내게 강한 눈빛을 보낸다.


 "얘들아, 너희들은 학교에 오면 감정이 하루에 몇 번이나 바뀌니?" 그 말에 맨 앞에 앉은 아이가 답한다.

 “너무 자주바뀌어요.아침에 엄마한테 늦잠잔다고 꾸중을 듣고 학교에 오는 길엔 기분이 나쁘고,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독서록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가, 다른 친구보다 그림을 못그리는 것 같을 때 기분이 축 쳐져요. 그러다가 또 오늘 처럼 급식에서 짜장면이 나오면 다시 기분이 좋아져요"


 마지막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지, 00이의 말처럼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게 감정이야. 늘 기분좋은 감정이 계속 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또 늘 나쁜 감정이 계속 되리라는 보장도 없어.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고 해서 너무 자신을 자책할 필요도 없단다. 또 억지로 즐거우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그냥 감정이 흘러가게끔 가만히 내버려두자.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하며 기분이 나아지면 더 좋고"


 이런 진지한 말을 하는 순간엔 늘 아이들의 눈빛이 유독 반짝이고 순간적으로 26명 제각기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것 같아 가슴이 더워진다.


 아이들을 향해 하는 말이었지만 그건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십번 바뀌는 내 감정. 짜증이 날 떈 짜증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떠올리며 내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또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기분이 좋을 땐 또 나름대로 그 감정을 오롯이 느껴도 보고, 다시 불안이라는 센 녀석이 찾아오면 심호흡 한번 하며 또 그 불안이 잦아들길 기다려보고.


 억지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려들지 말고 조용히 차 한잔 마시고 심호흡하며 그 감정을 밖으로 꺼내어 거울보듯 가만히 바라보며, 시간이 흘러가게끔 내버려두어야겠다.


 퇴근 길, 화장실 한 번 마음편히 가볼 틈없이 정신없이 보내 마음에 먹구름이 들었던 하루. 학교 문 바깥으로 한 걸음 떼니 화창한 날씨가 마음 속 먹구름을 가뿐히 밀어내주었다. 기분이 한결 산뜻해졌다.

 불과 5분사이에도 바뀌는 감정이라는 변덕쟁이 녀석. 하지만 아침에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웃음이 지어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도착한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육아전쟁의 서막이 열릴 것이다. 오늘도 두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파도가 만만치 않으리라.  

 오늘은 마음 속에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를 맞서려고 하지 말고 파도를 즐기는 서핑쟁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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