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May 25. 2024

선생님도,너희들의 밝은 면만 보고 싶어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를 마주하며 드는 생각,그래도 포기하진 않을래


 어젠 그런 날이었다. 뜨거운 가슴을 안고 학교엘 갔다가 차갑게 식어서 퇴근해버린 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한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방과 후에 저희 아이 물건이 부셔졌는데 그게 같은 반 아이가 한 일이라는 얘기가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선생님께서 알아봐주실 수 있을까요?”


평온하던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가슴에 납덩이하나가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물론 12년간 교사생활을 하며, 반에서 스무명이 넘는 아이들을 지도하다보면 별의 별일을 다 겪는다. 무수한 경험에도 불구 늘 이런 전화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교실로 들어가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여느때와 같이 교실로 들어와 가방을 놓고 공책을 꺼내는 아이. 나는 반아이들에게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빈교실로 아이들 데리고 간다.

 나는 이런 순간이 참 싫다. 아이들과 기분좋은 얼굴로 인사하며 아침을 맞이하고, 어제 있었던 즐거운 일들을 물으며 깔깔 웃음을 내며 아이들의 밝은 모습만 마음에 담고 싶은데,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상황들로 인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아이들을 대해야 할때.


다른 아이들과 분리된 공간에서 나와 단둘이 마주한 아이의 표정은 잔뜩 긴장해있다. 나는 차분히 말을 이어가며 그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만 질문한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도 상처가 되므로 절대 강제적인 답변을 말하게끔 하지 않는다.


 나는 말없이 아이의 눈을 응시하고 차분히 답변을 기다린다. 나는 속으로 제발 아니기를. 몇 번이고 간절히 되뇌인다. 10분여쯤 지났을까? 아이의 입이 움찔움찔하더니 작은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그 목소리에 나는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흰 종이를 가져와 있었던 일을 자세히 기록하라고 말한다. 연필로 꼭꼭 눌러쓰며 어제일을 상기하고, 마지막엔 그 친구에대한 사과의 글로 마무리하며 내 임무는 일단락 된다.


 전담시간엔 양쪽 부모님들께 전화를 돌리며 상황 설명을 하고 앞으로 교실에서도 잘 지켜보겠노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서로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여타의 문제를 의논하시도록 찬찬히 안내드렸다.


 물한모금 못마시고 이어진 나의 책무들. 아이의 답변에 속이 시원하기는 커녕, 아침 출근 길 급작스레 얹혀진 납덩이가 두배는 불어난 느낌이었다. 그날따라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해서인지 아이들은 평소와 달리 소란이 잦았고, 체육전담시간엔 몇몇 아이들의 장난으로 평소보다 5분이나 일찍 교실에 올라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늘 마음 속엔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열정으로 꾸준히 지도하겠다라는 신념을 굳건히 지키려던 내게도, 이런 순간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아침부터 좋지않은 사건으로 인해 아이들 조사에, 학부모 전화까지 돌라며 진을 뺀 상황에서 반 아이들까지 어수선해면 순간 이성의 끈을 놓고 싶어진다. 다 놓아버리고 싶달까? 가뜩이나 차갑게 식은 가슴이 얼음장같이 얼어붙게 되는 순간이다.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라 불리우는 교실에선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이 펼쳐진다. 26명의 아이들이 좁디 좁은 교실안에서 펼치는 다양한 세계들. 햇볕 뒤에는 그림자가 있듯이 그 속에도 밝은 면 뒤엔 분명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나는 늘 아이들의 밝은 면만 보고 싶었고, 그 뒤에 숨은 어두운 면은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 앞에서는 잘하고 큰 문제 없던 아이가 방과 후에 욕을 했다던지, 안좋은 행동을 일삼는다 던지 그런 말들이 귀에 흘러들어오면 가슴이 크게 요동친다. 그리고 내 가슴에 한 가득 들어찬 아이들이 스멀스멀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마저 들기도 한다.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는 참 다채롭다. 학교 안에선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고 훨훨 날아가듯, 자유로운 모습을 마구 뽐낸다. 그 과정에서 좋지 않은 사건을 많이 만들어내기도 하고 말이다. 안타까운건 학교안에선 그 모습들을 다 알길이 없다. 아이들의 마음은 투명한 유리병이 아니니까.


  그 탓에 학교에선 나는 밝은 렌즈를 끼고만 아이들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솔직한 심정으론 아이들의 밝은 면만 보고 싶다. 불미스러운 방과 후 사건으로 인해 잿빛얼굴을 하고 아이들을 조사하고 채근하며 훈계하는 일 말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그 일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늘 문제는 생기게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교사들이 상처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예전 경험에 그 과정에서 몇몇 학부모님들은 이의 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아이를 범죄자 취급하냐고. 우리 아이 상처 받는다고 조심해주셨으면 한다고.


  몇년 전, 아직도 잊혀지지 않던 일이 하나있다.

반에서 폭력사건이 있어 “어머니 아이가 그 사실을 시인했어요. 앞으로 그런 일 발생하면 아이에게도 좋지 않으니 같이 잘 지도해서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말했다가

 “시인이라니요, 그 말은 우리애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예요?”

 시인이라는 그 말에 발끈하신 학부모님으로 인해 전화통화가 꽤나 길어졌던 일도 있었다.


 마음이 탈탈털린 나는 그 전화 후 시인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어떤 내용이나 사실을 옳다고 인정하다“

전혀 무리가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시인이라는 말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아마도, 아이의 행동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아이의 밝은 면만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해하며 넘어간 해프닝과도 같은 일이 있었다.


 나도 두 아이의 부모라, 아이들의 밝은 면만 보고 싶은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한다. 얼마전 첫째아이의 휴대폰을 무심결에 보다 부적절한 검색용어가 눈에 띄어 가슴이 철렁했던 때가 있었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밝은 아이인데, 내 앞에서는 애교도 부리고 자기 할일을 잘해내며 따듯한 감사도 말할 줄 아는 아이인데.


 내가 모르는 아이의 어두운 면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가 한 짓이 아닐까? 부정하고 싶었던 순간. 몇번 재차 물음에 아이는 그 사실을 시인했고 알고보니 광고 배너를 따라 한 번 눌러봤다가 호기심에 그 후로도 검색을 해본 것. 절대 안되는 행위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따끔하게 훈계를 했다.지금이라도 알고 대처할 수 있음에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엄마들의 마음처럼 교사인 나도 늘 반 아이들의 밝은 모습만 보고, 어두운 면은 애써 외면하고 그 아이가 한 행동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다. 조사관의 역할은 더더구나 하고 싶지 않다. 그 속에서 불거지는 학부모의 민원과 어수선해지는 학급분위기, 일련의 과정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내 열정들.


  그러다 마주한 문장 하나


삶은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도널드 월시


 인생에서도 늘 밝은 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늘 좋은 일들만 일어나리라는 법은 더더구나 없다. 그리고 사회의 축소판인 교실. 그리고 개개의 아이들은 모두 밝은 면과 동시에 어두운 면도 가지고 있다. 늘 평화롭고 안전하기만 추구한다면 인생에서 닥치는 크고 작은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의 어두운 면을 거울보듯 마주하는 건 참 힘겨운 일이지만 ,밝은 면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그 어두운 면을 과감없이 드러내고 그 어둠의 구렁텅이로 깊숙이 빠져들어가 나올 수 없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적절한 대처를 하고 다시는 반복하는 일 없도록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어른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노란색 안경만 쓰고 세상을 보지 말고 가끔 검은색 안경도 써보며 그 어둠을 제대로 마주하고 대처할 때, 인생은 한 층 성장해가는게 아닐까 싶다.


 나도 이런저런 사건들로 마음이 얼음장처럼 얼어붙고입술이 파리해질때,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삶이 안전지대에서 벗어날 때, 그래도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내 삶을 저해하는 폭풍우에 맞서 굳건히 난간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보자고.


 인생이든 교실에서든. 굳게 새겨야나갈 지혜.


 “얘들아 나도 너희들의 밝은 면만 보고싶어. 하지만 어두운 면도 솔직히 드러내주렴. 나도 너희도 같이 손잡고 난간을 붙잡고 인생이라는 폭풍우를 같이 헤쳐나가자“




  +그날 점심시간 후,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교실로 들어왔는데 반 아이들 몇명이 내 자리 주변을 깨끗이 청소해주고, 책상위엔 작은 간식이 붙은 메세지도 놓여져있다.


교실에서는 늘 그렇게 어둠과 밝음이 반복되며 그래도 평온함을 유지해가는 중이다.

 


*쓰고 싶은 메세지가 떠올라 연재일이 아닌 날에 연재를 했습니다 늘 제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이전 14화 짜증이 자꾸 날 때는 어떻하죠 선생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