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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n 02. 2024

흙없이도 자란 강낭콩에서 얻은 가르침

제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싹은 트고 자란다.

 “선생님 선생님!! 강낭콩에서 잎이 났어요”


아침에 출근해 교실문을 여는데 일찍 온 아이들 몇몇이 호들갑을 떨며 내게 말한다. 나는 무슨 영문인가 고개를 갸웃하다 아이들의 바쁜 손짓에 교탁이 아닌 창가를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엔 솜뭉치 사이로 돋아난 새싹이 초록빛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와 진짜네. 어떻게 이렇게나 자랐지?”


전날 출장으로 축 쳐진 어깨가 생경한 그 광경에 일순 위로 솟아오른다.


 플라스틱 컵 속 강낭콩은 원래 실험재료라 싹틔우는 것만 보고 버릴 요량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과학책에는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요건 중 물의 필요성에 대한 실험이 있다.그 실험은 플라스틱 컵 안에 솜을 말아넣고 강낭콩 두개씩 똑같이 넣은 다음 한 곳에만 물을 주고 , 나머지 한 곳은 물을 주지 않는 대조 실험이다.


  이 실험은 강낭콩을 기르기 위함이 아닌 싹을 틔우는데 물이 필요한지만 알아보고 마무리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물을 준 플라스틱 컵안의 강낭콩이 싹을 틔운 모습을 아이들과 관찰하고 실험관찰에 기록한 뒤론 아이들의 관심의 뒤안길에서 물러났다. 물론 나도 물 한방울 조차 준 적이 없고.


 그 이후 물을 주지 않은데다 양분을 얻을 흙도 없었기에 당연히 말라죽은 줄로만 알았던 강낭콩. 의뭉스럽게도 끈질긴 생명력 덕분인지 떡잎이 나고 그 사이로 본잎까지 나오며 쑥 자라고 있었다. 두 눈으로 봐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아침에 하나 둘 뒷문을 열고 등교하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창가로 모여들었고 , 이내 작은 플라스틱 컵 속에서 돋아난 강낭콩을 둥그렇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모두 입을 모아 신기하다 말하며 눈빛을 반짝이며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 이상하다 나는 한번도 물을 준 적이 없는데... 누구의 손길로 이렇게 자랐지?

머릿속 수많은 의문부호로 가득 찰 무렵,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00이가 쉬는 시간에 물 주는 것 봤어요”


그 말에 배턴을 이어받아 여기저기서 물 제보가 이어진다. 알고보니 반 아이들이 십시일반 강낭콩이 든 플라스틱 컵 안으로 물을 조금씩 주었던 것. 실험이 끝난 후 목적달성을 했기에 그저 실험도구로만 치부해 내 관심밖에선 일찌감치 물러났지만, 아이들의 마음 속엔 단순한 실험대상이 아닌 하나의 소중한 생명체였던 것.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소명을 다한 강낭콩이 혹여나 말라죽을까 노심초사하며 분무기에 부지런히 물을 담아와 물을 주고, 심지어는 자신의 물통에 물을 담아와 말라비틀어지기 직전인 강낭콩에 생명수를 수혈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가만히 그려보니 갑자기 가슴이 더워져온다. 작은 손길들이 모여 강낭콩이 뿌리를 내린 후 안전하게 싹을 틔울 수 있게 도움을 준 것. 아이들의 애정과 관심탓에 질좋은 양분하나 없이도 숨뭉치 속에서 꿋꿋이 자라나 어엿한 자태를 뽐내며 초록빛을 내는 강낭콩 줄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왜 아이들이 그토록 힘을 모아 물을 주며 이 작은 생명체를 살려내려고 했는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언제였던가.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선행에 가슴이 먹먹해졌던 순간이 있었다. 정신없는 하교 시간. 26명의 아이들이 썰물이 빠져나가듯 하교하고 덩그러니 남은 교실은 늘 먼지투성이다. 특히 그날 미술이나 수학 붙임자료를 쓴 날이면 교실 여기저기 종이 조각들이 원망스럽게 흩날린다. 아이들과 내가 나름 교실청소를 하지만 먼지요정이 마법을 부리는지 청소 후 뒤돌아서면 교실 바닥은 먼지뭉치나 종이조각을 다시 슬그머니 내어놓는 과정을 반복하여 내 미간을 좁힌다.


 잠시 고민한다. 수업준비에 밀린 업무처리로 마음이 바쁜 나는 속으로 그냥 놔둘까. 어차피 내일 또 청소할건데 뭐 라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하다 문득. 아침에 등교할 때 지저분한 교실로 들어와 나와 같은 표정을 지을 아이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상상만으로도 고개가 저어지는 그 사실에 나는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나 빗자루를 들고 교실 여기저기 청소를 하며 진땀을 뺀다.

 다음날,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퇴근 후 청소하느라 고군분투했다며 자기 주변 정돈이라도 철저히 하자며 지나가는 말로 툭 내던지고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날,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니간 교실을 둘러보는데 여느 때완 달리 먼지나 종이조각하나 붙지 않은 매끈한 얼굴을 드러낸 교실바닥. 그날따라 아이들이 열심히 청소를 했나 싶어 기특해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을 했었다.

 가뿐한 얼굴로 아침에 출근해 어제는 말간 교실바닥을 보며 선생님이 기분좋게 퇴근을 했다고 아이들에게 칭찬을 해주며 하루를 열었다. 아이들이 평소보다 열심히 청소를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던 말간 교실 바닥의 비밀은 몇 시간 뒤 정체를 드러냈다.


 점심시간 후 교실에 조금 일찍 들어왔더니 우리 반 아이들 몇몇이 모여 교실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자신의 청소구역이 아닌데도 팔을 걷어부치고 땀을 내며 열심히 청소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잠시 충격이 일었고, 그 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음 속 셔터를 꾹 눌러 저장하고픈 따스한 순간이었다.

  강낭콩과 말끔해진 교실바닥은 나도 모르는 새 아이들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만들어낸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훌륭한 그것이었다. 철부지 어린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들. 그 따스한 순간에서 만큼은 나보다 키가 한뼘은 더 큰 어른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것을 잊지 못하며, 그 도움을 준 상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말라죽을 운명에 처한 강낭콩이 자신의 관심과 애정으로 매일 한 뼘씩 자라나고, 선생님 혼자 교실을 청소하며 겪었을 수고로움을 헤아려 점심시간에 교실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며 전에 없이 깨끗한 교실을 만드는 아이들. 아이들은 이런 선행들을 행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관심을 주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몸소 체득했으리라. 그 도움의 손길이 지닌 놀라운 효력을 말이다.


  자신에 행한 선행들을 티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해내며 한 생명을 길러내고 ,먼지로 고통받는 교실바닥을 말끔하게 만들어내는 아이들. 귀한 쉬는 시간을 반납해 자신만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의미있는 일을 기꺼이 해내는 속이 바다같이 넓은 아이들.


 나는 이리도 따스한 가슴을 가진 26개의 강낭콩과 같은 존재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아이들을 보며 나도 속으로 작게 다짐한다. 작은 생명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살려내려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 그 아이들의 사랑과 관심 속, 솜뭉치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싹을 틔우고 잎줄기를 길러낸 강낭콩처럼.나도 솜뭉치같이 답답하고 좁은 교실안이지만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주어 , 교실 속에서 함께하는 마지막 날. 지금 저 강낭콩보다 더 쑥 자라나게 만들겠노라고.


 그런 내 마음이 닿아 우리 아이들이 가슴 속 이 따스함을 간직한 채  어여쁘게 자라나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한 줄기 빛 처럼 위기에 처한 누군가들을 무심히 보아넘기지 않도록 그렇게 교육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당장 학교가서 해야할 한가지 나의 임무.


 “월요일엔 플라스틱 통 대신 화분에 화단 흙을 좀 가져와서 강낭콩을 좀 더 편안한 환경으로 이사시켜 줘야지“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귀한 가르침을 준 이 강낭콩의 생명력에도 감사를 표한다.


 

*수요일 연재일을 지키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일주일 한 번 연재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늘 부족한 제 글 읽어주시고 좋아요 눌러주시는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에 저도 글을 놓지 않고 씁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강낭콩

#생명력

#작은도움의힘

#꾸준한관심과애정이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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