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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n 12. 2024

너희들의 일기에 댓글을 달며,선생님 마음도 위로해

마음일기 검사를 하며 든 생각

 6.7. 금요일 알림장 1번: 마음일기 써보기-요즘 내 마음은?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일기, 이번엔 색다른 미션을 주어봤다. 이름하여 마음일기.. 일기 주제를 내주면서도 너무 추상적이라 어렵지 않을까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가 모험하는 셈 치고 질러보기로 한다. 재미있는 주제도 좋지만 가끔  이런 감성적인 일기도 필요하니까.


 주말이 지나고 돌아온 월요일. 월요일의 시작을 알리는 책상 한 쪽켠에 수북이 쌓인 26개의 일기장. 아이들의 마음을 쏟아 낸 일기장들이 자신들은 할말이 많으니 어서 닫힌 입을 열어달라고 손짓하는 듯 하다. 월요일은 여윳숨 한 번 내볼틈없는 5시간 풀수업이라 일기를 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5교시가 마무리되고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빈 교실. 그제서야 삼켰던 숨들을  한번에 토해내며 일기장에 시선을 옮긴다.


 산타할아버지가 양말 속 어떤 선물을 놓고 갔을까 궁금한 아이의 심정으로 맨 먼저 가장 위에 있는 여름빛을 닮은 연두색 일기장을 펼쳐든다.


 첫 일기장의 주인공은 평소 늘 우렁찬 목소리로 교실문을 열고 인사하는 꽤나 씩씩한 아이.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든 일기장에서 만난 첫 문장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나는 요즘 할게 많아서 힘들다. 그런데 어른들은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게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짜증나거나 힘든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힘든데 말을 잘 못하니까 답답하다“


 평소 나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한다 늘 강조하던 나였기에 아이의 일기 속 그 문장이 내 가슴에 갑작스레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밝은 겉면 안에 어두운 속 마음을 애써 숨기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잠시 저릿해온다.


 마음이라는 게 어찌 늘 긍정적일 수 있을까? 계절이 변하듯 하루에도 몇 번 시시각각 변하는게 마음이라는 녀석이다. 아이에겐 득이 되게하려는 긍정적이어라 하는 말이 상황에 따라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독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 내심 미안해졌다.


 나를 믿고 솔직한 마음을 토로해준 아이. 마음이 힘든 아이에게 어떤 도움의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고심하며 볼펜을 잡아든다.


 “00아, 긍정적이고 싶은 이유는 아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겠지? 선생님도 어렸을 적 세 남매 중 첫째로 자라서 부모님에게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늘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었지. 학교에서 친구 문제로,성적문제로 힘들어도 일절 내색하지 못하고 속울음만 삼킨적도 많아. 그러다보니 내 마음이 멍드는지도 모르고 방치했더니 세상이 온통 검은색으로 보이더라.그때 왜 그랬나 참 후회가 돼“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말하기가 두려운 나머지 마음 깊숙이 쌓아두기만 한다면 누군가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한순간에 폭발해버리고 말아. 그 파편에 너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될 수도 있단다. 압력밥솥에서 조금식 증기를 빼내듯 친구나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힘든 네 감정을 오늘의 일기에서 처럼 차분히 표현하고 털어놓아봐. 한결 나아져서 마음에 낀 검은색이 걷히고 초록빛이 드러날거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과 더 돈독해질 수 있음은 물론이고.


가끔은 너의 힘들고 짜증내는 표정도 보고 싶은 선생님이“


  첫 일기장 검사를 하고 나서 내 마음이 살짝 요동쳐왔다. 학창 시절, 친구문제로 힘들 때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 아이의 일기에 댓글을 써주며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와 다독여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아이를 위한 댓글이지만 어린시절의 내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다음은 은은한 분홍빛 바탕에 토끼 그림이 그려진 일기장. 평소 차분한 성격으로 도통 마음을 잘 알 수 없는 아이의 일기다. 일기장 맨 첫 문장부터가 심상하다.


 “요즘 내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근데 나는 1가지 지킬게 있다. 이런 내 마음을 표현하지 말 것. 왜냐면 나도 모르게 친구한테 짜증을 내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내가 좋다“


  누군가에게 짜증나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그래도 좋다니. 이 아이는 자신의 감정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보는 것이 싫은 착한 마음의 소유자다.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좋다고 마무리 한 것이 못내 다행스러웠지만,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답답함이 머리가 빠지는 행위로 나타나게 두어서는 안되었다. 나는 머리빠지는 일 만큼은 막겠다는 일념으로 급히 댓글을 써내려갔다.


 “00아, 싱숭생숭함이라는 감정이 밖으로 나오지 못해 답답한 나머지 머리빠지는 행위로 나와버렸구나. 얼마나 힘들까. 선생님도 고삼때 수능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심정을 한동안 머리를 뽑으며 근근이 버텨왔단다. 그러다 문득 독서실 책상 위에 머리가 수북이 쌓인 걸 보며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 힘든 마음을 일기에 털어놓으니 한결 마음이 가볍더라. 00이도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두려우면 머리가 빠지게 참지 말고 오늘처럼 일기장을 빌려 내 마음을 자세히 털어놓으면 어떨까? 일기장은 누구보다 네 싱숭생숭한 마음을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다 받아줄거란다.

 너의 풍성한 머릿칼을 보고 싶은 선생님이“


 아이들의 일기장을 연이어 검사하다보니 내가 지나온 학창시절이 하나 둘 떠올랐다. 내성적인 아이의표본이라 누구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게 참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에 서툴어 마음에 멍자욱이 가득했던 그 당시의 나를 위로해주 듯 진심을 담을 댓글을 써내려갔다.


 그 다음으로 내 손끝에 잡힌 파란바탕의 비행기 그림이 그려진 일기장. 비행기 두 일기장에 비해 다소 투박한 글씨로 또박하게 쓴 우리 반 장난꾸러기 남자아이의 일기. 내용은 이러했다. “내 요즘 기분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하지만 형이랑 아빠가 큰 소리를 내며 싸울 땐 내 기분도 같이 우울해지는 것 같다. 그럴땐 내 기분점수가 10점 만점에 3점으로 떨어진다. 형이랑 아빠가 싸울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평소 장난끼 가득한 미소가 인상적인 남자아이의 글에선 외모와 다르게 묵직한 슬픔이 전해져왔다. 자신의 일도 아니고 형과 아빠사이의 갈등에서 전해지는 우울감이 아이의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우울한 기분을 한 스푼 덜어줄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펜을 잡아든다.


 “00아, 형과 아빠사이의 갈등을 보고 들으며 그 속에서 많이 우울했구나. 그럴 수 있어. 선생님도 어렸을 적이 생각나는 구나. 기분좋게 놀다가 부모님이 싸우실 때면 돌연 기분이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었어. 집안에 흐르는 냉랭한 공기가 주위를 에워싸면 나는 세상 가장 불쌍한 사람 같았어. 그 땐 부모님이 어서 화해하기를 잠자코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단다. 어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라 더 슬프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일은 파도가 지나가는 가듯 그냥 조용히 기다리면 돼. 그 감정에 나까지 파묻힐 필요는 없단다. 나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니까.대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묵묵히 이어가며 파도가 잠잠해지길 기다려보자. 그러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가 찾아올거란다“

 

그렇게 아이들이 마음을 담은 일기장을 검사하며 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댓글을 달다보니 손은 아파왔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도 함께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음일기를 써보게 함이 참 잘한 일이구나 싶었다. 겉으로 밝아만 보이던 아이들의 속내를 투명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또 그에 맞는 내 나름의 최선의 처방을 내려줄 수 있었기에. 그리고 하나 더. 어린시절의 나도 다시 돌아보고 위로해줄 수 있어서.


  마음일기 검사 후, 아이들에게 감정을 다룬 이야기인 '감정호텔'이라는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내용은 나 자신은 감정호텔의 지배인이고, 내 속엔 마치 호텔방 처럼 각자 다른 크기와 위치에 살고 있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해있다고.  슬픔은 조용히 기다려주어야 하고, 분노는 누구도 볼 수 없는 작은 골방이 아닌,그것을 분출할 수 있는 큰 방을 내어주어야 한다고. 일기장에 마음을 털어놓은 아이들에게 해준 내 댓글과도 닿아있는 말들이었다.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누구도 보이지 않는 곳에 꼭꼭 숨겨두지만 말고 조금씩 표현도 하고, 그것이 지나가길 가만히 기다려주자는 말.


 장장 3일만에 검사를 마친 일기장을 받은 아이들,  일기장을 조심스레 열어본 뒤 살짝 미소를 머금은 뒤 왁자지껄 노는 친구들에게 섞여 들어가 해맑게 웃고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확신한다. 이번 마음일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투명하게 내보이고 인정하면서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감정의 파도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으리라.

 

 문득 나도 아이들처럼 마음일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을 달아줄 선생님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그러했듯 내 스스로에게 댓글을 달아주면 될일이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늘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의 선생님이지만, 이렇게 선생님이란 직업은 아이들을 거울삼아 보며 스스로를 가르칠 수도 있구나.


꽤 괜찮은 직업이구나 싶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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