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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l 03. 2024

곰돌이 젤리가 내게 준 교훈, 사소한 행복찾기

작은 일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일, 아이들에게서 얻는 지혜

 아침에 아들과 함께 출근하는 길. 여느때보다 표정이 밝은 아들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있어?


"엄마오늘 돌봄교실에서 곰돌이 젤리 간식을 준대, 얼른 학교가고 싶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며 말하는 아이의 작은 입을 보며 나는 살짝 실소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작은 젤리 간식에 저토록 행복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너란 아이는 참. 아이의 미소를 보며 나도 덤으로 행복해졌다.


 곰젤리 하나에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새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요즘의 나는 어떤 일에 행복을 느낄까?“


행복에 대한 책, 강연은 무수히도 많다. 그만큼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으로 귀결되어서 인 것 같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는 돈,명예,성취,명품등 물적인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어른이 되면서 행복이라는 단어에도 때가 탔나보다. 그런 대단한 것들만 떠올리다 보니 요즘 나의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 같다.

 나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행복하겠지? 한껏 부러워하기도 하고, 얼마전 장학사 승진을 한 친구의 남편 소식을 접하며 “승진해서 탄탄대로가 열렸겠구나” 생각하며 내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그리고 갈수록 팍팍해지는 교육현실 속 에서 가끔 나는 이 길이 맞는 건가? 속으로 의문을 품기도 하며 점점 의욕을 잃어가고, 내 존재도 점점 납작해져 가는 것이 느껴져 별안간 슬퍼지기도 한다.

  출근해서는 학교 일에, 퇴근해서는 육아라는 쳇바퀴를 돌며 나만의 시간은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 삶도 행복이라는 단어와 멀어지게끔 하는 중이다. 어제는 분리수거를 하러가다 필라테스를 하러가는 한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른들의 삶이란 아마도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점점 멀어지게끔 설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행복보다는 불만이 가득한 어른의 삶.

 나도 한 때는 작은 것에도 마음껏 행복해하는 어린아이었던 것 같은데. 불현듯 학창 시절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아직도 생생한 그 시절의 기억. 뽀안 먼지를 털어 그 시절의 추억을 눈앞에 꺼내어본다.초등학교 시절, 하교 후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백원짜리 3개를 손에 쥐어주시곤 했다. 손에 든 동전 새개를 짤랑짤랑 거리며 동네 점빵으로 달려가 양파깡, 초코땡, 감자깡 등 300원으로 사먹을 수 있는 과자를 고르던 그 시절. 겨우 백원짜리 세개였지만 어린 내겐 그 동전 세개가 일확천금과도 같이 느껴졌었다.


 오늘은 무슨 과자를 고를까?  사탕을 먹을까 초콜렛을 먹을까? 눈알을 열심히 굴리며 과자매대를 서성이던 그 순간. 그때의 내 기분은 그 어떤 것과도 비할 바가 못되었다. 그렇게 작은 것에도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가슴 벅차던 순간이 내게도 있었다. 아들이 젤리를 기대하며 아침부터 들뜨던 모습처럼.

  어제는 비가 세차게 내려 출근길이 고역이었다. 비오는 등굣길 아이들을 데려다주려고 들어온 학부모 차량, 출근 차량이 한데 뒤엉겨 가뜩이나 좁은 학교주차장이 몸살을 앓았다. 출장이 있어 불가피하게 차를 가지고 왔는데 그날따라 학교 진입로부터가 꽉 막혀있었다. 속에서 불이 화르륵 치솟았지만 심호흡을 하고 겨우 기다려 무사히 주차를 하고 교실안으로 힘겹게 발을 들여놓았다.

 정신없는 주차장 러쉬에 미간을 좁히며 교실에 들어오는데, 아이들의 표정은 오늘 본 아침에 본 아이의 표정과 꼭 닮아있다. 입가에 해사한 미소를 그린 아이들. 무엇이 그리 좋을까 교실을 휙 둘러보다 노란색 시간표에 내 눈길이 멈춘다.

 3교시 체육. 아. 오늘 옆반과 피구경기를 하기로 한 날이었지? 모두들 한 마음인지 등교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그 덕분에 비로 인해 어두침침한 교실이 잠시나마 전구에 불을 켠 듯 환해진다. 좁혀졌던 내 미간이 아이들의 해사한 미소로 저절로 펴졌다.

 아이들은 정말 사소한 것에 행복하고 감동할 줄 아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매일 쓰는 감사일기만 봐도 그렇다. 비도 오고 울적해서 오늘 음악시간엔 오케스트라  악기연주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다양한 악기의 선율로 듣는 영화음악들. 창밖의 비가 초목을 적시는 것 처럼 부드러운 선율이 우리의 마음과 귀를 촉촉히 적셔주었다.

 그날 아이들의 감사일기는 대부분 "선생님이 좋은 음악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이렇게 사소한 행위에 감동받고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로 인해 척박하게 마른 내 마음의 땅이 촉촉이 젖어든다.

 아이들의 사소한 행복을 엿볼 수 있는 감사일기엔 급식이야기도 참 많다. 오늘 좋아하는 카레가 나와서, 핫도그가 나와서. 또는 우유급식으로 요구르트가 나와서 행복하다. 류의 사사로운 글들. 가끔 보면 실소가 터져나오는 내용도 참 많지만 그것을 보며 웃는 나를 발견하면 그것은 결코 사사로운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작은 것에도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 그것은 바로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을 지닌 아이들만이 가진 특별한 재능인 것이다.


 한 해 한 해 나이만 쌓았지 행복한 감정이라고는 쌓아두지 못하는 못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참 감사하게도 반 아이들을 보며 나도 조금씩 행복감을 쌓기 시작하는 중이다. 신기하게도 그 행복감은 전염성이 강한지  아이들의 사사로운 행복에 나도 함께 물들어감을 느낀다. 동시에 어른의 때묻은 행복이 아이들의 맑기 그지 없는 순수한 행복으로 중화된다고나 할까?

 오늘 아침부터 체육을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들은 피구를 신나게 한 판하고 와선 내게 말한다. 선생님이 피구를 하게 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그리고 나도 화답한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아는 너희의 표정과 마음으로 인해 나도 함께 행복해지니 그 또한 감사하다고.


 나도 오늘의 사사로운 행복을 보물찾기 하듯 샅샅이 찾기 시작한다. 아침에 연구실에 왔는데 동료선생님이 내 학습지 프린트까지 함께 해줘서 커피한잔 할 여유를 얻었고, 맛있는 자두를 가지고 오신 선배선생님 덕분에 뚝 떨어진 입맛이 순식간에 되돌아왔고, 아이들이 피구를 할 때 싸우지 않고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른 반에 비해 길고 긴 일기장을 군말없이 써서 검사맡는 아이들.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자리를 팔을 걷어부치고 깨끗이 쓸어내주는 예쁜이들. 아이들과 같은 투명한 행복렌즈를 끼고 하루를 보았더니 화수분처럼 행복한 일들이 솟아났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받은 행복에너지를 장착하고 퇴근하는데 아들에게서 카톡이 하나 날아온다. 돌봄교실에서 받은 젤리 사진.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어릴 적 삼백원을 내고 사온 초코땡 과자를 신주단지 모시듯 품속에 안고 돌아오며 가슴 벅차던 순간을 다시금 겹쳐본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엔 오랜만에 동네 슈퍼에 들러 어릴 적 좋아하던 과자를 사러가야지. 어릴 적 삼백원을 들고 한달음에 달려가던 그 어린 시절 소녀처럼. 그리고 내일, 아이들이 감사일기를 쓸 때 나도 그날의 감사한 일을 적고 또 적어야지.


 행복근육도 단련해야 더 튼튼해지는 법이니까.

  

 

 

아들이 카톡으로 보낸 곰돌이 젤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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