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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n 19. 2024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희들도 그렇다

교실 속 마주하는 아이들의 의외의 순간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초목이 무성한 6월, 벌써 아이들과 함께 한 지 어언 4달이 다 되어간다. 4달이라는 시간동안 같은 교실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아이들과 나 사이의 간극은 점점좁혀지고 있다. 동시에 처음엔 보이지 않던 아이들의 따스한 순간들도 모습도 마치 과일의 속살이 벗겨지듯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인가,아침시간에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 풀꽃의 한 구절을 읽어주고 시작했다.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그전까진 내 마음에 그 어떤 감화도 일으키지 않던 평범한 시 구절이 어느새 마음 속 깊이 들어와앉았다.

아마도 요즘 내가 아이들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 저 시구절과 닿아있기 때문이리라.


 작년에 이어 바통터치하듯 이어받은 같은 학년 반. 아이들만 바뀌었지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그탓인지 나는 한동안 작년 아이들의 그림자에서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정들어버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 올해 만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과격한 장난을 치면 어두운 색 안경을 끼고선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


 교사에게 매해 달라지는 아이들에게 적응하기란 꽤나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첫 아이를 낳고서 100일간은 이아이가 내 아이인가?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처럼. 반 아이들도 그러하다. 어떤 날은 예쁜 행동을 해서 내 마음 속에 폭 들아왔다가도, 다음 날은 아침부터 소란을 피워 저 만치 멀어지기도 하는 그런 날들.


 줄다리기를 하듯 밀고 당기며 아이들과 마음의 거리를 넓혔다 좁혔다 반복하기를 수백번. 6월이 되고 100일이 지나자 이제서야 내 아이들처럼 품 속에 쏙 들어오기 시작한다.


  학기 초, 유독 장난이 심하던 아이가 하나 있었다. 처음이다 보니 어두운 안경을 쓰고 보아서인지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 속에 가시처럼 걸려들었다. 수업시간에 관계없는 말들을 툭툭 내뱉어 분위기를 흐리고,친구에게 기분 나쁜 언어를 쓰며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기도 하고, 아침활동은 거의 내던지다시피 하며 시종일관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종종 내눈에 아프게 파고 들었다.

 서로에게 적응이 되지 않아서 인지 아이도 나도 서로를 밀어내기만 바빴다. 쉬는 시간 험한 말을 해 내게 불려온 아이의 표정은 늘 불만이 서려있었다. 그 표정은 내 마음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감정을 실은 훈계로 마무리되곤 했다. 물론 아이의 행동은 교정되지 않거 다음날 다시 반복되며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를 다시 보게 된 일이 있었다. 과학시간에 강낭콩 심기 단원이 있어 집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아이는 알림장 앱에 열심히 강낭콩 사진을 올렸고, 우리 반에서 강낭콩을 가장 잘키운 아이로 손꼽혔다. 내가 알지 못했던 아이의 의외의 모습에 가슴이 요동쳤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음깊이 감동한 나는 과학시간에 아이를 있는 힘껏 추켜올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까무잡잡한 얼굴 만면에 은은히 피어오르던 아이의 수줍은 미소가 내 마음에 한송이 꽃으로 심어졌다.

 그 이후,아이가 조금씩 달라졌다. 아침에 내내 창밖만 바라보던 아이가 어느새 연필을 들어 독서록을 쓰기 시작한 것. 이런 아이들이 하지않는 행동을 하기 까진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을 알기에 나는 다시 있는 힘껏 엄지를 추켜세워올렸다.

 물론 쉬는 시간에 장난을 치거나 수업시간에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행동이 일시에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 빈도수도 현저히 줄었다. 그리고 잘못을 지적받아 내가 훈계를 할 때도 예전보다 표정이 부드러워졌달까?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듯한 마음이  내 마음에도 전해졌다.

 얼마전 체육시간, 아이의 또다른 면모를 마주한 순간이 있었다. 옆반과 합동피구를 하는데 누구보다 열정적인 몸놀림으로 그 순간에 온전히 빠져들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척척 막아내고, 혼자 공을 차지 하지 않고 옆 친구에게 양보도 하고, 또 상대의 공격을 받고 쿨하게 나가던 모습들. 다시금 내 가슴이 요동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지나가는 말로 아이의 열정을 칭찬해주며 첫 수업을 시작했다. 여전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리고, 내가 몇번 이름을 불러주어야 연필을 잡고 시작하지만 그래도 내가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들, 꼭 해야한다는 것은 다 마무리짓는다. 어떤 아이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이 아이이겐 당연한 일이 아님을 알기에 속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수업을 마무리한다.

  345월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순간순간 아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틈틈이 기록하며 아이에게 숨겨진 장점을 찾아내다보니 마치 풀꽃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흐린 하늘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밝은 햇살이 드러나듯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밝은 면들이 하나둘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침시간에 풀꽃 시를 읽어줄때, 아이들을 바라보고 이런 말을 내놓았다.


 “얘들아 요즘 선생님이 너희를 바라볼때 딱 그래. 처음엔 작년 아이들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며 너희를 밀어내기 바빴는데 요즘엔 자꾸 당기고 싶어져. 네달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지고 볶다보니 너희의 예쁜 면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해. 풀꽃같은 1반. 남은 시간 더 자세히 바라봐줄게“


 앞에서 네번째줄에 앉은 그 아이의 표정이 유독 아련해진다. 3월 첫날 먼산 바라보며 불만이 내려앉았던 어두운 얼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다.


 어느덧 한달앞으로 다가온 여름방학, 바쁜 날들의 연속이지만 아이들을 더 자세히 오래보며 예쁜 순간들을 포착하고 부지런히 기록해나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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