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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29. 2024

책가방을 들어주듯,네 마음의 짐도 덜어줄 수 있다면

 학원가기 힘든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엄마의 위로

 1학년 적응 한달 차, 잘 다니는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어젯밤 내게 가슴이 쿵 떨어지는 한마디를 남긴다.

 "엄마 나 학원가기 너무 힘들어요"

잠자리에서 툭 내던진 한마디는 깊은 진심이 묻어나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렸다.

나는 쉽사리 "그만 둘래?" 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00아, 여태껏 학원 너무 잘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왜그래? 학원을 안가면 서진이가 집에 혼자 있어야해. 엄마가 학교에서 일찍 나올 수가 없거든. 조금만 더 힘내보자. 잘하고 있어 아들"

삐죽이는 입을 짐짓 모른체 하며 아이의 등을 토닥였고 금새 코를 골며 골아떨어진다.

 비오는 아침등교길. 평소라면 오늘의 급식에 대해 쫑알거리며 신나게 걸어갔을텐데,오늘따라 작은 어깨가 더 축쳐져 보인다. 무거운 책가방과 태권도가방때문만은 아닐터. 어제했던 말이 떠올라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00아 힘들면 태권도 학원 그만둬도 돼”


나의 말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다. 막상 끊는다니

그건 아닌가보다.

 “그럼 내일 엄마가 영어학원으로 데리러갈게. 태권도 학원 빠지고 엄마랑 아이스크림먹으러갈까?”


 나의 한마디에 일순 쳐진 아이의 어깨가 불쑥 솟아오른다.


 “엄마 난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얼른 내일이 오면 좋겠다!“

나의 한마디에 숨통이 트인 걸까 . 아이스크림 얘기를 하며 아이 얼굴에 벚꽃이 핀 듯 환해지는 순간.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학교까지 걸어가는 5분 거리. 나는 오늘 가방들어주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책가방 고리를 한 손으로 잡았는데 꽤 무겁다. 이 무게가 20키로 고작 넘는 아이의 양어깨를 매일 누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애잔했다. 거기다 두학원을 오가느라 생기는 피로의 무게까지 합쳐지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학교에 다다르자 누가볼세라 가방에서 손을 놓았고 잠시나마 솟았던 아이의 작은 어깨가 다시 쳐진다. 나도 손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무거운채로 인사를 하고 따뜻한 차 한잔 하러 연구실에 들어갔다. 마침 까만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던 옆반 동료교사가 내게 말을 건네신다.


 “어제 점심먹고 올라가면서 자기 아들 계단 내려가는 거 봤어. 책가방에 태권도 가방 휴대폰을 단 긴 줄을 매고 터덜터덜 내려가는거보는데 마음이 짠하더라”


 그 말에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눈물샘이 툭 터지고야 만다. 아이의 그 모습이 눈앞에 있는 듯 너무도 또렷이 떠올라서. 눈시울이 붉어진 나를 보며 그녀는 조금 당황한듯 하더니 이내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주신다.


 겨우 눈물을 삭이고 교실로 들어간다. 눈물의 안경을 쓰고 들어가서인지 오늘따라 반 아이들의 어깨도 오늘 아침 아이처럼 어쩐지 축쳐져보이고 표정도 기운이 없어보인다.


 9시 종이 땡 울리자마자 나는 우리반 학급루틴인 기지개 펴기와 심호흡을 하고 아침을 열어본다. 문득 아이들에게 오늘의 기분을 묻고 싶었다.


 “얘들아 오늘 기분은 어떠니? 선생님은 오늘따라 조금 피곤하고 기운이 없네“


도미노박수 발표(한명씩 말하고 박수 두번 치며 릴레이로 전체 발표하는 것)로 기분을 들어본다.

 대부분의 아이들의 기분은 피곤하다. 비가와서 기분이 축 쳐진다. 였다. 그 모습들이 꼭 내 아들과 겹쳐보여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선생님 아들이 학원을 다니기가 너무 힘들대. 너희도 그러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볼멘소리들이 터져나온다.

우리반 남자 부회장아이가 입을 삐죽이며

 “선생님 저는 어제 학원다녀오니 9시였어요. 학원이 너무 힘들어서 엄마한테 말하면 그래도 다니래요 슬퍼요”

또 한아이는

 “엄마한테 영어학원이랑 태권도학원이 힘들다고 했더니 태권도만 끊으래요. 전 영어학원이 끊고 싶은데”


 그때, 우리반 장난꾸러기 00이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선생님 저는 학교가 끝나는게 좋지 않아요. 엄마가 매일 늦게 퇴근하셔서 학원 세개에 해야할 숙제가 너무 많아서 마음이 무거워요. 학교에 있을 때가 더 좋아요”

나는 그 아이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위로의 눈길을 건넨다.

  내 말이 물꼬가 되어 여기저기서 학원하소연이 이어졌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너도 그러니? 나도야”라며 맞장구를 치는 모습에서 말 꺼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서 속마음을 꺼내놓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을 통해 아들의 마음을 엿본것 같아 마음이 뭉근해져 온다. 우리 아들도 저런 마음이겠구나 싶어서.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촘촘하게 짜여진 학원스케줄을 소화해내며 숨쉴틈 없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이들은 속에 쌓아둔 학원 스트레스를 밖으로 꺼내놓고 나서 속이 편해졌는지 얼굴만면에 아까의 피로는 걷히고 살짝 웃음기가 맴돌았다.

그때 샤넬이 롤모델이라는 똑쟁이 여자아이가 불쑥 내게 묻는다.


 “그래서 선생님은 학원이 힘들다는 아들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그 질문에 26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서


 “내일 하루는 학원빼고 엄마랑 베00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고 했지!“


그말에 아이들은 꼭 자기일인양 환호성을 터트린다. 좋겠다 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기저기서 아이스크림맛에 대해 신나게 질문이 오간다. 민트초코,엄마는 외계인,슈팅스타. 그날의 수업은 오늘의 기분이야기, 학원하소연, 마지막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짓는다.


 그리고 반 아이들에게도 한마디 덧붙인다.

 “얘들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이렇게 오늘 너희의 힘듬을 반아이들에게 선생님에게 털어놓으며 위로받듯이. 엄마에게도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으렴. 당장 학원끊는 기적적인 일은 생기지 않더라도 최소한 엄마가 그런 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주실테니까. 마음을 알아준다는 건. 그 자체로도 위로가 된단다“


 나의 말에 26개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한다. 나의 말은 반아이들과 동시에 내 아들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나의 말이 지금 2 층에서 1교시 국어 수업 중일 아들에게도 봄기운을 타고 전해지기를 바라며 1교시를 마무리한다.


 오늘 아이는 어떤 기분으로 하루를 맞이했을까? 아침에 던진 나의 말 한마디에, 방금 우리반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꺼내고 위안받고 아이스크림얘기로 마무리지으며 웃음꽃을 피웠듯, 내 아이도 오늘만큼은 좋아하는 솜사탕 아이스크림 맛을 떠올리며 기분좋게 하루를 보내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퇴근하면 꼭 말해주리라.


 “엄마가 앞으로 00이가 짊어지고 갈 가방을 대신

들어줄 순 없어도 마음의 가방 속 짐은 덜어주려 노력할게. 힘들때마다 너의 마음 가방 속에 쌓아둔 너의 슬픔. 힘듬. 답답함. 괴로움.피로함. 온갖 무거운 감정들을 언제든 꺼내어놓으렴. 엄마가 최대한 그 감정을 들어주어 마음가방을 가볍게 만들어줄게“


“그리고 내일 학교 한달 적응 축하파티 하자 아들”




*일요일 연재는 쉽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힘을 내어 글을 씁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숨통트는 하루되세요.


#초등학교입학적응한달차

#토닥토닥힘내아들

#학원이힘든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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