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Mar 22. 2024

같은 학교 30살 연하와 사내연애 중입니다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니면 좋은 이유.30살 연하에게 색종이 꽃 고백받다

 정신없는 입학 첫주를 보내고 초등학교 입학 2주차에 접어드니 큰 변화가 생겼다. 하루 평균 10번도 넘게 휴대폰에 찍혀있던 일명 사랑하는 아들 수신통화가 하루 5번으로 ,4층 계단을 열번 정도 오르락내리락했던 횟수가 5번 정도로 줄었다. 그에 비례하여 내 피로와 근심수치도 반이나 줄어들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였던가. 우려와는 달리 아이는 온몸으로 자신에게 닥친 변화를 맞으며 그 속에서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들의 2주간 학교생활을 지켜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4학년사회시간에 지도를 가르치고 있어서일까.

 유치원은 네비게이션. 초등생활은 지도와도 같다는 생각. 유치원생활이 아이에게 네비를 주고 그 네비가 안내하는길을 따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에스코트해주는 곳이라면, 초등학교는 지도 한 장을 주고 방위표로 방향표시만 제시하고  잘 보며 지도 위에 표시된 길을 따라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는 점.


 지도만 가지고 목적지로 간다는 건, 가는 과정에서 잘못된 길을 들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가는 길에 나침반만 잘 쥐어주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한다. 중요한 건 그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엄마가 믿어주고 중간중간 토닥여주는 것.


 지난 한주동안 나는 입이 닳도록 수업 후 아이가 가야할 길을 몇 번이나 읊어주고 귀에 피딱지가 앉도록 반복하며 나름의 나침반의 역할을 해왔다. 잘하고 있어 대단해 라는 추임새와 함께.


 그렇게 한주간 단단한 나침반의 역할을 한 뒤, 2주차엔 배턴을 넘기듯 그 나침반을 아이 손에 쥐어주면서부턴 이제 급식시간에 급히 뛰어가지 않아도 아이는 알아서 자신의 스케쥴을 척척 소화해나가고 있었다.

그런 아들 덕분에 내 마음에 무겁게 내려 앉았던 돌덩이의 무게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지난 주 수요일,  우리반 아이들을 데리고 점심급식을 먹으러 가는 길. 나는 또 한번 아이와 마주한다. 같은 층의 방과 후 교실로 이동하는 첫째아이,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가까워져오는 아이를 지긋이 바라본다. 이상하게도 지난 번과는 다르게 나를 향해 눈웃음을 싱긋 날리고선 제갈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찰나의 순간 아이에게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우리는 그렇게 유유히 반대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물론 서로 약속이나 한듯 뒤돌아보는 일은 없다.


 방금 본 아이의 해사한 미소를 마음에 또렷이 새기고 가슴이 뭉근해진 채로 급식실로 향한다. 지난 번에 학교에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는 말을 마음에 꼭 새겼나 미소만 띤채 지나가던 아들의 얼굴을 점심시간 내내 그려본다. 이상하게 오늘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점심지도가 끝나고 올라간 교실, 내 위자 위엔 진분홍 색종이 꽃 한송이가 덩그러니 올려져있다. 가끔 반아이들이 편지나 종이꽃을 올려놓는 경우가 있어 나는 아이들에게 “누가 이렇게 귀여운 짓을 했지? 라고 재차 물었으나 끝내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수줍은 한 아이의 서툰 사랑고백이라고 치부하고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종이꽃을 컴퓨터 책상 위에 붙여둔다.


 퇴근 후 최근 추가된 내 루틴인 태권도 버스 차량이 오는 지하주차장으로 걸어간다. 아까 나를 지나치며 눈웃음만 남기고 지나간 아들을 떠올리며 노란버스가 다가오는 것을 반갑게 맞이한다. 평소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태권 기합인사를 하는 아들을 꽉 안아주며 수고했어 사랑해 달콤한 말을 아들의 귀에 흘린다.


 그러다 아들이 한 마디 무심하게 툭 내던진다.


 “엄마 오늘 내가 의자에 선물두고 갔는데 봤어?”

나는 갑작스런 아들의 질문에 당황한 듯 무슨 말이냐 되물으려다 머릿속에 번뜩 색종이 꽃이 떠오른다.


 “아 그거 서진이가 두고 간거야? 어쩐지 꽃이 너무 예쁘다했어. 너무 고마워 아들“


  쉬는 시간에 엄마에게 깜짝 이벤트를 해줄 생각하며 고사리 손으로 정성사레 꼭꼭 눌러접었을 아이를 떠올리니 괜스레 마음이 뭉근해져온다. 이렇게 센스넘치고 가슴 따뜻한 아들. 나는 그간 내 아들을 너무 과소평가해왔나보다. 너무 잘해내고 있는데 나는 학교에서 육아한다는 핑계로 힘들다고 푸념이나 하고 참 못난 엄마다.


 학교에서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신세지만,그런 엄마를 야속하게 생각하기는 커녕 누구보다 엄마의 존재를 작은 가슴 가득 채우고 종이꽃까지 접어 선물하는 내 아들. 너의 존재는 어쩌면 팍팍한 학교생활에 한 줄기 따뜻한 볕이 들라고 신이 선물해준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부터 학교 육아가 아닌 30년 연하와 가슴 설레는 사내 연애를 시작한다.

#초등1학년

#슬기로운입학생활

#학교적응중

#학교육아

이전 02화 난 학교에서 선생님이고 넌 학생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