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상경해 일종의 의식처럼 매해 봄 종로를 찾는다. 지독한 추위가 지나고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3월이 될 즈음엔 세상 만물이 다시 태어나는 듯 온 세상이 신비롭다. 서른 번째 맞이하는 봄이지만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설렌다. 그래서 나에겐 새해가 1월이 아니라 꽃이 피려 노력하는 3월 같다.
담벼락 너머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종로.
담벼락 안으론 몇백 년 전 선조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와 역사가 있고, 밖으론 발자취와 역사를 남기고 있는 내가 있다. 참으로 대조적인 이 상황이 어쩐지 조화롭다. 이 모순이 흥미로워 나는 종로를 자꾸만 찾게 된다.
특히 나는 매해 3월 창경궁으로 향해 홍매화를 향유하며 어떤 한 해를 보낼 것인가 생각해 본다. 몇 해 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보니 새삼.. 뭉클하네(23년 사진은 없군)
종로를 찾는 두 번째 이유는 많은 미술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골목을 따라 걸으면 다양한 갤러리가 나온다. 개중 나는 국제갤러리와 PKM갤러리를 가장 애정한다. 억지롭지 않은 큐레이션과 담담한 작품들이 많이 담겨있다. 책에서 말하듯 오랜 시간을 머물게 하는 드문 작품들을 더럿 발견하곤 했다.
국제갤러리에 3년 만에 열린 하종현 작가 전시.
작가의 대표 연작인 접합은 1970년부터 이어 오고 있다. 난 성실함과 꾸준함을 최고의 재능이라 본다. 55년 동안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삶이란 대체 어떠한 삶일까? 시간과 노력이 비례하게 모이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는 가히 무너지지 않는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을 내가 그 무엇보다도 존경하는 이유다.
같은 주제로 구성된 연대기성 작품들을 감상하는 하나의 재미는, 시간에 걸쳐 다뤄온 작가의 작품 세계의 현주소를 조망할 수 있다는 거다. 접합이라는 주제로 50년 전 창조한 배압법의 형태는 고수하되 색채를 더하는 등 기법은 달리하며 변주되는 작가의 탐구를 흠모할 수 있다.
25년도 어김없이 봄을 맞이하는 나의 의식을 치렀다. 올 한 해도 여전히 현명하고 다정한 어른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스쳐간 혹은 내 옆에 머물고 있는 모든 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새로 찾아드는 인연에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