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는 자른 귀를 누구에게 주었을까요?
23년 5월
용감했던 나는 미술을 위해 파리로 떠났다. (참고: 프랑스 미술 여행기)
눈 깜짝할 새 스쳐가는 순간을 빠르게 담아내는 인상주의에 매료되었고 그 중 가장 따뜻했던 '르누아르-시골에서의 춤'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다 우연히 고흐의 작품 앞 수많은 한국인들을 발견했다.
유난히도 경쾌한 한국어가 들리길래 발길을 멈추었더니 고흐의 작품 앞이었다. 나도 용기내 사진을 부탁했다.
한국인들은 왜 고흐를 사랑할까, 궁금증이 생겼고 안시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고흐 생애를 담은 영화를 보고서는 어렴풋 답을 얻었다. 고흐의 인생에는 처절한 스토리가 있었고, 살아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는 애처로움 때문일 것이라고.
그런데
내가 본 영화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고흐의 생애가 모두 각색된 거라면?
익히 알려진 것처럼 고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그림에 과도한 열정을 가진 괴짜였다면? 그가 면도기가 아닌 칼로 귀를 자른 거라면? 고흐는 자른 귀를 과연 누구에게 주었을까? 미스터리의 여인 라셸? 반 고흐가 자른 것은 귓불이었을까, 아니면 귀 전체였을까?
반 고흐가 아를에 머물 적 가장 가까웠던 친구 조제프 룰랭이다. 나는 이 그림이 반 고흐 그림 답지 않게 따스해서 무척이나 놀랐다. 생각해보면, 나는 반 고흐가 폴 고갱과 잦은 다툼을 유발한 성격 이상자에다가 본인의 귀를 직접 자를만큼 정신 질환을 앓은 괴짜 중에 괴짜라는 배경 지식을 알고서 고흐의 그림을 봤기 때문에 고흐의 그림을 단 한번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본 적이 없다.
선입견이 이리도 무섭다는 것을, 그리고 알고 봐도 재밌고 모르고 보면 더 재밌는 것이 미술이라는 것을 한번 더 느꼈다.
1888년 12월
프로방스의 어느 어두운 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랐다. 이 행동은 그를 상징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 세기 이상 전기 작가들과 역사가들이 그날 밤 일어난 일에 대한 결정적 사실을 찾고자 했으나 대답보다 의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작가 버나뎃 머피는 그날 밤 아를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그 사건을 밝히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녀의 흥미진진한 7년 간의 수사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내가 사랑하는 두 가지, 본업인 사업 개발과 미술사이의 공통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두 영역 모두 탐정과도 같다. 사업 개발에서는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철저한 리서치와 대담한 가설이 필요하다. 또 시장과 고객, 파트너사와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키를 포착하고, 트렌드를 읽어내는 과정은 마치 사건의 단서를 하나씩 맞춰가는 탐정과 같다.
미술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시대적 배경, 작품의 크기와 도구, 소재, 작가의 생애까지 퍼즐처럼 조각을 맞춰야 한다. 한 겹씩 벗겨낼수록 작품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이해의 기쁨이 커진다.
사업과 미술, 두 세계 모두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찾아내고, 단서를 조합하며,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탐정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왜 어떤 작품은 걸작으로 남고, 어떤 예술가가 거장으로 기억되는지 생각해보았다.
예술이란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걸작의 평가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 제각각인 사람들의 취향 사이에도 유독 주목받고 인정받는 예술가가 있다. 우리가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작품은 어떤 전략이 있을까?
전략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고흐는 사후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한 작가일 거다.
생전에는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사후에는 제수씨였던 요하나의 노력으로 거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요하나는 고흐를 알리기 위해 고흐와 남동생 테오가 주고 받은 편지를 엮어 책을 출판했고, 이 책은 고흐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만약 고흐가 테오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더라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글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는 인정받는 예술가로 남을 수 있었을까? 생활고와 정신적 고통, 아를로 옮겨 미술에 몰두했던 그의 열정, 이 모든 것을 기록 덕분에 알 수 있으니..! (일기 더 꾸준히 써야겠다 다짐!!)
아직 이 책을 1/3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읽는 동안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해본다.
고흐의 귀는 얼만큼 잘렸으며, 왜 잘랐고, 누구에게 주었으며, 그 의중은 무엇이었는지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덧붙여 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