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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 엄마 Mar 30. 2023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수의사의 의학적 설명과 남은 기대수명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의 조언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꿈에서조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너의 시한부 소식에 나의 머리는 작동을 멈췄다. 무슨 말을,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손 놓고 죽는 날만 기다릴 수는 없으니, 이 병원에서 안 되면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알려 주세요”

나의 첫마디는 이렇게 흘러나왔다.  

장수하는 강아지들처럼 18살, 20살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13, 14살까지는 내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더구나 너는 이제 겨우 9살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동물농장의 노견들을 볼 때면 '우리 뽀도 나이 들어 저렇게 아프면 휴직하고 돌봐야겠다'라고 다짐을 했었다. 가끔 가는 절에서 법당에 절을 할 때면 1순위의 기도 대상은 항상 너였다.  ‘우리 뽀 안 아프고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 주세요.’  나의 버킷리스트 1순위는 휴직을 한 후 너와 함께 국내 곳곳을 여행하는 것과 마당 있는 시골집에서의 한 달 살이다. 네가 테라스에서 실컷 뛰어놀 수 있도록 3년 전에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를 계약했으나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너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이렇게 갑자기 네가 내 곁에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이라도 해봤겠는가? 

눈물은 시도 때도 가리지 못했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눈시울이 붉어져서 화장실로 달려가 입을 틀어막고 울기를 여러 번이다.

자다가 일어나 자고 있는 너를 보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목구멍으로 음식이 안 넘어가니, 영양제라도 맞으러 간 병원에서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이렇게 너는 나의 애간장을 녹아내리게 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1월 혹한에도 퇴근 후 칼바람을 맞으며 미뤄 왔던 산책을 시작했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우리 뽀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기도도 해봤다.


너의 옷장에는 새로 사서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몇몇 옷들과 여름에 수영장에서 입을 구명조끼가 보였다. 나의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는 아직 디자인과 색상을 고민 중인 너의 모자도 있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이제. 너를. 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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