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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 엄마 Apr 14. 2023

수술을 못 한다구요?

연이은 부동산 규제로 부동산 거래 절벽, 냉각기, 빙하기는 이미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문제는 아파트 가격이 졸지에 폭락했고 그 피해를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나의 현실이었다. 새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내 집은 안 팔리는 상황이니 억지 춘향을 해야 했다. 태풍이 몰아치듯 나의 주머니 돈도 빠져나갔다.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이사가 진행되었고, 너를 위한 새로운 미용실과 병원도 개척해야 했다.

새로 간 동물병원에서는 귀 상태가 심각해서 외이도 수술을 해야 한단다. 이사 전 수년간 다녔던 병원에서도 잦은 가려움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귀 치료를 받았으나 수술 얘기는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제3의 병원 진단이 필요했고 2차 동물병원을 방문했다. 외이도 수술에 대한 설명과 부작용, 수술을 안 했을 때의 징후 등을 들으면서도, 나는 수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만 쏟아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전신마취 후 CT 촬영을 하기로 했다. 2년 전 허리디스크 수술 시 부신이 정상 사이즈보다 약간 크니 1년 후 검사를 해보라는 수의사의 말이 생각나서 함께 촬영하기로 했다.     

 

검사 후 수의사는 파랗게 질린 얼굴이었으나 담담하게 설명해 나갔다.

‘외이도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이도 수술을 안 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다. 부신의 정상 크기가 0.6cm이나 뽀의 부신은 4cm 이상이라 악성종양의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큰 사이즈도 혈관 침습만 없으면 수술이 가능하지만 뽀의 경우 후대정맥 혈관 침습까지 있는 상태라서 수술이 불가능하다.’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악성종양? 혈관 침습? 꿈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단어들에 어안이 벙벙했다.


“수술을 못 한다고요? 왜요?”

"수술 시 고혈압과 저혈압의 반복으로 혈전 제거가 어렵고 과다출혈로 인한 테이블데스 가능성이 50% 이상이라 수술이 곤란합니다. 이 경우 기대수명은 약 6개월 정도니, 그동안 맛있는 것 많이 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술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점점 부신이 커지면서 파열하거나, 혈관이 막혀 급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머리가 하얘지고 말문이 막혔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얘기가 우리 뽀 얘기가 맞는 것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시한폭탄을 안고 살란 말인가? 6개월? 이렇게 따뜻한 체온으로 내 품에 안겨 있는데,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해맑게 잘 뛰어노는데, 6개월이라고?’     

수의사도 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침묵의 시간이 한참 지났다.


“이렇게 손 놓고 죽는 날만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이 병원에서 안 되면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알려 주세요”

“부산에서 가능한 병원은 없습니다. 부신종양 자체가 드물고 더구나 혈관 침습의 경우는 희박하기 때문에 서울, 경기도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것도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논문을 찾아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서울대부속동물병원, 건국대부속동물병원, 해마루동물병원을 추천받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너는 여전히 애교도 부리고 앙탈도 부리고 뽀뽀도 잘한다.

나의 마음은 또 한 번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아니 갈기갈기 찢어졌다. ‘1년 전에 부신 검사만 했더라도’ 내가 죽도록 싫고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나의 선택에 너의 목숨이 달렸다. 어떤 결정을 해야 너를 위하는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수술 중 사망한다면 6개월이라는 시간마저 앞당기는 꼴인데 내가 그 죄책감을 견딜 수 있을까? 

수술을 안 한다면, 6개월 후 너와의 이별을 내가 받아들일 수나 있을까? 

너는 그 엄청난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은 수술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 먼 곳까지 가서 아이를 고생시키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 보란다. 아들은 엄마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 다 해보라고 한다.

 

‘하느님, 저 직장 열심히 다니고 최선을 다해 살았잖습니까? 그래서 바빴던 것도 아시잖습니까? 저 억울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우리 뽀를 데려가시면 저는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무언지 모를 울분에 눈물은 끝도 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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