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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 엄마 May 03. 2023

집으로 가자.

밤새 전화기와의 사투를 벌였다. 

병원에서 전화가 올까 봐 겁이 면서도 전화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전화기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너의 수술 경과가 궁금한 남편과 아들은 번갈아 가며 전화를 했고,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멎는 듯 놀라며 당분간 전화하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그렇게 조용한 듯 한 밤이 지났다.


<수술 2일 차>

너는 수술 후 췌장염으로 밤새 혈변이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걱정이 앞섰다.

아직 마취에서 덜 깬 듯한 표정과 눈에 눈물이 글썽한 로 엄마를 남 보듯이 멀뚱멀뚱 바라본다. 허리 디스크 수술 때도 엄마만 보면 병실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었는데, 나를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닌지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진다. 진통제 주사를 당부하고 면회를 마쳤다.


너를 병원에 두고 나오면서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너의 회복을 응원하며 너를 위한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반짇고리를 샀다. 등에 수액 주사를 맞으니 옷 입기가 불편할 것이란 생각에 똑딱이 단추로 어깨 부분을 고쳤다. 너는 수술 전에 미리 부산에서 미용을 하고 와서, 민둥숭이의 몸으로 회복 중 감기라도 들면 안 될 일이었다.  

내일은 네가 엄마를 알아보고 반기기를 기도하며 또 하룻밤을 보낸다.

      

<수술 3일 차>

혈변은 멈췄으나 구토를 3번 했단다. 수술로 인해 내부장기들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통증이 좀 가라앉았는지 눈에 눈물도 멈췄고, 이제 엄마를 알아보고 뽀뽀도 한다.

이거면 충분하다. 구토는 시간이 지나면 멈출 것이고 네가 엄마만 알아보면 된다. 아직 우리는 서로에 해야 할 사랑이 많기 때문이다.


똑딱이 단추는 소용이 없었다. 수액 맞는 손이 바뀌어 입을 수가 없었다. 대신 너의 최애 인형 곰돌이와 담요를 입원실에 넣어 주었다. 너와 엄마의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기운을 차리길 바란다.

  


<수술 4일 차>

구토는 멈췄는데, 밤새 설사를 6번 했다는 소식에 또 가슴이 내려앉았다.

다음날 초음파 등 검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뿌는 분리불안 증세가 있어 집에 혼자 있는 동안에는 집안 곳곳에 오줌을 다.    

뽀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의 퇴근시간은 매일 밤 10시가 넘었고, 빈 집을 홀로 지켜야 하는 뿌가 걱정되었다. 홈 캠 속의 뿌는 불안한 듯 고개를 떨구고 우울해 보였다. 뿌를 생각해서라도 뽀가 하루빨리 회복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술 5일 차>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은 없으며, 설사는 멈췄고 변은 보지 않은 상태였다.

퇴원 준비를 위하여 수액을 빼고, 주사도 먹는 약으로 변경했다.

병원의 배려로 잠시 외출을 하여 유모차를 타고 인근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쉬도 한번 해 본다.      


우리 아가는, 저녁 면회를 마친 후 한 시간 동안이나 엄마를 찾아 병동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는 기특한 녀석이다.   

   


<수술 6일 차>

일주일 동안 심장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퇴원이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하니 아들 녀석이 마중을 나와있다. 아들은 너에게 '고생했다. 고생했다.'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뿌의 반김은 이산가족 상봉보다 더 눈물겨웠다. 그렇게 기운 없이 쳐져있던 녀석이 우리 주위를 방방 뛰며 뽀뽀를 하고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체 하루 종일 같이 붙어있던 뽀와 엄마가 갑자기 없어졌으니 뿌도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뽀의 퇴원약은 약만 먹어도 배부를 만큼 한가득이다. 하루 두 번 약을 먹고 변도 이쁘게 잘 본다.  



<수술 9일 차>

네가 퇴원 후 밥은 잘 먹는지, 변을 잘 보는지, 컨디션이 어떤지 외과 과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건강하게 잘 회복 중이며, 너를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사실 과장님은 너를 살리셨지만, 더불어 나도 살린 것이다.    

   

<수술 12일 차>

빠졌던 살도 조금씩 차오르고 있다.

이틀 후면 부산 2차 동물병원에서 실밥도 뽑고 수술 후 검사를 하고, 앞으로 건강할 날들만 기대해 본다.

나는 이제 하느님께 약속한 ‘착하게 살기’를 실천할 생각이다.


퇴원 후 꿈만 같던 공원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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