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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 엄마 Apr 03. 2023

굿판이 벌어졌다.

안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기로 했다. 이제 나에게 염치와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다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다.    



몇 년 전 TV에서 거짓 신점을 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거짓을 찾아내는 무속인의 연락처를 저장해 놓았었다. 늦은 저녁 무턱대고 전화해서 울먹였다. “우리 강아지가 많이 아픈데, 살려줄 수 없을까요?” “가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 집안의 나쁜 기운을 안고 갈 때도 있으니,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마세요.”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불쾌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를 타일러 주신다. 그러나 나는 너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각종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에서 ‘부신종양, 혈관 침습’을 폭풍 검색했다. 수술 전부터 수술 후 부작용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 강아지가 건강하게 회복되면 너도 똑같이 회복될 것만 같은 생각에 함께 마음 졸이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완쾌한 후기를 보면서 ‘너도 수술 후 저렇게 다시 산책할 수 있을까?’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를 무속인에게 건넸다.

“뽀가 식복을 타고났네. 그런데 당신이 다음 달에 상문살이 들었다.”

“사람도 병에 걸리면 너무 늦지 않은 때에는 목숨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뽀는 안될까요?”

”힘들겠는데, 이미 사자가 와 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안 됩니다. 살려 주십시오. 이제 겨우 9살입니다.

“수술 날짜가 합이 맞으니, 장담은 못 하지만 일단 한번 해보자. 당신 정성이 갸륵해서 들어주실 란가도 모르겠다.”     


약속 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마음이 급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혼자 덩그러니 굿당에 앉아 있으니 낯설기만 하다. 무속인, 법사님과 함께 도움을 주시는  분이 도착하여 음식을 차리기 시작하고 이윽고 북과 꽹과리가 울리고 법문을 외고 굿판이 시작되었다.



정체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일 하느라 너를 빈집에 홀로 두고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간 것이 후회되었다.

그릇 씻을 시간이 없다며 더러운 그릇에 물과 사료를 준 것이 후회되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산책 대신 집에서 간식 준 것이 후회되었다.

2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 시 1년 후 부신 검사를 해보라는 수의사의 말을 기억하면서도, 바쁘다며 미룬 것이 죽도록 후회되었다. 

    

쩌렁쩌렁한 북과 꽹과리 소리에 어안이 벙벙하고 귀가 먹먹해 왔다.

“병원을 둘러 가나?”

“네, 부산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분당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수술합니다.”

“뽀도 밤마다 운다. 당신한테 고맙단다. 다음 생은 인간으로 환생하겠다.”

“안 됩니다. 살려주십시오. 수술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아직은 너무 어립니다.” 나의 통곡은 꽹과리와 북소리에 파묻혔다.     


“우리 뽀 수술 잘하고 약발 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뽀 엄마가 날마다 웁니다. 뽀 엄마 불쌍하다 여기시고 뽀 살려주십시오. 뽀가 살아야 뽀 엄마가 삽니다. 정성이 지극하니, 정성 받으시고 뽀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굿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너의 건강한 회복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히고 집으로 돌아왔고, 이후 늦은 저녁에서야 굿은 마쳤다.


너의 수술을 앞둔 어미의 마음이 이러했다.

생각해 보지 못한 너 없는 세상이 두려웠다.

너 없이 내가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애달프고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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