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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 엄마 Apr 27. 2023

마지막 밤이 아니길..

수십 년 만의 강추위가 예보되었다.

수술 날 안정을 위하여 하루 전 서울 애견동반 호텔에 묵었다. 이 밤이 너와의 마지막 밤이 아니길 기도하면서 네가 처음 가본 서울의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으나 너를 꽁꽁 싸매고 유모차를 밀었다. 퇴근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너와의 1분 1초가 난 소중했다.


      

너는 멀미가 심해서 해운대 바닷가 가는 것도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여행은 꿈꿔보지도 못했고 집이 아닌 외부에서 밤을 보낸 적도 거의 없었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모른 체, 너와 나는 낯선 호텔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냈다.     

 

눈을 뜨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 9살 인생에 첫눈을 보았다.

눈을 보는 반가움보다 저 눈 속을 뚫고 분당까지 가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너를 병원으로 들여보내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1분이라도 더 늦게 병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주위를 서성이며 눈길을 걸어본다. 이 많은 눈을 네가 밟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수술 날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이내 포기했다.      



수술 중 응급 상황 발생 시 수혈과 심폐소생술 실시에 동의한 후 외과 과장님 상담이 이뤄졌다.

‘뽀는 부신종양뿐만 아니라 총 3곳의 혈관 침습이 있다. 생명과 직결된 2곳의 혈관은 반드시 살려야 하고 신장으로 가는 혈관은 신장과 함께 적출할 수도 있다.

마취의가 수술실에 상주하니 3~4시간의 수술 시간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된다. 수술 시간이 짧은 것은 손댈 수 있는 여지가 적은 것이고, 수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니 오히려 긍정적이다.

대개의 경우 개복을 해 보면 된다, 안된다 판단이 선다. ’   

       

수술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듣고도 나는 연신 엉뚱한 질문을 하고, 나의 입은 통제가 안 되는 듯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한다.

"수술비 신경 쓰지 마시고 할 수 있는 것 다 해주십시오. 제가 대리운전이라도 하겠습니다."

풍전등화 같은 너의 생명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괴로웠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나는 여전히 너를 넘겨주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수술실 들어가는 모습이 마지막이 되면 안 되니, 개복 후 가능성이 적다면 그냥 닫고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이 말이 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했었나 보다.      


“뽀도 어머니도 멀리 부산에서 오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뽀는 종양이 너무 커서 이번 수술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수술 성공을 위하여 모든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이며, 멀리서 오신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마웠다. 이렇게 따뜻하게 말씀해 주시다니, 너무 감사했다.

나는 너를 넘겨주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병원 근처 호텔로 들어왔다.   

   

두통약을 먹고 깜빡 잠이 들었다.

수술 들어간다는 문자를 받은 지 1시간 반쯤 지났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동물병원이다.

“뽀가 혈압이 안 잡혀서 수술을 못 하고 있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오십시오.”

'이게 무슨 이란 말인가?'

영문도 모른 체,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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