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모아 리비지티드
생크림 토스트 무한리필, 꽃그네 없음. 무서운 언니야도 없음
대부분의 또래는 땡모아에 대한 정겨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 경우,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땡모아 방문이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중학생 시설, 나는 시골에서 광역시로 통학하는 촌놈이었다. 민들레 공화국이나 적색 망고 같은 디저트 가게의 존재에 무지했다. 반 친구 슘을 졸졸 따라 처음으로 시내에 있는 땡모아에 갔다.
벽과 기둥에 가짜 덩굴꽃이 휘감겨 있었고, 창가에는 조화와 리본으로 치장된 그네모양의 의자가 있었다.
"저긴 인기 있는 자리라 늘 사람이 앉아 있어."
내측에는 흔들의자와 테이블이 좁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많은 자리에 이미 손님들이 잔뜩 앉아서 알록달록한 과일과 시럽으로 장식된 빙수를 먹고 있었다. 촌놈으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광경이었다.
슘은 자주 와 본 듯, 망설임 없이 메뉴판을 보고 주문했다. 나는 난생처음 앉아 보는 흔들의자를 앞뒤로 흔들며 디저트가 나오길 기다렸다. 곧 먹을 디저트는 메뉴판 속 사진과 같은 모습일까. 주변 사람들이 반쯤 먹어 치운 빙수를 보며 기대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이 "씨발, 뭘 봐." 고개를 돌리며 화를 냈다. 후까시를 잔뜩 넣은 사자 머리.
'좆됐다.'
돌이켜 보면 그 폭탄머리가 나와 동갑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무서운 언니한테 잘못 걸렸다는 생각에 겁먹었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안 봤어요......" 대답했다.
"왜 화를 내는데."
사자머리 맞은편에 앉은 또 다른 사자머리가 씩씩 대는 사자머리를 말렸다.
"저 년이 자꾸 쳐다보잖아, 씨발."
"저거 걍 무시해."
고개를 거듭 숙이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연발했다.
"또 눈까리 돌리기만 해."
매섭게 경고한 사자머리는 다시 자신의 비지니스(빙수 먹기)로 돌아갔다. 화장실 칸이나 으쓱한 곳에 끌려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시킨 디저트가 나올 때까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내 옆 테이블이 신경 쓰여서 뭔가 먹기는 했는데, 그게 뭐였는지 맛은 어땠는지 도통 기억이 없었다.
또 일진을 만날까 봐 무서워서 땡모아를 피했던 건 아니지만, 그 이후로 땡모아에 갈 일이 없었다. 누군가가 "옛날에 땡모아 바람떡볶이가 맛있었는데."라고 하거나 "토스트 리필받기가 눈치 보여서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이 받으러 갔다." "과일 빙수가 미쳤다."라고 하면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기억 속 땡모아는 "눈까리 깔어." 위협하는 무서운 양아치가 있는 소굴이었기 때문이다. 또래 집단이 모두 겪은 공통적 경험으로 부터 소외된 것만 같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꽃그네에 앉아보지는 못했네." 하고 말았다.
언제까지 나쁜 기억만 끌어안고 살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주말에 집에 가니, 엄마가 불국사에 겹벚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대경지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땡모아가 경주에 있다는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주소를 검색해 보니, 경주 땡모 아는 양아치를 만났던 땡모아와 이름이 같은 동성로에 위치해 있었다.
"경주, 가지 뭐."
겹벚꽃 사진 찍고 석가탑, 다보탑도 돌아봤지만, 그건 다 땡모아에 가기 위한 여정에 지나지 않았다. 점심으로 먹은 우엉김밥과 떡볶이, 칼국수가 목구멍까지 찼지만, 디저트를 꼬옥 먹어야 한다며 엄마를 끌고 땡모아에 갔다.
그때 그 땡모아는 아니지만, 다시 찾은 땡모아는 기억 속 땡모아의 모습을 희미하게 닮아 있었다. 좁은 점포라 꽃그네는 없어도, 흔들의자는 있었다. 벽면은 가짜 덩굴과 가짜 꽃으로 된 리스가 달려 있었고, 테이블 위에 생과일 사진이 있는 메뉴판이 끼워져 있었다.
카운터 뒤 의자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나이 지긋한 사장에게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 요거트 아이스크림 하나.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이 주방에서 오븐이 내는 팅, 소리가 다 들렸다.
"저게 토스트 굽는 소린갑다."
일진한테 쫄아 먹은 기억도 안 났지만, 짐짓 아는 척 지껄였다.
얼마 후에, 사장이 주문한 디저트 나왔다고 불렀다. 커피가 아주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했다. 쟁반을 보니 머그잔에 아메리카노가 김을 뿜으며 넘실거렸다. 노릇한 토스트 세 조각, 새하얀 크림, 레인보우 스프링클을 한 꼬집 뿌린 아이스크림이 올려져 있었다.
무서운 언니야들의 위협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디저트를 맛봤다. 과거 무한 리필로 유명했던 생크림 토스트는 크림보다 커피에 적셔 먹는 쪽이 취향이었다. 과일 빙수나 아이스크림으로 이름난 가게지만, 아메리카노가 마음에 들었다. 갓 볶은 콩으로 추출한 깔끔한 맛이 났다.
아메리카노로 뜨끈해진 배를 아이스크림으로 식혔다. 새콤달콤한 요거트 아이스크림 아래 깔린 바삭바삭한 시리얼이 일품이었다. 아이스크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카운터에 그릇을 반납했다. 티브이를 보며 혼자 킥킥 웃던 사장이 쟁반을 돌려받았다.
"잘 먹었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카운터에서 뒤를 돌아서니, 주문할 땐 안 보이던 러닝 머신이 보였다. 나름 땡모아의 분위기에 맞춘 노란색이라, 눈에 띄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째, 디저트 가게가 아니라 디저트 가게 모양 기사 식당엘 들린 것만 같다.
그렇거나 말거나, 흡족한 기분이었다. 어쩌다 또래 사이에 땡모아가 화제에 오르면, "옛날엔 몰랐는데, 거기가 커피 맛집이야." "요즘엔 토스트 막 안 줘." 마구 아는 척을 해주겠어. 배를 두드리며 땡모아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