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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콕 Oct 26. 2024

취미도 보험 처리가 되나요?

일절 이절 삼절 뇌절

요즘은 취미로 뭘 한다고 하면 덕질, 취미가를 덕후라고 부른다. 덕후들은 덕질 대상을 ‘앓는다’는 표현을 곧 잘 쓴다. 그렇다면 취미란 건 질병이라는 말일 텐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병에 걸리면 일상에 크게든 작게든 지장을 주기 마련으로, 취미란 것도 발동이 걸리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다. 가령, 생전 관심 없던 뜨개질을 하고 싶어 져서 일하는 내내 어디서 실과 바늘을 살지, 뭘 뜰지 붕 뜬 상태로 시간을 보낸다던가.


 사람은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지나가고, 때로는 눈에 보이는 흉터나 후유증을  가게 된다. 취미란 질병은 많은 물건을 흔적으로 남기는 것 같다. 좁은 방 구석구석에서 한 차례 앓고 지나간 병의 자취와 조우할 수 있다. 속옷 넣어두는 서랍에 뜨다 만 파란색 털실 수세미, 침대 머리맡에 뭉친 뒷목을 지압하는데 쓰는 캐나다 산 단풍나무로 된 드럼 채, 책꽂이에 책인 척 꽂혀있는 상자 속에 바늘, 제본실, 본폴더, 송곳이 들어 있다. 조립 후 몇 개월 간은 뿌듯했던 레고 데스스타는 노란 형광색 슈퍼 레이저 부품이 바닥에 떨어있어도 감흥이 없다. 한 때는 하지 않으면, 사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 같았던 것들 인데도 그렇다.


 여러 병을 앓으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취미란 병은 증상 초기에 많은 돈을 들여 장비를 사면 씻은 듯이 낫는다는 사실이다. 몸이 좀 으슬으슬할 때 해열제, 항생제 털어 넣고 전기장판 위에 솜이불을 둘둘 말고 누우면, 감기기운이 달아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다가. 하이코드를 잡을 수 있기도 전에 기타를 사면, ‘내 기타’에서 나는 불협 화음에 질려서 기타엔 눈길도 주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러면, 취미는 돈으로 치료하는 질병인가? 그렇게 단정하긴 어려운 것 같다. 어떤 병은 치병만 가능하고, 완치되지 않는다. 당뇨, 고지혈증이나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근 40년째 붓 사고, 화선지 사고, 먹물사고 선생님을 열댓 명을 찾아다니고 그러고도 병세가 위중하다. 주말 점심 한 숟갈 뜨고 나면, (붓글씨 쓰는데 방해되니) “안 나가나?” 눈치를 준다. 그럼, ‘지만 환자인가. 나도 간다.’ 노트북, 공책, 필통 한 가방 챙겨서 자리를 피해 줘야 한다.


 이쯤 되면 취미가 취미지 무슨 질병이냐 순 억지,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꾸역꾸역 취미를 병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 추궁에 답할 때가 왔다.


 어떤 건강체라 할지라도 일생에 병을 전혀 앓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다. 또한, 어떤 철벽 같은 마음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생각만으로 심계항진을 유발하는 대상이 하나쯤은 생긴다. 그런 발작적 박동은 시간과 장소와 금전적 제약으로 단념한다 해서 나아지지 않으며, 취미 문턱을 밟는 시늉이라도 해야 증세를 다스릴 수 있다.


 따라서 취미를 탐색하고 탐닉하고 탐구하고 탕진할 시간과 장소와 무조건적이며 전폭적인 기회를 보장할 것을 사회에 요구하는 바.


 이것저것 보장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말 같은 소릴 해라. 한 소릴 들었는데, “중학 때 나은 줄 알았는데, 만년필 병에 걸렸어요. 잉크가 당장 필요해요.” “급여처리 되는 파란 잉크가 있는데요.” 잉크 사려고 산 넘고 물 건너 시내에 나 시간이 없어서 온라인 주문으로 배송료 삼천오백 원 붙여  사나흘 기다려야 하는 날에 그런 상상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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