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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콕 Oct 26. 2024

평범한 일상으로 다른 일상을 망치기

김밥 한 줄, 커피 한 잔

사람이 어떻게 매일 똑같은 것만 먹을 수 있냐는 말이 있지만, 늘 찾는 음식은 있다. 내 경우엔 매일 아침 커피 한잔을 타 마시고, 저녁엔 김에 밥을 싸서 먹는다. 커피와 김을 먹게 된 데에는 어떠한 심오한 뜻이 없다. 탕비실에 커피가 상자 째 놓여 있고, 김은 만만하게 살 수 있는 부식이 때문이다



 여기서 일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북미인들이 새삼스럽게 김밥을 찾게 된 것 역시, 별 뜻이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때마침 먹음직스럽게 포장된 김밥이 시장에 나타났기 때문에 김밥을 먹게 된 것이지, 급작스럽게 늘어난 북미의 김 수요가 일만 킬로미터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밥상 물가를 요동치게 할 것이라는 계산은 없었을 것이다.

 김 수출액이 1조 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에 해수부 장관이라도 된 것 마냥 흐뭇한 기분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크, 검은 반도체 수출 효자 품목. 그 뒤를 이어 수출 증가로 국내 김 값이 올랐다는 뉴스에 손바닥 뒤집듯 의견을 바꿨다.

 뭘 심어도 쑥쑥 크는 넓고 축복받은 땅에 사는 사람들이 굳이 김 까지 뺐어 먹으려고 난리인가, 그런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곱지 않은 눈으로 김 수출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어민들로부터 헐값에 김을 사들여 해외에 비싸게 팔아먹는 양심 없는 유통업체의 사례도 눈에 보였다.

 "누구를 위한 김 수출인가? 식량 자급과 식량 주권을 보장하라! 부당이득을 취하는 유통업자 타도 해라!" 상상 속에서 가두시위가 한창이었다.

 "김 값이 대수야? 커피는 어떤데?"
 매일 마시는 커피에도 의혹에 찬 눈초리를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커피 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를 근절하기 위해, 커피 농사를 짓기 위해 무분별하게 벌채되는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커피 소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는 제법 들었다. 하지만 커피 한 잔에 유난이야, 늘 무시해 왔다.

 커피가 단 5분 담겨 있던 종이컵과 유행보다 폭이 좁아서 버려야 할지 고민되는 바지와 한 줄 쓰고 찢어 버린 메모지, 입력 신호를 기다리며 두 시간째 환하게 켜져 있는 모니터……

 고민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소비한 물건들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진다. 모두, 내 일상을 위해 망가진 다른 일상에서 온 산물이다.

 평범한 일상이 다른 일상을 망친다는 것을 알기 전처럼 살 수도 없지만, 평범함을 포기하기도 힘들다. 김에 밥을 싸 먹듯, 물에 커피를 타듯 사소한 일상이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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