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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콕 Oct 26. 2024

새삼스럽지 않은 일들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 동료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예식장은 기차로 한 시간 하고도 지하철로 한 시간을 가야 했다. 식은 오후 세 시에 시작이었지만,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 시간과 자동화 기기에서 현금 인출하는 시간, 운동화에서 정장화로 갈아 신고 로커에 넣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오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 바닥에는 하늘색 잉크 한 방울을 물에 탄 색깔의 셔츠를 입고 상체를 앞으로 한껏 내민 사람이 전면에 인쇄된 광고지가 흩뿌려져 있었다.

'세탁소 광고 치고는 희한하다.'

 전단지 아래에 적힌 문구를 읽어 보려고 발끝으로 종이를 죽 끌어당겼다가 그대로 걷어찼다.

 셔츠룸 00에 마침내 상륙 010-@@@@-####

 고깃집 계산대 위에서 무심결에 집어든 전화번호와 상호명만 적힌 명함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 비슷한 불쾌감을 느꼈다. 지라시를 자근자근 밟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곧 버스가 도착하고,  구겨지고 밟힌 셔츠로 뒤덮인 곳을 벗어났다.


 전철 객차 통로는 서서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목적지 도착 안내 방송에 맞춰 좌석에서 일어나면 전철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세 정거장 전에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출입문 근처에 섰다.

 출입문이 열리고 또다시, 승객이 쏟아져 들어왔다. 만원 전철에 탄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발 디딜 곳 없어 까치발을 들고, 팔짱을 끼고 체적을 줄였다. 승강장에 남은 사람은 유아차를 끌고 나온 엄마뿐이었다.

 유아차가 끼어들  공간은 없었다. 승객들은 온몸으로 객차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아슬아슬한 균형을 깨고 나와, 아이와 보호자에게 양보할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 "출입문이 닫힙니다. 안전하게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코끝을 스치듯 문이 닫혔다.


여유롭게 집에서 출발했지만, 예식 시간은 15분 정도 남았다. 신부 대기실 앞에서 부서장과 팀원 몇 명과 마주쳤다.

"나는 이 뒤에 친척들 하고 저녁 모임이 있어서, 신부한테 얼굴 도장만 찍고 가려고. 너희는 어떠냐?"

"와이프랑 애기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저도 인사하고 가려구요."

"집에 가서 저녁 먹어야죠."

"여기까지 온 김에, 끝나고 여기 사는 친구 만나기로 했어요."

"남자?"

"아뇨? 학교 후배요?"

부서장은 혀를 츠츳 찼다. "넌 진짜, 시간 낭비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크게 후회해."

한심하게 보는 눈길에서 벗어날 구실을 찾아냈다.

"제가 축의금을 아직 안 해서......"


예식이 끝나고, 약속 장소에서 후배를 만났다. 저녁을 먹기 전에 커피를 좀 마시기로 했다. 무화과 수플레,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이에 두고 후배와 대화했다. 후배는 몇 년 전에 결혼을 했는 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뜸해져 서로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해했다.

"전에 00 연구소 나간다는 소릴 했던 것 같은데, 요즘 뭐 해?"

후배는 팀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고, 지금은 전공과 관련 없는 회사로 이직했다고 했다. 급여는 전 보다 줄었지만, 삶의 질은 나아졌다고 했다.

"아, 저 집 샀어요."

후배는 좋은 급지에 급매로 나온 아파트가 있어서 매매를 했고, 어엿한 자가주택 소유자가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열심히 부부가 이자를 갚고 있다고 덧붙였다.

"집까지 사고, 완전 성공했는데?" 후배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직과 주택 마련까지 해낸 후배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시댁에서 어서 아이를 낳으라고 닦달을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시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동네 다른 영감쟁이들은 다-아 손주가 있는데." 전화통을 붙들고 주정을 부렸다고 말했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난소 나이가 20대래요. 제 문제가 아닌데, 이제 난임 클리닉에 가야 하는 거예요."

후배의 성토에 고개를 주억이며 무화과를 씹었다.


 택시를 타고 집 근처 지하철 역 앞에 내렸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갓 쪽으로 불법 주차된 자동차가 죽 늘어서 있었고, 가로등 사이와 사이 간격이 넓어서 어두컴컴했다.

 '집 앞에 내려달라고 할걸.'

 택시 기사에게 길을 설명하기 귀찮아서 역 앞에 내려달라고 한 것을 후회했다. 불법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차 사이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에 아랑곳없이, 그 사람은 과자 봉지를 마저 뜯었다. 발 밑으로 맥주 캔 몇 개가 찌그러진 채로 굴러다녔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누르면서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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