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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솔 Bin Sole Sep 30. 2024

어느 동업자

영풍 그룹 고려아연의 경영이 가는 길

영풍그룹은 황해도 같은 고향 출신인 고(故) 장병희·최기호 두 분의 창업주가 1949년 공동 설립한 기업 집단으로서 재계 서열30위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대에 아연제련소를 설립하면서 지주회사격인 영풍은 장씨 가문이, 아연은 최씨가문이 경영하기로 합의하고 지분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보유하게 되었다.  두 회사는 2대까지만 해도 전혀 문제없이 동업 정신을 잘 계승해 왔으며 본사도 같이 쓰면서 두 회사 임직원들은 같은 회사에 다니듯 서로 사무실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3세들이 경영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두 가문이 정면 대결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철금속제련 부문 세계 1위인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회사이기 때문이다. 연간 먀출액은 2022년 11조원, 2023년 9조원이고 영업이익 9천억원, ROE (자기자본대 순이익 비율)이 10%대에 달하는 알짜 기업이다. 기술력과 영업 네트워크가 잘 구비되어 있어서, 만약 이 기업이 다른 나라로 넘어 가면 이는 국가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재앙이다.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고삼동풍(고려아연, 삼천리, 동서식품, 풍산)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공기업에 부럽지 않을 정도로 고용안정성이 높고 급여도 좋다는 얘기다.  


문제는 고려아연 이라는 기업은, "소유는 장씨 일가 경영은 최씨 일가" 의 구조로 운영됐다는 점이다.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성장시켜도 그 결실 대부분은 장씨 일가가 가져가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런 '한 지붕 두 가족 경영' 체제는 3세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회장에 취임한 2019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풍그룹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최 회장은 장형진 고문과 몇 차례 상견례만 가진 뒤 왕래를 끊었다. 여기에 2022년 최창걸 명예회장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두 집안의 소통 창구는 사실상 사라졌다. 지금도 두 집안을 연결하는 메신저나 중재자는 부재한 상황이다.1946년생인 장 고문은 올해 78세다. 1975년생인 최 회장(49세)과 29살 차이다


직접적 충돌은 주주총회에서 영풍이 고려아연의 현금 배당 및 경영·투자 방침에 반대하며 불거졌다.영풍측 주장에 따르면 최회장이 독단적으로 몇 개 부실기업에 투자를 진행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서 최회장의 경영권을 뺐겠다는 것이고, 최회장측은 영풍이 적대적 기업합병을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품은 사모펀드 MBK를 통하여 약 2조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 7∼14.6%를 공개 매수한 뒤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두 집안의 고려아연 지분은 최 회장 측 33.99%, 영풍 장형진 고문 측 33.13%로 비슷하다. 이런 발표에 따라 고려아연 주가가 50만원대에서 70만원대로 치솟게 되었다. 공개매수가 성공하려면 싯가보다 높게 책정해야 하는데, (소액투자자들은 현 시세보다 높아야 팔 것이기 때문) MBK는 75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준비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불안하다. 경영권이야 그 둘 중 누가 가져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관심 밖이지만 고려아연의 기술과 기업가치를 지켜야한다는 마음은 절박하다. 사모펀드가 승리를 하고 경영권을 가지게 될 때 기업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 보는 참 경영인이 아닌 단기 업적만 챙기는 전문 월급쟁이가 온다면 결과는 참담해진다.  


영풍의 상황도 좋지 않다.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는 작년 12월 6일 탱크 모터 교체 작업을 하던 근로자 1명이 비소 중독으로 숨지고, 근로자 3명이 상해를 입었다.또 지난 3월에는 냉각탑 청소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1명이 사망했으며, 8월 2일에는 하청 노동자 1명이 열사병으로 숨지는 등 최근 사고가 잇따랐다. 이로 인해 대표이사 두 명이 현재 구속 중에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고려아연과의 싸움에 나서는 장씨측의 입장이나 최씨측에서 생각하는 불만, -- 경영책임은 지지않고 배당금이나 가져가는 장씨 집안에 대한 불만 --의 근저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고려해 본다면, 그것은 사실 시기심이라고 보여진다. 가까운 사람이 잘 되면 배가 아픈 게 인간이다.  


인간은 현실 원칙과 관련된 좌절된 특성으로 인해 외부 세계를 향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양육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존재한다. 그 주된 효과는 증오이다.  증오는 시기심envy과 질투jealousy의 경험, 즉 라캉이 "잘루이상스 jalouissance"라고 부르는 경험을 통한 지식과 관계가 있다. 다른 사람의 재능, 지식, 학문적 성취에 대한 시기심은 행동으로 드러날 경우 항상 증오의 담지체가 된다. 시기심이란 타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자신의 자아가 이상적 자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감정이다.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에서 "시기심envy이 편집-분열적 위치에서 발생하는 죽음충동" 으로서 증오를 대상에게 전가하고 좋은 대상을 파괴하는 것과 관련된 기제라면, "질투jealousy는 우울적 위치에서 발생하는 죽음 충동"으로서 "시기심이 지나치지 않다면 시기심을 대신함으로써 질투는 시기심을 처리해 내는 수단"이 된다. 
주체가 아무리 많이 성취하더라도 항상 시기심이 있다. 왜냐하면 이상적 자아는 궁극적으로 상징적 거세의 수용과 함께 포기해야 하는 나르시시즘적 환상이기 때문이다. 시기심은 타자의 성취나 실현의 정도가 아닌, 주체 자신의 나르시시즘적 환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호모 호미니 루푸스,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 


참고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도 눈여겨 볼만하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한화 김동관 부회장과 미국 세인트폴 고등학교 동문이고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도 동문이다. 또한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도 자녀가 세인트폴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동문 학부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병주회장은 포스코 박태준회장의 사위이다. 고려아연 최창근 명예회장 며느리 명은 김부겸 총리 딸이고, 총리 시절 작업장 재해에 유독 엄격해서 사돈 덕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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