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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림프암 투병기

또다시 느낀 일상과 먹는 것에 대한 소중함

by Vita

오른쪽 임파선과 뒤통수와 뇌막 그리고 오른쪽 날개뼈 쪽까지 재발이 된 상태다.

임파선은 목 쪽인데 목 뒤로 크게 오른쪽 부분으로 암 병변이 자리 잡았는데 이로 인해 성대 마비까지 생겨서 목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 경계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삼킴 운동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즉, 한 마디로 침도 못 삼키고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그 상태로 2주를 집에서 버텼으니 살이 6kg나 빠졌다.

침도 1분마다 컵에 켁켁 거리며 뱉어야 하기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스트레스와 짜증과 수면 부족의 콜라보로 정신병이 오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검사로 지옥의 3일을 간신히 보낸 후 일반 병실로 올라와 항암을 시작했다.

항암을 하면서 동시에 고용량 영양제도 같이 투여를 지시하였는데 그제야 기력이 조금씩 돌아오게 됐다.

그렇게 새로운 항암제와 치료법으로 5일 스케줄을 소화하고 바로 어제..!


혹시나 하여 물을 조금씩 삼켜보았다.

그전엔 계속 제발 돌아오길 바라며 삼키는 시늉을 하기만 하다가 무언가를 진짜 삼킨다니깐 긴장이 됐다..


꿀꺽...


너.. 넘어간다..

물이 코와 목에 사레가 안 들리고 기도로 넘어갔다.

좀 더 머금고 마셨봤다.

꿀꺽꿀꺽 잘 넘어간다.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가 흘러내리듯 내 목덜미를 타고 과감히 내려갔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평생을 영양제를 달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이대로 마비가 지속되면 어쩌나 싶었다.

물론 아직 마비는 안 풀렸지만 삼키는 운동이 조금씩 돌아오는 거 같아 마음이 너무나 안정이 됐다.

내 육신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과 안도감과 감사함이 생기는지 새삼 또 알게 됐다.


그렇게 물까지 마신 다음 날 바로 오늘 뉴케어라고 고단백 음료까지 마셨다. 식사 대용으로 나온 거라 포만감도 좋고 고소하니 맛도 느껴지는 음료다.

결과는 한 개를 다 마셨다..!

맛까지 느껴지는 걸 한 달 만에 목으로 넘기다 보니 감격을 넘어서서 먹는 행위에 숭고함까지 느껴졌다.

흡사 21살 때 군 입대 이슈로 포항 훈련단에서 처음 맞이한 주말 종교 시간 때 먹었던 초코파이급이었다.

먹방 유튜버들의 방송을 보면서 쓰리고 주린 배를 이젠 움켜잡지는 않아도 될 거 같아서 너무 기쁘다.


이토록 인간은 늘 익숙함에 속아 살고 있다.

우린 매 순간을 행복과 감사함과 맛있는 순간과 편안한 순간 속에서 살고 있다.


이걸 분명 나도 다 낫고 나면 어느 정도 잊을 게 뻔하다.

그럼에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생각하며 모든 행위와 나의 삶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바로 오늘 느낀 감사한 순간을 나는 또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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