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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ecO Oct 17. 2022

꺼림칙하다

오늘은 마무리가 꺼림칙하다.




 평소보다 살짝 일찍 나왔다. 30분 이른 시간으로 유연근무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사실 평소처럼 나와도 30분 전에 도착하지만, 공식적으로 8시 30분을 출근시간으로 지정하고 나니 혹시나 다른 이벤트가 발생하여 늦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도착시간은 평소와 비슷했다. 평소에도 여덟 시 삼십 분에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여덟 시 삼십 분에 업무를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어색하다.


 팀장님 없는 단체 카톡방에 계속 알람이 울린다. 월요일은 특히나 팀장님 호출이 잦다고 하는데, 주말 동안 이것저것 잔뜩 생각하시고 돌아가며 팀원들을 호출하신다고 한다. 특정업무 팀원을 자주 부른다고 하는데 그 특정업무에는 내가 하는 업무도 포함이었다.

 팀장님이 누군가를 불렀다. 특정업무를 하는 팀원은 아니었다. 그 팀원의 면담이 끝나자 팀장님 없는 단체 카톡방이 다시 활발해졌다. 경력개발을 화두로 다른 팀에 가고 싶으면 그 팀장에게 어필하라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팀원들은 하나같이 그 팀원을 다른 팀으로 보내고 싶어 돌려 말한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첫 회사생활을 하며 견디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떠올랐다. 줄 서기, 그리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지긋지긋했다.. 끔찍했다.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점심시간, 팀장님은 약속이 있다며 가셨고, 팀원들과 밖으로 나갔다.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할수록 내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확신이 들었다. 처음으로 '이곳에 계속 있고 싶만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유연근무를 신청해서 5시 30분 퇴근이다. 5시 30분이 되자 PC off 카운트다운이 시작됐고, 정말 가도 되는 건가 눈치를 보다 10분이라는 카운트다운을 거의 다 채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인사를 하고 퇴근하는 주목받는 느낌이 너무 싫다.

 사옥을 나와 지하철을 탔다. 전화가 온다. 누구일까? 팀장님이다. 이 시간에 왜? 당황했다. 지하철 안이라서 이어폰으로 받기엔 통화품질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급히 이어폰을 빼고 전화를 받는다.

'네 팀장님!'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급하게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이어폰을 내 귀에서 뺀다고 이어폰 연결이 해제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급하게 스피커를 핸드폰으로 바꾼다.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려왔다. 다시 받았다. 또다시 이어폰이 연결됐다. 끊겼다.

세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받기 버튼을 누르고 재빠르게 스피커를 핸드폰으로 바꾼다.

통화를 이어갔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또 들리지 않는다. 급히 스피커 연결을 핸드폰으로 바꾼 후 전화를 받아보았다.

'~~ 네 알겠어요. 끊어요.'라는 말만 캐치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시간은 5시 56분.

 6시 퇴근이라고 쳐도 퇴근 5분 전에 업무를 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뭔가 꺼림칙하다.


그렇게 깔끔하지 못한 기분으로 퇴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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