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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ecO Oct 14. 2022

부품 교체

나는 어떤 존재 일까?




 아침에 그리 서둘러지지 않았다. 내가 일찍 가봤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평소 타던 지하철보다 하나 늦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 평소엔 이 시간이 가장 설레고 좋은 시간이었는데, 오늘따라 발걸음이 무겁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살짝 늦게 나왔지만 30분이나 일찍 자리에 앉았다. 이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적응을 한 것일까? 목적이 없어진 걸까? 이럴 때를 보면 나도 참 간사한 사람인 것 같다.


 점심시간 알림이 울렸다. 점심시간 직전 책임님께 업무이야기를 꺼낸 팀장님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불까지 꺼졌지만 이야기를 끝낼 생각은 없어 보인다. 결국 15분이 지나서야 이야기가 끝났다. 밥을 먹으러 간다. 팀장님, 새로 오신 책임님, 나, 팀장님과 이야기를 하시던 책임님 순서로 줄지어 엘리베이터를 향해간다. 가다 보니 내 뒤에 오시던 책임님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눈치챘다. 팀장님과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껏 찾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버렸다. 곧 전화가 왔다. 저장이 안 된 번호였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책임님이었다. 약속이 있는 걸 깜박하셨다고 말하셨다. 말속에서 진심을 느꼈다.


 오후에 사수가 오전 재택근무를 끝내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눈치를 보다가 질문을 한다. 질문을 하다 보니 궁금한 점이 많아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나는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 자산 축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럴 때 보면 나는 아닌척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상무님께 보고가 있었다. 나는 발언 없는 참석자였다. 상무님은 나와 거리가 멀다. 심리적으로는 당연히 멀고, 실제 물리적으로도 멀다. 마주칠 일도 적다. 그런데 이 기업에 들어와서 유일하게 나를 직원으로 대우해주는 사람 같다. 이상하게 정이 간다. 동향이라 그런가..

 상무님 보고가 끝난 후 부사장님 보고가 이어졌다. 역시나 그곳에서 나는 비서 같은 존재였다. 있는 듯 없는 듯 잡일을 하며 팀원들을 서포트하는,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그런 존재였다.


 보고 후 팀장님과 회의가 있었다. 회의에서 업무분장이 이루어졌다. 내 생각엔 내가 맡은 직무가 그 업무와 가장 연관이 있는 일이었지만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새로 시작하는 업무를 기존 직원이 맡아서 배우면서 해야 나중에도 문제가 없기에, 잠깐 있다 떠날 나에겐 주어지지 않는 듯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신입사원에게 나의 업무를 잘 교육하라는 지시를 하셨다. 내가 하는 업무는 육아휴직에 들어갈 예정인 내 사수와 같다. 그동안 내가 신입직원을 가르쳐놓으면 사수가 돌아와서 신입직원과 업무를 이어갈 계획인 것 같다. 나는 그저 갈아 끼우는 부품이 된 기분이다. 나의 기술을 모두 빼앗기고 버려지는 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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