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슬> 소설 연재
그날도 태용은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슬슬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편의점 안에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계산대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최근에 국내의 유명 문학상을 받은 단편소설 모음집이었다.
‘나도 단편소설을 써볼까?’
그는 책을 읽다가 생각에 잠겼다.
‘내 두 편의 소설이 출간되지 않는 건 내가 무명의 작가 지망생이기 때문이야. 더군다나 요즘은 출판계가 불황이라고 하잖아. 그러니 나 같은 무명인이 쓴 장편소설을 선뜻 출간해줄 출판사는 드물 거야. 특히 두 번째 소설은 800쪽이나 되는 아주 두꺼운 소설이잖아. 출판사 입장에서는 위험한 투자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니 나도 단편소설부터 작게 시작해볼까?’
하지만 단편소설을 쓰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예전에 단편소설을 써보려고 몇 번 시도해봤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분량이 짧은 작품이라고 쓰기 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단편소설을 쓰는 게 더 어렵다. 짧은 분량 안에 기승전결과 재미와 감동을 모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충분한 분량이 주어지는 장편소설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장편소설로 데뷔하려는 두 번의 시도가 모두 실패한 지금으로써는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는데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태용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들어온 사람은 젊은 남녀 한 쌍이었다. 그들은 태용을 지나쳐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과자와 음료수를 들고 왔다. 남자는 계산을 하면서 담배를 한 갑 달라고 했다. 태용은 남자가 말한 담배를 찾아서 내밀다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용을 쳐다봤다. 태용 역시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를 알아봤다.
“너 태용이 아니냐?”
남자는 태용이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박준혁이었다. 태용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새끼를 여기서 만나다니.’
마지막으로 본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태용은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박준혁은 얼굴이 별로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태용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너 여기서 일하냐?”
“어? 어, 응......”
박준혁의 옆에 있던 여자가 물었다.
“누구야?”
“나랑 중학교 같이 나온 애.”
여자는 태용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달라붙는 하얀 티셔츠를 입은 여자는 늘씬한 몸매에 가슴이 큰 미인이었다. 태용은 여자가 자신을 훑어보자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되게 오랜만이네. 이게 몇 년 만이야?”
박준혁의 말에 태용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대학은 나왔냐?”
“응.”
“지금 뭐하면서 살고 있어?”
“그야 뭐, 보다시피......”
그 말에 박준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만. 그래, 수고해라.”
박준혁은 그렇게 말한 뒤 여자와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태용은 박준혁이 편의점 앞에 세워둔 차를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차가 지나가자 그는 중얼거렸다.
“벌써 차를 끌고 다니네.”
물론 스물여덟 살이면 자가용이 있어도 그렇게 대단한 나이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태용의 마음속에는 자괴감과 열등감이 불처럼 번져갔다.
‘박준혁 저 개새끼......’
박준혁은 중학교 시절 그를 자주 괴롭혔던 녀석이었다. 태용이 쉬는 시간에 책을 읽을 때마다 박준혁은 그에게 다가와서 시비를 걸곤 했다.
“이 새끼는 맨날 책만 읽네. 근데 너 공부는 나보다 못하잖아.”
그러면서 박준혁은 그가 읽던 책을 낚아채 던져버리고는 다른 애들과 함께 낄낄거렸다. 그럴 때마다 태용은 굴욕감을 느끼면서 말없이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서 다시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박준혁은 태용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센 데다 자신의 말처럼 태용보다 공부도 더 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크고 거친 성격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태용은 그가 다가올 때마다 기죽은 채 옆으로 비켜서곤 했다.
태용은 다시 자리에 앉아서 읽던 책을 펼쳤지만 분노와 수치심으로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방금 전에 박준혁이 자신을 보며 지은 옅은 비웃음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박준혁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태용, 넌 여전히 찐따 같고 한심하구나. 넌 중학생 때도 책만 읽는 찐따였는데 여전히 책이나 보는 찐따로군. 편의점 알바? 너한테 딱 어울려.
하필 편의점에서 일하는 지금 저 녀석과 마주치다니. 저 새끼는 직업이 뭘까? 글쎄, 뭔지는 몰라도 어디 가서 편의점 알바보다는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직업이겠지. 그리고 돈도 더 많이 벌겠지. 나랑 동갑인데 벌써 차를 타고 다니잖아. 거기에 예쁜 여자친구까지 있고. 아마 차를 타고 가면서 여친한테 내 얘기를 하겠지. 중학생 때 내가 얼마나 한심한 찐따였는지, 그리고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둘이서 신나게 웃어댈 거야. 태용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씨발, 진짜.......”
그는 무겁게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그 새끼가 날 비웃어도 할 말이 없어.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병신 같으니까. 스물여덟 살이나 되었는데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고시원에 사는 소설가 지망생이잖아. 빌어먹을, 난 왜 이렇게 가난하고 한심한 거지?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책을 물끄러미 보다가 덮어버렸다.
난 왜 소설가 같은 걸 하겠다고 한 걸까. 왜 돈도 못 벌고 멋있지도 않은 직업을 선택한 걸까. 근데 따지고 보면 그건 내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어. 내가 이 세상에서 하고 싶고 할 줄 아는 유일한 게 소설을 쓰는 것뿐이니까. 아 참, 난 소설가도 아니지. 소설가 지망생이지. 등단도 못했잖아.
태용은 헛웃음이 나왔다. 박준혁은 자기 때문에 내가 지금 순식간에 비참한 기분이 된 것을 알까?
그는 우울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음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오자 그와 교대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었다. 그는 터벅터벅 골목을 걸어가다가 오늘 대학교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는 발길을 돌려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박준혁을 만난 일을 생각하며 무거운 기분에 잠겨들었다.
그는 한동안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메일을 확인했다. 마침 출판사 한 곳에서 온 메일이 있었다. 그는 설마하면서 메일을 클릭했다. 물론 거절 메일이었다.
“에이, 씨발 진짜.”
그는 짜증이 나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줌마가 그를 흘깃 쳐다봤다. 그는 민망해서 헛기침을 하면서 버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쑀다.
그 날의 약속은 태용에게 나름 중요한 일이었다. 바로 대학교 친구들끼리 모여서 그의 두 번째 소설을 합평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태용은 대학 시절 과내 문학 동아리에서 4년 동안 활동했다. 그는 졸업을 한 후에도 가끔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곤 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다른 졸업생들도 모임에 가끔 참석했다. 동아리에서는 주로 각자가 쓴 시나 소설을 읽고 합평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태용은 자신의 두 작품이 삼백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당하자 그 책의 문제점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동아리 회원들에게 자신의 두 번째 소설을 읽고 합평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합평회가 있는 날이었다.
합평회는 그가 나온 대학의 어느 빈 강의실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태용은 버스에서 내려 강의실이 있는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온 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았다. 그는 대학교 친구들을 자주 만났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학교에 자주 왔던 것이다.
태용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동아리 친구들이 다들 모여 있었다.
“안녕, 늦어서 미안.”
태용이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친구인 은찬이 말했다.
“괜찮아, 우리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어.”
은찬은 태용의 동기로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태용이 보기에 그는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공시생인데도 태용에게 자주 놀자고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은찬은 오늘의 합평회에도 참석했다. 태용은 그가 아마 한동안은 시험에 합격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찬은 현재나 미래에 대해서 그리 걱정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건 아마도 은찬이네 집안이 형편이 넉넉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태용은 짐작했다.
“어때, 다들 읽어봤어?”
태용은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을 둘러봤다. 특이하게도 오늘의 모임에는 대학생보다 졸업생이 더 많이 참석했다. 강의실에는 후배 두 명과 은찬과 승민이 앉아 있었다. 오늘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승민도 참석했던 것이다. 그리고 승민의 뒷자리에는 날카로운 눈빛의 다온이 앉아 있었다. 다온 역시 태용의 동기였다. 태용은 그를 보고 순간적으로 긴장감을 느꼈다. 다온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였기 때문이다.
다온은 키가 작았지만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친구였다. 그는 대학생 때 대형 일간지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그의 등단은 당시 학과 내에서 꽤나 화제였다. 태용은 그가 등단했다는 소식을 듣던 날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느꼈던 부러운 감정도 여전히 생생했다.
“네, 재미있게 읽었어요.”
후배인 가람이 말했다. 또 다른 후배인 선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두꺼운 책이었는데, 재미있어서 끝까지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그 말에 태용은 안도감이 들었다. 승민이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일단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감상평을 해볼까? 누가 해볼래?”
다들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다온이 손을 들었다.
“내가 먼저 할게.”
다온은 손에 종이 몇 장을 쥐고 있었다. 태용은 다시 긴장했다.
“지적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야.”
다온은 종이를 보면서 소설의 문제점을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일 먼저 소설의 세계관이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다 허용되는 건 아니야. 오히려 판타지소설일수록 정합성이 중요하다고.”
다온이 문제점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태용은 창피해졌다. 다온이 지적한 문제점들은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던 것이다.
다온은 다음으로 소설의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태용이 플롯을 짜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부분이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인지 구체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그는 두꺼운 소설을 아주 꼼꼼하게 읽었던 것이다.
한동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태용이 끼어들었다.
“잠깐만, 근데 그 부분은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인물의 행동이 그 정도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거 아냐?”
태용의 말에 다온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문제가 없다고?”
“응. 그 정도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거 아니야?”
그러자 다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용아, 넌 이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
태용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나?”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네가 아직도 등단을 못 하는 거야.”
그 말에 태용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라고?”
“네가 그래서 등단을 못하는 거라고. 지금 네 글의 문제가 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잖아.”
“아니, 그 부분은 진짜로 문제가 아니잖아.”
“그건 네 생각이고.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진짜? 다들 그렇게 생각해?”
태용은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친구들은 다들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은찬이 입을 열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사실 내가 읽을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온이 말을 들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비평 능력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다온의 말에 태용은 발끈했다.
“그게 아니라 네가 너무 억지로 비판하는 건 아니야?”
다온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태용을 쳐다봤다.
“야, 넌 내가 지금 억지로 트집 잡는 것 같냐?”
“좀 그런 것 같아. 아까 세계관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야. 네가 이 세계관의 종족이나 정치, 경제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부분도 사실 판타지 소설의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나는 생각해. 단지 생각하기 나름일 뿐이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지. 그런 식으로 무한정 허용된다면 문학에 대한 객관적인 비평은 불가능해.”
“내 말은 모든 게 무한정 허용된다는 게 아니라 그 정도면 허용이 가능하다는 거야.”
그러자 다온은 종이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태용아, 이제 보니까 넌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 너 계속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10년이 지나도 등단 못 해.”
“그건 네 생각이지.”
태용은 애써 화를 삭이며 말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야.”
“너의 관점이겠지, 객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출간이 안 됐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아니 저 새끼가 진짜......’
태용은 그를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한 비평을 참지 못해서 비평한 사람을 때린다면 그보다 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태용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 참으며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여기서 화를 내면 난 진짜 찌질한 인간이 되는 거야.’
그는 어떻게 해야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다온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문체도 문제야. 네 소설은 대사가 너무 많아. 이렇게 대사가 많으면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대사의 양이 많다고 문학성이 떨어진다?”
“쓸데없는 대사가 많잖아.”
“어떤 게 쓸데없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 소설의 대부분의 대사가 그래. 이건 왜 그런 줄 알아? 네가 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야.”
“난 대사를 쓸 때 소설의 현실감을 부여하는데 중점을 두고 썼어.”
그러자 다온이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그게 문제야. 초보 작가 지망생들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인데, 현실감을 살리겠답시고 대사를 쓰다가 중언부언하는 난잡한 문장이 되고 말지.”
“뭐가 중언부언이라는 거야? 난 적어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대사는 쓰지 않았어.”
“필요성이 적은 문장을 쓴다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이 소설은 쓸데없이 분량만 너무 길어. 분량을 지금의 반으로 줄여도 돼.”
그 말에 태용은 눈을 치켜떴다.
“야, 이거 내가 불필요한 서사나 문장은 전부 삭제한 거야.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까지 뺀 거라고.”
“진짜?”
다온은 딱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라면 좀 안 됐다.”
“뭐가?”
“글을 쓸 때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지를 네가 모른다는 거잖아.”
“그럼 너는 알아?”
“너보다는 잘 알지. 그래서 난 등단을 하고 넌 등단을 못 한 거야.”
태용은 분노가 치솟았다.
“지금 너 등단했다고 잘난 척 하냐?”
“어? 지금 이걸 잘난 척 하는 걸로 받아들인다고?”
다온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받아쳤다.
“난 너를 위해서 지적을 해주는 거야. 두꺼운 책을 읽어주고 주말에 학교까지 와서 분석해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네가 뭐라고 고마워해? 네가 뭐라도 되냐?”
“자, 둘 다 그만해. 왜 싸우고 그러니?”
승민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하지만 다온은 검지손가락으로 태용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너 이거 쓰는데 3년 걸렸다고 했지? 3년 동안 쓴 게 고작 이 정도면 이제 그만 작가 되겠다는 마음을 접는 게 낫겠어. 재능이 전혀 없잖아. 예술은 재능이 중요한 분야라는 거 알지?”
“지랄하지 마, 이 새끼야. 그러는 너도 별 거 없잖아. 등단했다고 잘난 척하는데 등단하고 나서 책이라도 한 권 낸 적 있어? 장편소설은 한 번이라도 써 봤냐?”
다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편소설을 왜 써야 하는데? 너처럼 쓸데없이 두꺼운 걸 써서 읽는 사람 짜증나게 하라고?”
“짜증나게 하는 건 너야, 이 새끼야.”
“야, 그만해.”
은찬이 말했지만 태용은 소리를 질렀다.
“넌 장편소설을 쓰기 싫어서 안 쓰는 게 아니라 장편을 쓸 능력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여태까지 허접한 단편이나 쓰고 있는 거지. 그리고 네가 쓴 것들 하나같이 존나게 재미없어 병신아.”
“아하, 그래서 넌 등단했어?”
“네 소설 존나게 재미없다고.”
“그래서 넌 등단했어?”
“닥쳐 병신새끼야.”
“그래서 넌 등단했어?”
“아니, 이 새끼가 진짜......”
다온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이태용, 그러니까 네 인생이 그 모양인 거야. 그 나이 먹을 때까지 등단도 못하고 이런 쓰레기같은 글이나 쓰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거라고.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했으면 돈이나 벌었을 텐데. 너 아직 취직도 못했지?”
“넌 취직했냐?”
“난 등단했잖아. 작가가 내 직업이라고. 넌 직업이 뭔데? 아, 편의점 알바?”
“이 씨발새끼가 진짜!”
태용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너 여기 왜 왔냐? 존나 띠껍게 구네, 씨발놈이.”
다온은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할 말이 없을 때 욕을 하는 거란다.”
태용은 충혈된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온에게 다가갔다.
“야, 너 이리 와봐.”
“어어, 그러지 마!”
은찬과 승민이 부리나케 달려들었다. 두 후배들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용은 은찬과 승민에게 붙들린 채 고함을 질렀다.
“씨발새끼, 너 진짜 나한테 맞을 줄 알아!”
다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
“한심한 새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의실을 나갔다. 그의 뒤를 향해 태용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어디 가! 이리 안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