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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Aug 01. 2024

1화. 프롤로그

<소설구슬> 소설 연재

 소설의 시작은 늘 어렵다. 어떻게 해야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물론 시작이 흥미롭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작품인 것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도입부는 일단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러니 어떤 장면, 어떤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하느냐는 매번 어려운 문제다. 이것은 전 우주 어디에서나 보편적인 문제이다. 다른 은하계에 있는 다른 행성에 사는 작가라 해서 그것이 좀 더 쉬운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하지만 지구와 환경이 많이 비슷하고 인류가 살고 있는 어느 행성에 마한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리고 마한의 수도에 있는 어느 고시원의 좁은 방 안에서, 스물여덟 살의 이태용은 소설의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그가 붙들고 있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세 번째로 쓰는 장편소설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두 권의 장편소설을 썼지만 그렇다고 그가 작가인 것은 아니었다. 두 권 다 출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두 권의 소설을 각각 3백 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보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태용은 도합 6백 번의 거절을 당하면서 두 소설의 문제점을 오랜 시간 분석했다. 재미가 없나? 소설의 시작이 흥미롭지 않은 걸까? 아니면 작품의 전반적인 문학성이 떨어지는 걸까? 그의 첫 작품은 그가 대학생 때 쓴 소설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추리소설이었다. 그는 그 소설을 쓰는데 2년이 걸렸다. 마침내 소설을 완성했을 때 그는 고시원 방 안에서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끝이다! 그는 자신이 뛰어난 작품을 완성했다고 자신했다. 물론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꽤나 괜찮은 작품성을 지녔으며, 무엇보다도 끝내주게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태용은 이 책을 출간하면 자신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드디어 지긋지긋한 고시원 방도 안녕이다. 사실 이 방은 너무 좁고 너무 낡았다. 깡마른 태용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냄새나는 침대와 침대 옆의 작은 책상이 전부인 딱 한 평짜리 공간이었다. 물론 이 한 평짜리가 그가 간신히 방세를 낼 수 있는 방이었다. 이보다 더 큰 방으로 옮기려면 지금 하고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하면 좀 더 넓고 괜찮은 주거공간을 찾을 수 있겠지만, 태용은 좁은 방 안에 사는 한이 있더라도 글 쓰는 시간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도 너무 아까웠다. 그는 그 시간을 돈을 버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젊음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느꼈다. 편의점에서 하루에 8시간을 일해 봤자 8시간치 최저시급을 벌 뿐이었다. 위대한 작가가 되려면 1분 1초를 아껴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매일 8시간씩 편의점에서 죽치고 있어야 한다니! 이건 정말 최악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알바를 하는 것도 다 경험이 되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경험이 중요하다.” 쓸데없는 소리. 태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경험하기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전혀 없었다. 물론 다양한 경험이 쌓이면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일 8시간씩 편의점에서 몇 년 동안 일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빼앗기는 거 아닌가?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위대한 문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함이다. 뭐? 작가는 가난해야 글을 잘 쓴다고? 그건 태용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도 옛날에는 작가와 관련된 그런 편견 어린 환상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몇 년 동안 배고픈 작가 지망생으로 살면서 그런 생각은 산산이 깨졌다.

 작가의 삶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데는 첫 번째 소설의 실패도 한몫했다. 태용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을 꿈꿔오면서 평생 단순한 믿음 하나를 갖고 살아왔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작품을 쓸 것이고, 좋은 작품을 쓰면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해줄 것이고, 책이 출간되면 많이 팔려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그가 평생 품고 살아온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장편소설을 써보겠다는 용기를 내고 2년간의 분투 끝에 자신의 첫 작품을 완성했을 때,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이제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리라 생각했다. 가난한 삶도 끝이고, 비좁은 자취방도 안녕이고, 나는 이제 성공한 작가가 될 거야. 책이 많이 팔리면 부자가 되겠지? 이제 더 이상 친구들한테 술이나 밥을 얻어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잘해준 친구들에게 이제는 자신이 베풀어야 할 때였다. 어쩌면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을 거둘지도 몰라. 어쩌면 문학상을 받게 될지도 몰라. 성공한 작가가 돼서 복학한 나를 보고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겠군. 상상만 해도 너무나 달콤했다.

 하지만 그 달콤한 상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너 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 그는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자신의 소설과 잘 맞는 성격의 유명 출판사 몇 군데를 찾아낸 뒤 소설 원고 파일을 이메일로 보냈다. 물론 원고와 함께 소설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기획서를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공한 작가의 삶은 이제 시작이다. 기다려라, 나 이태용이 간다.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상한데, 두 달 정도 기다리면 연락이 와야 하는 거 아닌가? 태용은 슬슬 걱정이 되었다. 처음 투고를 할 때는 동시에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오면 어떡하나 즐거운 걱정을 했는데, 현실은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태용은 결국 다른 출판사 몇 군데에 다시 투고를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출판사 한 곳으로부터 처음으로 답장 메일이 왔다. 태용은 그 날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와서 노트북을 열고 메일함을 확인했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클릭했다.

 메일에는 원고를 투고해줘서 고맙지만 태용의 원고를 출간하기 어렵겠다는 간략한 글이 적혀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태용의 소설이 어떤 점에서 별로였는지, 어떤 부분이 훌륭한지, 왜 그의 소설을 출간하기 어려운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었다.

 출판사로부터 처음으로 받은 답장이 이런 거라니....... 태용은 크게 실망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점점 작아지던 기대감에서 더욱 바람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인터넷에서 다른 출판사들을 찾아내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거절 메일을 받았다. 이번에는 메일이 여러 통이 왔다. 그는 다시 인터넷을 뒤져 출판사들의 이름과 메일 주소를 알아냈다. 이후로는 계속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그는 더 많은 출판사들에 투고를 했고, 더 많은 거절 메일을 받았다. 사실 거절 메일이라도 보내주는 곳은 소수였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거절하는 메일조차도 보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투고를 계속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출판사는 전부 찾아내서 메일을 보냈다. 처음에는 자신의 소설과 성격이 잘 맞는 출판사들을 골랐지만 나중에는 SF나 추리소설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출판사들에도 투고했고 더 나중에는 아예 소설을 한 권도 내지 않은 출판사들까지 찾아내서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반 년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가 투고한 출판사는 삼백 곳이 넘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출간해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여러 번 다시 읽어봤지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하네. 요즘 대세가 SF라던데. 그리고 내 소설에도 딱히 단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는 크게 상심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술을 많이 마셨고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했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위로해줬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힘든 거야.”

 술에 취해 눈물을 닦는 그에게 친한 친구 승민이 말했다.

 “세상에 처음부터 잘 풀리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기운 내.”

 승민은 태용의 대학시절 친구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작은 기업에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태용이 보기에 승민은 모범적이고 보기 좋은 소시민의 전형이었다. 승민은 키고 크고 잘생긴데다 친절한 성격이라서, 평생 한 번도 연애를 해 본적이 없는 태용과 달리 대학 시절 내내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승민은 취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회사에 다니는 여자와 사귀기 시작했고, 아마 내년쯤에 결혼을 할 것 같다고 했다. 태용은 늘 인기도 많고 밝은 성격의 승민이 부러웠다. 그는 승민과 친했지만 자신은 결코 승민처럼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성격이 밝은 사람은 소설 같은 걸 쓰지 않을 테니까.’

 아니면 성격이 밝은 사람도 소설을 쓰다 보면 어두운 사람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태용은 자신도 어린 시절에는 밝고 명랑한 소년인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다가 소설을 쓰게 되면서 점점 어두운 성격이 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그가 생각하기에 승민처럼 밝고 건강한 몸과 정신은 소설을 쓰는 일과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승민은 소설을 읽는 건 좋아했다. 그는 태용의 첫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고 이게 왜 출간되지 않는 건지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튼 태용은 승민의 말대로 했다. 그는 기운을 냈고,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두 번째 소설은 판타지소설이었다. 그는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했다. 요즘 세상에는 마법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는 마법사가 현대에도 있다고 설정했다. 그리고 주인공 마법사가 강력한 마법서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두 번째 소설을 쓰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꼬박 3년이 걸렸던 것이다. 참으로 질기고 힘든 3년이었다. 태용은 3년 동안 어두운 방 안에서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발버둥친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는 초고를 완성한 후에도 오랫동안 퇴고를 거듭하며 소설을 다듬었다. 구상을 하는 것도 힘들었고 초고를 쓰는 것도 힘들었지만, 퇴고를 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생이었다. 그는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했고, 단어 하나하나를 검토하며 글을 다듬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소설이 탄생했다.

 그는 이번에는 300군데 출판사에 동시에 투고를 했다. 하지만 왠지 이번에도 그의 작품을 출간시켜 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첫 번째 소설을 투고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크게 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연락이 오는 출판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는 초조하게 몇 달을 기다리다가 같은 출판사들에 다시 한 번 투고를 했다. 이번에는 좀 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메일을 썼다.

 ‘이 소설은 제가 3년의 시간을 바쳐 열심히 쓴 작품입니다.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하니, 긍정적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는 낮에는 편의점에서 일했고 저녁에 고시원으로 돌아온 뒤에는 책을 읽거나 다음 소설을 구상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메일을 확인했지만 긍정적인 연락은 없었다. 가끔 출판사로부터 메일이 왔을 때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클릭했지만 모두 거절 메일이었다. 그는 시무룩한 마음으로 메일을 닫고 다시 노트북 화면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적었다. 하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5년의 시간을 들인 두 편의 소설이 모두 출간되지 않자 의욕이 크게 꺾였던 것이다. 그는 몇 시간씩 노트북의 하얀 화면을 응시하다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아침이 되면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을 하러 나갔다. 일을 마친 후에는 다시 좁은 고시원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 언제부터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루 중 가장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이었다. 어떤 때는 답답함과 분노가 가슴 속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왜 내 책은 출간되지 않는 거지? 내 작품이 그렇게 부족한가? 답답함과 분노는 점차 무기력함으로 변해갔다. 그는 좁은 고시원 방 안에 들어와 책을 좀 읽다가 다시 노트북을 펼치고 하얀 화면 위에 몇 글자를 적다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자신의 20대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좁고 냄새나는 고시원 방 안에서, 최저임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하는 편의점 안에서, 그리고 출간되지도 않는 소설을 쓰느라고 내 20대가 사라졌구나. 그는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났다. 고향에 있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도시에서 자취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부모님을 보는 건 1년에 두세 번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탐탁찮게 여겼다. 안 그래도 가난한 집안인데 하나뿐인 아들까지 가난한 직업을 택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는 부모님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반드시 작가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반드시 소설가로 성공해서 돈과 명예를 얻으리라. 그는 배고픈 늑대처럼 성공을 갈망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5년 동안 두꺼운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 매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돈과 명예는 20대가 다 지나도록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소설을 출간시켜 주겠다는 출판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초조하게 자신의 젊음을 괴롭히다가 가끔은 분노를 느꼈고, 분노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치면 우울함과 무기력함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몇 가지 오래된 감정들로 마음속을 채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문학에 매달려도 문학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20대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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