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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Aug 01. 2024

4화. 구슬 이야기

<소설구슬> 소설 연재

 “그래서 노예들을 다 풀어줬다고?”

 은찬이 외쳤다.

 “한 명도 남김없이?”

 “응. 내가 딴 노예들은 전부 풀어줬어.”

 태용과 은찬은 밤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대체 그게 다 얼마야?”

 은찬은 아깝다는 듯이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을 보며 태용은 눈살을 찌푸렸다.

 “야, 넌 그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물론 불쌍하긴 하지. 그래도 일부는 풀어주고 일부는 돈으로 바꾸지 그랬어.”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한 짓이야.”

 “그래도...... 너 혹시 노예해방론자야?”

 “당연하지. 넌 아니야?”

 “뭐, 나도 그렇긴 해.”

 은찬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난 그곳에서 노예도박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노예도박은 판돈이 굉장히 크거든. 근데 넌 처음 한 도박으로 아주 큰돈을 땄구나. 그런 걸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한대.”

 은찬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잘했어 태용아. 좋은 일을 한 거야.”

 그러다가 잠시 후 다시 덧붙였다.

 “그래도 좀 아깝긴 하네. 154명이면 아주 큰돈일 텐데. 그 사람들을 다 팔았으면 네가 고시원을 벗어날 수 있었을 거 아냐.”

 그 말에 태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갈림길에 이르러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태용은 어두운 골목을 가로질렀다. 도박장이 있던 휘황찬란한 거리를 지나 그가 사는 동네에 들어오자 평소보다 한층 적막하고 어둡게 느껴졌다. 태용은 아까 자신이 화려한 도박장에서 큰돈을 딴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는 낡고 작은 건물들 사이에 있는 고시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그의 방은 아침에 떠났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항상 느끼던 것이었지만 오늘따라 그의 방이 더 비좁게 느껴졌다.

 태용은 씻지도 않고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다음 날 태용은 휴대폰의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태용은 숙취가 만들어낸 두통을 느끼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삼각 김밥 한 개로 아침을 해결한 뒤 씻고 양치질을 한 다음 작은 가방을 메고 고시원을 나왔다.

 그가 일하는 편의점은 고시원에서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태용은 약간 멍한 상태로 걸으면서 생각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래, 학교에서 내 소설의 합평회가 있었지. 거기서 다온이가 내 책을 혹독하게 깠고, 그 뒤에 술을 마시고 도박장에 갔지.’

 편의점에 도착한 태용은 먼저 온 직원과 교대한 뒤 계산대 앞에 서서 어제 읽다 만 소설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앉아서 책을 좀 읽다가 다시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어제 갔던 도박장의 화려한 모습, 그리고 게임을 하던 순간이 꿈만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편의점 안을 둘러봤다. 아침의 편의점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편의점을 채우는 유일한 소리였다. 다시 지겨운 일상의 시작이었다.

 ‘은찬이는 이런 지겨운 일상을 견디지 못해서 도박을 하는 건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제 은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도박에서 딴 노예들을 팔면 고시원을 벗어날 수 있었을 거라는 말. 노예 154명이면 얼마나 되지? 그는 자신이 딴 노예를 한 명도 남김없이 해방시킨 것이 약간 후회가 되었다. 은찬 말대로 그 중 일부만이라도 돈으로 바꿀 걸 그랬나?

 “에이, 모르겠다.”

 그는 중얼거리면서 다시 책을 읽다가 손님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고 화려한 시간 뒤에 다시 쳇바퀴 같은 일상이 시작되었다. 태용은 그 날 일과를 마치고 편의점을 나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메일부터 확인했다. 출판사 두 곳에서 보낸 거절 메일이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메일함을 닫았다.

 그 날 저녁 내내 그는 다음 소설로 뭘 쓸지 생각하면서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를 쥐어짜내려 애쓰다가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피곤한 몸으로 일어나 일터로 향했다.

 그가 그날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였다. 태용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이태용 선생님이신가요?”

 맑게 울리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유민기라고 합니다. 선생님께 저희 새빛 1단지 사람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새빛 1단지요?”

 태용은 그렇게 묻다가 며칠 전 도박장에서 풀어준 노예들이 생각났다.

 “아, 네. 이제 기억나네요.”

 유민기가 말을 이었다.

 “저희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서 제가 선생님을 직접 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 시간되시나요?”

 “안 그러셔도 괜찮은데......”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죠.”

 태용은 다시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대답했다.

 “제가 매일 오후 6시까지 알바를 하거든요. 그래서 그 후에야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럼 오늘 저녁에 뵙는 건 어떠신가요? 제가 우선 저녁부터 대접하고 싶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네, 좋습니다.”

 “어디에 사시나요?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태용은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의 위치를 알려줬다. 그러자 유민기라는 남자는 알겠다고 한 뒤 이따 보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저녁은 공짜로 해결할 수 있겠군.”

 태용은 기분 좋게 중얼거렸다. 그는 노예들을 모두 풀어준 것이 역시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날 일이 모두 끝나고 태용이 편의점을 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태용 선생님?”

 태용은 뒤돌아보다가 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던 것이다.

 상대방은 태용과 비슷한 키에 인간처럼 팔다리가 달린 이족보행의 로봇이었다. 로봇은 금속 뼈대가 약간 드러나고 온몸이 푸르스름한 빛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로봇의 얼굴에는 눈이 있어야 할 부분에 두 개의 가늘고 긴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곳에서 얕은 불빛이 나오고 있었다.

 로봇이 태용에게 걸어와 물었다.

 “이태용 선생님이신가요?”

 태용은 놀란 와중에도 로봇의 목소리가 아침에 전화를 건 유민기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태용은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대답했다.

 “네, 네. 맞아요.”

 그러자 로봇이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침에 전화 드린 유민기라고 합니다.”

 “아, 예.”

 태용은 그와 악수를 했다. 로봇은 정중하게 허리 숙여 악수를 했다.

 “제가 로봇인 걸 보고 놀라셨군요.”

 로봇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저 움직이는 로봇은 처음 봐요.”

 “하하, 저도 저와 같은 로봇을 박물관 이외의 장소에서는 못 본지 아주 오래 되었답니다. 혹시 저녁 드셨나요?”

 “아니요.”

 “그럼 제가 예약한 식당으로 가실까요? 제 차를 타고 가시죠.”

 로봇이 옆에 세워진 차를 가리켰다. 태용은 얼떨떨한 얼굴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로봇은 조수석 문을 열어준 뒤 운전석에 앉아서 차를 출발시켰다. 운전을 하면서 유민기가 말했다.

 “저는 새빛 1단지 동대표입니다. 노예로 끌려갔던 마을 사람들이 그저께 새벽에 다시 마을로 돌아온 걸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다음 날 바로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돌아온 사람들을 수습도 하고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이제야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도박장에서 저희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셨다면서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태용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 게임을 정말 잘 하시나 봅니다.”

 “아니요, 도박은 어제 처음 해봤어요.”

 “정말요?”

 유민기가 태용을 쳐다보며 말했다. 로봇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금속이었지만 목소에서는 놀라움이 묻어났다.

 “그런데 어떻게 저희 마을 사람들을 모두 구하신 거죠?”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 그런 것이었군요. 저희는 또 선생님이 노예를 해방시켜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도박사인가 했습니다.”

 ‘도박사라면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건 안 하겠지. 나쁘지 않군.’

 태용은 생각했다.

 “그럼 어제 처음으로 한 도박에서 딴 노예들을 전부 해방시켜 주신 거군요? 한 명도 돈으로 바꾸지 않고?”

 “네.”

 “정말 대단하십니다.”

 로봇이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성자와 같은 분이군요.”

 “아니에요.”

 태용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차는 식당 앞에 도착했다. 태용과 로봇은 차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로봇은 미리 예약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태용은 음식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비싼 요리들이었던 것이다.

 “드시죠.”

 로봇이 말했다.

 “전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구경만 할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태용이 열심히 음식을 먹는 동안 로봇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민기라는 이름은 약 천 년 전에 살았던 그의 절친한 친구의 이름이었다. 서쪽 멀리에 있는 기계도시에서 넘어와 인간세상으로 온 로봇은 유민기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되었다. 로봇은 친구가 죽은 뒤 친구의 이름을 따서 인간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직업을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살고 있었다. 태용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로봇이 자신의 기나긴 삶을 요약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질문이 있어요.”

 밥을 먹던 태용이 말했다.

 “선생님은 그럼 몇 년을 살아오신 거죠?”

 “5천년 정도입니다. 이 행성의 인류의 역사와 비슷하죠.”

 태용은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럼 선생님은 이 행성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인류의 모행성인 지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지구?”

 “네. 고대는 자신들이 태어난 최초의 행성을 지구라고 불렀지요.”

 “그렇구나...... 저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우리 행성의 인류는 먼 옛날에 다른 행성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배웠는데, 그럼 그게 사실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지구에는 아직도 인류가 살고 있나요?”

 그러자 로봇은 잠시 침묵하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아닐 겁니다. 우주의 전 인류는 이 행성을 제외하고 대부분 멸망했을 겁니다.”

 그 말에 태용은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끼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로봇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인류는 문명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워낙에 오래된 일이라 저에게도 정보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태용이 밥을 다 먹자 로봇이 차를 따라줬다. 시원한 매실차였다. 태용은 차를 마신 뒤 말했다.

 “또 질문이 있어요.”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고대의 인류가 지구에서 이 행성으로 넘어올 때 로봇이나 기계도 많이 가져왔을 텐데, 그 로봇들은 왜 대부분 파괴된 채로 발견되는 거죠? 로봇은 아주 오랫동안 살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살아있는 로봇은 거의 없잖아요.”

 태용은 순간적으로 유민기의 네모난 눈에서 나오는 눈빛이 흔들린 것 같다고 느꼈다.

 “로봇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전쟁이요? 로봇끼리?”

 “예.”

 유민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저는 그 때 그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서 자세한 건 모릅니다만, 로봇들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태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 생각 없이 저녁을 먹으러 왔다가 인류의 기원과 고대의 숨겨진 진실을 듣게 된 것이다. 그는 신비로움을 느끼며 눈앞에 앉아 있는 로봇을 잠시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로봇의 몸은 수천 년의 세월이 묻어나 군데군데 색이 벗겨지고 약간 녹슨 부분이 있었다.

 유민기는 자신을 보는 태용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지금 어떤 일을 하십니까?”

 마침 그 때 디저트가 나왔다. 태용은 디저트를 먹으며 유민기의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해 줬다.

 “아, 작가 지망생이시군요.”

 유민기의 말에 태용은 살짝 창피해졌다.

 “네. 작가로 데뷔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글 쓰는 거 정말 힘들지 않나요?”

 그 말에 태용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태용은 로봇과 대화를 하다가 어느새 자신의 소설에 대해서까지 얘기하게 되었다. 5년간의 노력 끝에 두 권의 소설을 썼지만 둘 다 합쳐서 600번 이상 거절을 당했던 일, 그리고 도박을 한 날 합평회에서 다온이라는 친구에게 혹독한 비판을 당한 일까지 숨김없이 말했다.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혹은 유민기가 자신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태용은 유민기가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로봇의 다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나 태도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되게 한심한 상태인 거죠.”

 태용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좀 있으면 서른 살인데 여태 작가로 등단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요. 그냥 이렇게 잉여인간으로 살고 있습니다.”

 유민기는 한동안 태용을 빤히 바라보았다.

 “스스로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로봇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신 성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인간보다도 가치 있는 분이에요.”

 “성인 아니에요.”

 태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전 노예해방론자에요. 아마 노예해방론자들은 대부분 그 상황에서 그랬을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살면서 많은 인간을 봤습니다. 선생님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평소에 아무리 열렬하게 노예해방론을 주장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 많은 노예들을 무상으로 해방시켜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태용은 말없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출판사들이 선생님의 글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군요.”

 유민기의 말에 태용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점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제가 글을 못쓰는 것이겠죠. 수백 군데 출판사가 전부 제 글을 거절했는데, 그 모든 출판사들이 전부 좋은 작품을 못 알아보는 바보는 아닐 것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 말에 태용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그 많은 출판사들이 전부 멍청이일 확률과 저 한 명이 글을 못 쓰는 멍청이일 확률, 둘 중에 뭐가 높겠어요? 그냥 제 실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는 합평회에서 다온이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냥 제가 병신인 거예요.”

 “그런 말씀을.......”

 유민기는 그렇게 말하다가 잠시 침묵했다. 한동안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태용은 우울한 기분에 잠겨 있다가 로봇이 왜 아무 말도 안 하나 싶어서 고개를 들었다. 유민기는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로봇이 고개를 들고 불쑥 물었다.

 “선생님은 소원이 뭔가요?”

 “네? 소원이요?”

 태용은 의아해하면서도 바로 대답했다.

 “그야 뭐, 훌륭한 작가가 되는 거죠.”

 “훌륭한 작가?”

 “네. 좋은 작품을 쓰고 성공한 소설가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시는군요.”

 “왜냐하면 매일같이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소원이라기에는 좀 작은 것 같습니다.”

 “아니요, 전 그거 말고는 다른 생각은 안 해요. 그냥 소설가로 성공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바라는 전부에요.”

 유민기는 한동안 태용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왜 그러시나요?”

 태용이 웃으며 물었다. 한참동안 태용을 바라보던 로봇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전 오천년 동안 살면서 수많은 인간을 봤습니다. 이 세상에는 물론 좋은 인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선을 행하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인데.’

 태용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로봇의 말을 끊지 않았다.

 “단순히 선을 행하지 않는 정도면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수많은 악인을 봤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재미를 위해서 죄 없는 사람을 해치고 짓밟는 인간들, 그런 인간들은 저의 메모리 칩에 수없이 각인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한때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혐오감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로봇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수많은 인간들과 부대끼면서 아무래도 저는 기계가 아닌 하나의 인간처럼 무뎌진 것 같습니다.”

 태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인간의 혐오스러운 모습만을 본 것은 아닙니다. 비록 인간의 악한 면을 선한 면보다 많이 경험했지만, 때로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간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더 큰 선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입니다. 선생님은 제가 지금까지 만난 선인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영웅입니다.”

 “그 정도는 아닌데......”

 태용의 말에 유민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선생님은 영웅이고 성인이십니다. 저는 저희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신 선생님에게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과 저의 재산을 모아서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돈보다 선생님에게 더 필요한 것을 제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봇은 태용에게 몸을 내밀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소원을 이뤄드릴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죠?”

 “선생님을 위대한 작가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태용은 눈을 깜박였다.

 “어떻게요?”

 로봇은 검지손가락을 하나 폈다.

 “혹시 소설구슬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소설구슬이라고요? 처음 듣는데요.”

 “네, 당연히 모르실 겁니다.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로봇들밖에 없을 텐데, 아직까지 살아있는 로봇은 거의 없으니까요.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건 제가 지난 5천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태용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먼 옛날, 고대의 인류가 모행성 지구를 벗어나 이 행성으로 이주할 무렵 소설구슬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작고 빛나는 구슬 형태의 물건이었는데, 그것을 삼킨 인간은 위대한 소설을 한 편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딱 한 편만 쓸 수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구슬 하나를 삼키면 위대한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죠.”

 유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의 인류는 소설구슬 몇 개를 발견하고 그걸 삼켜서 위대한 작품을 썼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쓰인 소설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구슬 하나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구슬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한한 힘을 가진 궁극의 구슬입니다. 그것을 삼킨 인간은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지요.”

 태용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무한히..... 위대한 소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작품성, 문학성이 무한히 뛰어난 작품이지요. 무한히 수준 높은 작품성, 무한대의 문학성을 가진 소설 말입니다.”

 “그런 게 존재할 수 있어요?”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무한의 소설구슬’을 삼킨다면 쓸 수 있죠.”

 태용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작품성이 무한히 뛰어난 소설이라니, 그런 건 처음 듣는군요. 잘 이해가 안 돼요.”

 “그럼 쉽게 설명해 드리죠. 소설의 작품성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해봅시다. 일종의 점수 같은 것이죠. 그래서 예를 들어 10 이하의 작품성은 졸작, 11부터 20 사이는 평작, 21부터 30까지는 수작, 31 이상은 걸작이라고 칩시다. 아마 40 정도면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명작일 테고, 50 정도면 인류 문학사 전체를 통틀어서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걸작 정도라고 치는 겁니다. 이처럼 숫자가 커질수록 그 소설의 작품성이 뛰어난 건데, 제가 말한 무한의 소설구슬을 삼킨 사람은 숫자가 무한대인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1억이나 1조, 또는 1경이 아닙니다. 무한대의 소설인 것이죠.”

 “음.....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근데 소설도 엄연히 예술 작품인데 예술의 가치를 그렇게 객관적인 수치로 표현하는 게 가능할까요? 저는 우선 그것부터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든 예시입니다. 물론 예술 작품은 감상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긴 하겠죠. 같은 소설을 읽어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재미와 감동이 다를 테고 읽고 나서 든 생각도 다르겠죠. 소설구슬은 그런 부분까지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술이 아무리 주관성이 큰 분야라 하더라도, 그럼에도 모든 개별 작품들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작품성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이것에는 동의하시나요?”

 “그건 동의해요.”

 “그렇다면 이해하시기 쉬울 겁니다. 무한의 소설구슬을 삼키면 작품성이 무한히 뛰어난 소설 한 권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구슬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걸 찾아서 선생님께 드리겠습니다.”

 “어디 있는데요?”

 “기계도시요.”

 “기계도시?”

 태용은 눈을 치켜떴다.

 “그렇습니다. 지구를 떠난 우주선이 이 행성에 처음 착륙한 곳에 로봇들이 세운 도시죠. 물론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무한의 소설구슬은 지금도 여전히 그 안에 있습니다. 기계도시의 깊숙한 곳에 있는 금고 안에 들어 있지요.”

 “그 소설구슬이라는 건 누가 만든 건가요?”

 그러자 유민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도 인류를 능가하는 어떤 고등 종족이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건가요?”

 “그렇죠.”

 태용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외계인이 그런 물건을...... 그럼 그 외계 종족은 지금도 존재하나요?”

 “제가 알기로는 오랜 옛날에 멸종했습니다.”

 태용은 눈앞의 로봇이 농담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로봇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하지만 물론 로봇의 금속 얼굴은 표정이 없었다. 유민기는 태용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이렇게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시겠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말은 사실입니다. 저는 그 구슬을 직접 보고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먹으면 위대한 소설을 쓰게 해주는 구슬을 말이에요?”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말이죠.”

 “그런 게 있다니...... 그걸 먹어도 괜찮은 거예요? 부작용 같은 건 없나요?”

 “없습니다.”

 유민기가 딱 잘라 말했다.

 “이미 고대의 인류가 구슬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실험도 해봤지만 인체와 정신에는 어떠한 부작용도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근데 외계인이 만든 거라면서요. 그런데 인간이 먹어도 괜찮다고요?”

 “그렇습니다.”

 태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 구슬이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무한히 위대한 소설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소설은 언어로 이루어진 물건인데 언어에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그 책이 무한히 긴 책이 아닌 이상 말이에요.”

 “정보의 양은 한정되어 있겠죠. 하지만 그 정보를 빚어서 만든 예술적 가치는 무한히 높은 수준이 되는 겁니다.”

 “수준이 무한히 높다?”

 “그렇습니다.”

 “흠...... 그러면 무한히 뛰어난 예술 작품을 유한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까요? 좋아요, 그 구슬을 먹으면 가능하다고 치죠. 그런데 무한히 뛰어난 소설을 유한한 인간이 읽고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시죠. 첫째로, 어떤 예술이든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감상자의 안목만큼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한히 위대한 소설이라고 해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느껴지는 정도가 다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소설은 독자의 정신을 어떤 식으로든 ‘상승’시킵니다. 그렇다면 무한히 위대한 소설은 독자의 정신을 무한히 상승시키는 작품이 아닐까요?”

 “무한히 상승시킨다..... 그렇다면 무한히 상승한 정신은 어떤 것일까요? 마치 신과 같은 그런 거?”

 유민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럼 무한히 위대한 소설이란 읽는 사람을 신으로 만들어주는 작품인가요?”

 그러자 유민기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신’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어렵게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미학적 충격과 깨달음, 그리고 새로운 시각을 줍니다. 그렇다면 무한히 위대한 소설은 무한한 미적 충격과 깨달음, 그리고 무한한 시각을 주는 소설이 아닐까요?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좋은 소설이란 어떤 소설인가요?”

 태용은 로봇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한 끝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작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소설은 우선 재미있는 소설이에요. 수준 높은 재미를 주는 소설.”

 “그렇다면 무한히 위대한 소설은 무한히 수준 높은 재미를 주는 소설일 겁니다.”

 유민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가. 근데 정말 그런 게 존재한다는 거예요? 무한의 소설구슬이라는 게?”

 “네.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기계도시 안에 있을 것입니다. 저는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소설가로 성공하길 간절히 염원하시는 선생님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그 무한의 소설구슬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보물이 드디어 올바른 주인을 찾게 되는 것이죠.

 제가 그것을 가져와서 선생님에게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그 구슬을 삼킨 뒤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창조한 예술가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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