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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Aug 01. 2024

6화. 컨테이너

<소설구슬> 소설 연재

 문이 열리는 소리에 태용은 잠에서 깨어났다. 창고 안으로 몇 사람이 들어와 태용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어이, 일어나.”

 태용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뼈 마디마디가 쑤셨다.

 “이 로봇은 어떻게 할까요?”

 그 중 한 명이 물었다.

 “망가졌는데 버리자.”

 그들은 유민기를 들고 창고 밖으로 나갔다.

 “너도 빨리 나와.”

 다른 사람이 재촉해서 태용은 비틀거리며 창고 밖으로 나왔다.

 문 밖으로 나가자 밖에 서 있던 사람 한 명이 태용의 양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는 수갑에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가자.”

 태용은 그들에게 끌려가면서 유민기가 어디로 가는지 눈으로 좇았다. 그들은 유민기의 몸을 구석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 있었다.

 태용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오자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서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가 나온 건물 앞에는 몸이 비대한 대장이 키가 큰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대장은 태용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놈이요.”

 그러자 키다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야, 삐쩍 말랐잖아. 이렇게 말라비틀어진 놈을 어디에 쓴단 말이오?”

 “그래도 어딘가에는 쓸 데가 있겠지. 싼 값에 넘길게.”

 키다리는 지갑을 빼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대장에게 내밀었다. 대장은 투덜거리면서도 지폐를 지갑에 넣으며 말했다.

 “거저나 다름없이 드리는 거요.”

 그러면서 그는 태용을 아래위로 한 번 훑어보며 말했다.

 “노예를 풀어주면서 잘난 척 하더니 노예가 되어버렸군.”

 태용의 수갑에 달린 줄을 잡고 있던 남자가 키다리의 부하로 보이는 사람에게 줄을 넘겨줬다. 그들은 줄을 잡아당겨 태용을 끌고 가더니 한쪽에 세워진 트럭의 짐칸에 그를 밀어 넣었다. 짐칸에는 이미 열댓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태용처럼 손이 묶인 채 앉아 있었다. 태용은 짐칸의 끄트머리에 앉게 되었다.

 남자는 태용의 수갑을 트럭 바닥에 연결된 쇠사슬에 걸더니 자동차를 탁 치며 외쳤다.

 “자, 출발.”

 트럭이 출발하자 태용의 몸이 흔들렸다. 그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 남자는 고개를 들더니 무기력한 표정으로 태용을 쳐다봤다.

 “팔려가는 거요.”

 남자는 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태용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트럭은 반나절을 쉬지 않고 달렸다. 태용은 배고픔과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차를 멈출 방법이 없었다. 그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수갑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수갑이 묶인 쇠사슬을 힘껏 잡아당겨보기도 했지만 두꺼운 쇠사슬을 끊는 것은 불가능했다.

 태용은 결국 지쳐서 고개를 숙이고 앉은 채로 선잠에 들었다. 여전히 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는 깨어났을 때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라면서 잠이 들었다.

 트럭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즈음 태용은 잠에서 깼다. 안타깝게도 그가 처한 상황은 꿈이 아니었다.

 차량 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트럭에 연결된 쇠사슬을 풀어서 잡아당겼다. 트럭 안의 노예들은 사슬에 매달려 줄줄이 차 밖으로 끌려나왔다.

 그곳은 부두였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태용의 머리칼이 흔들렸다. 부두에는 이미 손이 쇠사슬에 묶인 수많은 노예들이 모여 있었다. 일꾼들은 노예들을 몰아서 부두 앞에 있는 여러 대의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집어넣었다.

 태용이 들어간 컨테이너 박스 안은 이미 노예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일꾼들은 그 상태에서 노예들을 더 집어넣었다. 어느새 박스 내부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들어찼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꾼들은 끊임없이 노예들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태용은 숨이 막혔다. 하지만 일꾼들은 계속해서 노예들을 쑤셔 넣었다. 누군가가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일꾼들은 무표정하게 계속 화물을 실을 뿐이었다.

 태용이 이러다가 찌그러져 죽겠다고 생각할 즈음 컨테이너 문이 닫혔다. 순식간에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빛이 사라지자 촉각이 더 예민해졌다. 태용은 자신을 사방에서 짓누르는 타인의 몸과 땀 냄새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컨테이너 박스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는 것 같더니 어딘가에 내려놓는 느낌이 들었다. 컨테이너를 배에 실은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다른 사람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태용은 발밑에서 배가 발진하는 것을 느꼈다. 노예선이 출항을 한 것이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의 시간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몇 시간인지 며칠인지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꽉 짓눌려 있자 태용은 현기증이 났다. 컨테이너 내부는 후텁지근했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태용은 숨을 크게 들이쉬려고 했지만 폐 속으로 제대로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구토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토사물에 맞은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토사물 냄새가 번지면서 태용도 구역질이 났다.

 ‘토하면 안 돼.’

 그는 생각했다.

 ‘여기서 토하면 며칠 동안 내 토사물을 뒤집어 쓴 채로 있게 되는 거야.’

 이런 상태로 얼마나 가야 할까? 이 항해가 며칠이 걸릴지, 어쩌면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태용은 점점 정신이 몽롱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사방에서 짓누르는 감각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이 둔해지면서 미약한 해방감이 들었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태용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렇게 죽는 건 너무 억울한데. 이대로 죽는다면 작가로 성공하지도 못하고 죽는 거잖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작가니 소설이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지금 노예가 되어 팔려가고 있었다. 앞으로 글을 쓸 수나 있을까?

 태용은 눈을 감고 유민기가 알려준 금고의 비밀번호를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그 번호를 제대로 외우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태용은 그 번호를 반복해서 외우다가 점점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는 자신을 잡아당기는 것이 졸음인지 죽음인지 알 수 없었다.     

 태용은 사방에서 울리는 총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컨테이너 안의 다른 노예들도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외쳤다. 총소리가 계속 들리더니 고함소리와 시끄러운 소음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비명소리가 들렸다. 컨테이너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에요?”

 태용이 허공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때 컨테이너 안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해적인 것 같아! 해적이 노예선을 습격했나 봐요!”

 그 말에 다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섞여 시끄럽게 울렸다.

 “해적?”

 태용도 중얼거렸다.

 컨테이너 안이 시끄러워진 것과 달리 밖에서는 소음이 멎고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이윽고 배가 다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노예선과 해적 둘 중에 하나가 이겼나 보군. 만약 해적이 이겼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해적들은 이 배를 어디로 몰고 가는 거야?’

 하지만 태용은 이내 누가 이기든 상관없으니 제발 여기서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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