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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Aug 23. 2021

소를 사랑한 국민화가, 이중섭

소 그림을 통해 본 이중섭의 삶

소를 사랑한 국민화가, 이중섭

‘대향(大鄕)’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부유한 가정환경 덕분에 어릴 적부터 그림을 쉽게 접하게 됩니다. 특히 외할아버지와 함께 평양에서 생활하며 해외 미술 잡지나 서적 등의 새 문물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1928년 개관한 ‘평양부립박물관’을 통해 고구려 고분 벽화를 관찰하며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체화합니다.


이후 신민회의 일원이자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이었던 독립운동가 이승훈이 세운 ‘오산고등보통학교(오산고보)’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이곳의 민족정신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족 고유의 정신을 그림에 담아내는 것을 일생일대의 화업을 삼게 됩니다. 또한 미술교로 부임한 1세대 한국 서양화가 부부 ‘임용련-백남순’을 만나 서구 회화 양식을 배웁니다.


그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시인 ‘구상’은 이중섭의 유작을 ‘유화 200여점, 은지화 300여점’으로 추산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겪으며 많은 작품들이 사라졌고, 실제 전하는 작품은 340여점으로 추산됩니다.



소 그림을 통해 본 그의 삶

소는 어릴 적부터 이중섭의 일상에서 함께 하던 동물로, 소를 관찰하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민족의 정서와 정신을 담는 존재로 소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중섭은 미술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이곳에서도 이중섭은 소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며, 소를 소재로 한 유화와 소묘를 여럿 남깁니다. 그리고 일본 재야전인 ‘자유전’에 대표작인 <소>를 출품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작품으로 <서 있는 소>(1940)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원작이 망실되어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중, 선후배 사이였던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광복 직전 고향인 평안남도 원산으로 돌아와 마사코와 결혼을 하고, 회화 작업을 이어 갑니다. 이후 한국 전쟁 발발로 이중섭과 그의 가족은 부산∙제주도 등으로 피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들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고,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게 됩니다. 이처럼 그는 전란과 이별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여러 대작을 완성합니다.



그림 <흰 소> (1954) ⓒ홍익대학교박물관



이 시기 작품으로 <흰 소>(1954)가 있습니다. 토종 소인 황소를 흰색 소로 표현한 것에서 백의민족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중섭이 도교 유학 시절에 몸담았던 도쿄 유학생 모임의 이름이 ‘백우회(百牛會)’였다는 것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거친 선묘와 역동적인 자세 등을 통해 초인적인 힘, 작가 개인의 감정을 표출 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표현 면에서 서양의 야수파적 감성 뿐 만 아니라 도자기∙고구려 고분 벽화 등 고미술과의 영향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서예적 붓질을 통해창조적인 모습을 만든 점은 서양 회화 양식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줍니다.



그림 <소와 새와 게>(1954) ⓒ네이버 지식백과



또 다른 작품으로 <소와 새와 게>(1954)가 있습니다. 선만으로 꽉 찬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림 속 이빨 빠진 늙은 소는 축 처진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습니다. 소에게 날아든 새는 도움은커녕 뿔을 떼어가려고 하고, 꽃게마저 축 늘어진 소의 중요 부위를 잘라내려 합니다. 기력을 소진한 소의 모습은 밤낮없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그림을 그리는 이중섭과 닮아 있습니다.



그림 <싸우는 소>(1955) ⓒ네이버 지식백과



이처럼 이중섭은 그림 작업으로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지만, 가족을 향한 마음으로 계속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결과 1955년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그는 전시를 통해 많은 작품을 팔아 가족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전시에 대한 많은 호평과 달리 작품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좌절감∙무능함을 겪은 이중섭의 모습은 <싸우는 소>(1955)에 담겨있습니다. 시퍼런 배경을 바탕으로 깡마른 두 소가 싸우고 있습니다. 형제를 정확하게 볼 수는 없지만, 이미 한 마리 소가 거꾸러져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고 또 다른 소는 쓰러진 소를 무참히 짓밟고 있습니다. 이는 시대와의 싸움에서 처참하게 짓밟히며 무너져 내린 이중섭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이중섭은 개인전이 끝난 후, 자신의 남은 작품을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작품은 불태웁니다. 그리고 자신을 자학하며 정신질환∙거식증∙영양실조 등의 병에 앓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이중섭은 병원을 전전하며 힘겨운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이 시기 절망을 반영한 작품으로 <피 묻은 소>(1955)가 있습니다. 푸른 배경을 바탕으로 분노∙슬픔으로 뒤엉킨 두 마리의 소가 극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는 이중섭 개인의 절망∙시련 뿐 만 아니라 전쟁의 암울함 속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림 <덤벼드는 소> (1956) ⓒ네이버 지식백과



이 시기 작품이자. 이중섭의 마지막 그림으로 <덤벼드는 소>(1956)가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초인적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온통 잿빛으로 뒤덮여 뻣뻣한 느낌이며, 화면 밖으로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이처럼 소의 깡마르고 처참한 모습은 이중섭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중섭은 1955년 12월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지도 읽지도 않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식음을 전폐한 채,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중섭에게 ‘소’란?

이중섭은 어린 시절부터 소를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특히 오산고보 재학 시절, 나라를 빼앗긴 슬픈 현실∙민족의 정서와 정신∙민족 존엄성∙한민족의 문화유산을 담는 소재로 한반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축을 주제로 선택합니다. 그 대표적인 에로 ‘소’가 있습니다. 그는 들에 나가 소를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를 그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이중섭은 타인의 삶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소에 자신의 삶∙내면세계를 투영하여 그가 겪은 고난∙아픔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대 모든 이들의 고난∙아픔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즉 이중섭에게 소는 민족의 상징이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소’를 통해 자신의 감정, 20세기 한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국민화가’로 불리게 됩니다.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이현희

사진출처 | 본문 속 이미지 하단 표기

참고자료 |

- 네이버 지식백과

- 조원재,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블랙피쉬, 2020

- 조상인, 「살아남은 그림들 (파란의 시대를 산 한국 근현대 화가 37인의 작품과 삶)」, 눌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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