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뷰에 대해 고민 중.
나에게 인터뷰는 어떤 사람을 만나서 들은 말에 대해 혼자 깊이 생각해 보는 일.
예전에 쓴 글 수정하여 옮김.
추운 날이었다. 2월,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에 어깨며 목이 잔뜩 움츠려 들었다. 인천 동구의 만석 주꾸미 마을. 나와 일행은 주거개선 사업을 앞둔 만석동의 마을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업을 위해 이곳에 왔다.
주꾸미 마을의 '실골목길'로 향하는 도중에 우연히 한 어르신을 만났다. 골목길 중에서도 너무나도 좁은 골목길을 '실골목길'이라고 부른단다. 그 좁은 길 양쪽으로 방 하나가 집 전체인 '하꼬방'이 늘어진다. 실골목길이 얼마나 좁냐면,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비켜줄 수 없을 정도다. 어르신은 날씨가 추운데도 일부러 집 밖에 나와 계셨다. 조용한 마을에 찾아온 낯선 사람들의 인기척을 들으신 모양이었다. 그 어르신은 하꼬방에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인터뷰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와 동행한 지역 활동가와 아는 사이인지,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구청에서 나왔느냐, 여기 길 새로 낸다는 것 때문에 왔느냐고 우리에게 물으셨다. 어르신이 사는 집 앞에 소방도로를 낼 예정이었다.
“나무는 베지 말라 그래. 나무 베어 버리면 못 써. 베지 말라 그래. 내가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말고.”
나무는 은행나무였다. 어르신은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은 암나무고, 저것은 수나무야 하셨다.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나무는 베지 말라 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다. 겨울, 봄, 여름에는 알 수 없고 열매가 열리는 가을에야 암수를 구분할 수 있다. 어린 나무일 때는 알 수 없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 봐야 암나무인지 수나무인지 알 수 있다. 계절이 바뀌고 해를 거듭하는 시간을 같이 보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가 땅속에 뿌리내린 그 모양대로 하꼬방의 실골목길도 힘겨운 삶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을까. 나무가 하늘로 푸른 가지를 뻗어가고, 노란 잎을 수없이 떨어뜨리고, 땅 깊은 곳에서 한 줄기 물을 찾아 뿌리를 뻗어간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은 동일방직에서 북성포구에서 일상을 그리고 일생을 몸으로 살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젠 여기에 없다. 생의 가장 치열한 순간을 보낸 이 공간이 이제는 누구도 새롭게 들어와 살지 않는 초라한 공간으로 남았다. 어르신과 생활을 같이한 아는 사람들은 하나둘 생을 마치고 곁에서 떠나갔다. 하꼬방에 살던 어르신들은 해마다 한두 분씩 돌아가셨다고 한다. 오랜 과거의 공간에서 홀로 현재를 살아가는 이 어르신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아는 사람들은 떠나고, '아는 나무'와 더불어 살고 계시는 어르신은 나무 베지 말라고 크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사람이다. 활동가가 나무는 베지 않을 거라고 어르신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쉽게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지, 나무 베지 말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내게는 아는 나무가 있던가. 아는 나무 지키려고 목소리를 낸 적이 있던가. 꼭 지키고 싶은 내 삶의 흔적이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