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설 용기
머릿속에 있는 글은 완벽하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한 이유는 꾸준히 쓰고 싶어서였다. 몇 달이 흐르니 자괴감이 든다. 이 자괴감의 절반은 자기 반성이다. 이토록 게으르다니! 그리고 나머지는 스스로에 대한 대한 씁쓸한 자각이다. 글을 참 쓸 줄 모르는구나!
어릴 적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잘 썼다, 좋다 해주길 기대했다. 글 쓰는 사람이 멋있기 때문이다. 희미한 기억을 뒤져보니, 학생 때 시, 소설을 즐겨 읽었다. 그 속에는 따뜻한 세상이 있어 좋았다. 아무리 지독한 사연에 있는 주인공이라도 실패가 실패가 아닌 듯했다. 망해도 망한 게 아니고, 죽어도 헛된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이 내게는 따뜻하게 보였다. 작가는 그 주인공을 혼자 두지 않았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작가가 그것을 적고 독자가 그 장면을 목격한다. 그래서 외로움도 외로움이 아니다. 소설이, 시가 내게로 오면 독자인 나도 외롭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글 쓰는 사람이 되어 그 따뜻한 세상에 속하고 싶었다. 또 노래하는 나의 오른손이라거나, 햇살이 마루에 앉은 내 무릎에 살짝 앉았다거나 하는 류의 표현에 심취되었던 탓도 있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건 느낌으로 생각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동안 시 쓴다고, 소설 쓴다고 여러 번 결심하며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키보드는 쉽게 글자를 뱉어내지 못했다. 애써 쓴 것도 형편없고 부끄러워서 이어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니 대개가 완성되기도 전에 폐기됐다. 내가 쓴 글이 어쩌다 내게서까지 외면당했을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럴싸하다. 어찌 잘 풀면 주제도 소재도 훌륭하다. 아직 적지 않았으니까. 생각으로 있을 때, 그러니까 아직 손을 거치기 전, 뇌 속에 있을 때라서 그렇다. 하지만 내가 써놓은 글은 거울 앞에서 마주한 내 얼굴처럼 초라하고 민망하다. 거울을 피하고, 사진을 피하는 것은 확인하기 싫은 탓이다. 그러나 자주 들여다봐야 나는 나를 더 잘 보고 더 멋져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