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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선물

'오늘의 운세'가 아니라 '오늘의 문장'

by 대낮

아는 분께 편지를 받았다.

이분 직업은 편집 주간이다.

편지에는 일 얘기 끝에 갑자기 이순신 장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십 년도 전에 이순신을 연구하겠다며 대기업을 그만둔 분을 알고 있다 했다.

장군은 매일 아침 척사점을 봤단다.

아마도 불안 때문이었겠지.

그 척사점 보는 법을 그분께 전해 들었는데,

얼마 전 뜬금없이 그 일이 생각나 찾아보니 아직 메일함에 있더란다.

그런데 지인은 이순신을 따라 척사점을 보진 않는다고.

아침이면 주위에 쌓인 책 중에 아무거나 꺼내 펼쳐서 눈에 드는 문장을 읽기로 했단다.

그리하여 내게 '오늘의 운세'가 아니라 '오늘의 문장'을 배달해 주신 것이다.


소중한 것을 전부 팔아서 하찮은 것을 마련하는 어리석은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진은영 시인이 시집 "훔쳐가는 노래"에 시인의 말로 적은 문장이다. 아직 이 시집을 읽어보지 못해 검색으로 찾아봤다.


나도 하찮은 일 때문에 소중한 무엇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제 만나서 이야기하며 서로 나이를 비교해 보니 이분이 나보다 열두 살이 많았다. 내가 이분을 알고 지낸 지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 오래전 내가 처음 이분을 만났을 때 이분의 나이는 지금 나보다 젊었다는 의미다. 만나 뵐 때마다 부끄럽다. 이만큼 세월이 흘러가는데 나는 왜 그만큼 성숙하지 못할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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