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채택원고
퇴사 후, 일했던 잡지사 편집부에 독자로서 원고를 보낸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다. 이제 그곳엔 날 아는 사람이 없고, 내 위치는 독자이니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경쟁사(?)에 원고를 보냈었다. 내가 일했던 곳에 보내기는 부끄러우니까.
출판일을 하지 않고 전업 주부로 꼬꼬마랑 생활하니, 처음 하는 육아에 헤매면서도 마음에는 사랑이 넘쳤다. 세상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철마다 변하는 싱그러운 자연이 눈에 들어왔다. 나날이 성장하는 아이의 하루는 모두 '처음'으로 채워졌다. 첫 발걸음, 첫 숟가락질, 첫 흥얼거림.... 덩달아 나에게도 새로운 기운이 들어왔다.
써보자.
나는 컴퓨터에 '쓰자' 폴더를 만들어서 장르 구분 없이 썼다.
시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소설의 한 토막을 쓰고.
그렇게 쓴 글 가운데 한 편을 내가 일했던 잡지사의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월간 샘터에 보냈다.
아이와 보낸 소소한 일상 이야기였다. 한참 뒤에야 연락이 왔다. 가정의 달인 5월호에 쓰려고 원고를 보관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 나도 그럴 때 있었지. 여기는 소정의 원고료를 주기 때문에 무려 '돈'을 받을 만한 원고를 썼다는 것에 기뻤다. 편집자는 매우 꼼꼼한 사람인지, 내 글이 실린 페이지에 포스트잇까지 붙여서 잡지를 보내주었다. 원고도 거의 그대로 실어주어서 편집자로서의 체면(?)이 좀 서는 느낌이었다.
음, 좋다. 또 보내야지.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쓰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아졌지만, 쓸 시간이 더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몇 년 뒤, 둘째를 낳았다. 그사이 큰애는 꽤 자랐다. 책장에서 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가 실린 잡지를 찾아 꺼내 읽고 기뻐할 만큼 컸다. 딱 한 편이지만, 그 글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꼈는지 꽤나 좋아했다.
아이가 둘이면 부모는 공평하게 해주고 싶다. 작은 경험이라도 똑같이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둘째 이야기를 쓰자. 잡지에 한 번 실리면 좋겠는데....
둘째는 출산 과정이 평범하지 않았다. 내가 많이 아팠고 그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바가 컸다.
샘터에서 또 채택이 됐다. 고생한 이야기라 그랬는지 지면도 더 많았다. 그런데 잡지를 받아 읽어보니 몇 군데가 내 의도와 다르게 고쳐진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냥 두었다. 원고를 다시 읽어보며 애초에 더 잘 쓰지 못한 내 탓을 했다.
아무튼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지만 잡지에 원고가 두 번 실리고 나서 퇴사했던 잡지사에도 원고를 보내게 됐다.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었던 건지, 한가했던 건지, 실험정신이었는지 과거 내 감정이 확실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결과는 미채택이었다.
그때의 글 소재는 이사였다. 큰 금액을 대출해서 이사하려고 집을 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다. 택시 아저씨는 자기가 정신이 없으니 좀 양해해 달라고 했다.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갑자기 들어서 나를 태워다 준 뒤 장례식장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만나서 술을 먹었는데 별일 없었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가봐야 알 것 같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이 하셨다. 돈이 사람을 잡는다. 나는 작가가 써놓은 이야기 속에 던져진 주인공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는 접기로 했다. 물론 대출도 쉽지 않아서 별 수 없었다.
이 이야기를 적어서 보냈는데 혹시 작위적으로 보였을까?(읽는 맛이 없었거나.... 켁) 나에게 이 원고가 왔더라도 지어낸 게 아닐까 의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살다 보면 정말 이런 일을 겪기도 한다. 더 오래전 일이지만, 언니와 조카들을 데리고 외출해서 한참을 고생하다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아저씨가 애 데리고 다니느라 애쓴다며 택시비를 안 받으신 적도 있다! 지어낸 것처럼 적절하게, 때론 신이 장난치는 것처럼 가혹하게 느껴지는 일들을 우리는 실제로 겪으며 산다.
그림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평이 갈리지만, 글은 그보다는 일관된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글 역시 보는 눈, 읽는 눈, 뽑는 눈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시나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