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고치기

에세이 작업

by 대낮

편집자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늘 하게 된다.

게다가 나는 외주 편집자니까 더 그렇다.

어젯밤 자려고 누웠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잘하려는 마음,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약간의 스트레스가 되어 잠이 오는 걸 막았다.

새로운 일이 들어오면 대체로 이렇다.


이번에 맡게 된 일의 장르는 에세이이고, 작가는 출간 경험은 있지만 전문 필자는 아니었다.

작가의 유튜브를 보고, 기획안을 읽고, 책의 대강을 파악한 뒤 원고를 읽어 내려 갔다.

일기 형식의 글이었다.

와 재밌다. 발상도 재밌고, 내용도 재밌다.

그런데 고칠 부분은 좀 많아 보였다.

전문 필자가 아니면 대체로 의식의 흐름대로 가기 쉽다.

말의 순서를 고민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부터 해버린다.

나중에 하면 더 짠! 할 수 있는 내용을 흘리듯 초반에 말해 버리는 것이다.


작업을 시작했다.

음, 구슬 목걸이 비유를 쓰면 편할까.

그러니까 나는 작가가 꿰놓은 구슬 목걸이를 모두 풀어 버렸다! 구슬 색을 덧칠하고 얼룩을 닦았다. 구슬의 상태를 살피고 색을 살피고 순서를 체크해서 새롭게 엮었다. 그렇지만 원래 목걸이로 다시 만들어 놓아야 한다! 웬만하면 편집자는 새로운 구슬은 쓰면 안 된다. 꼭 필요하다면 어떤 구슬을 추가했는지 체크해야 한다.


내가 이번에 받은 스트레스는 애써 엮은 구슬 목걸이의 실을 풀어버리는 스트레스다.

한 알 한 알 어떻게 애를 쓰며 엮은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마치 작가가 내 뒤에서 "안 돼!"하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벌벌 떨면서 문장을 만진다.

"다시 잘 엮어 드릴게요."


두 편을 일단 나 보기 편한 대로, 독자 읽기 편한 대로 고쳐 보았다.

혹시 저자의 의도에 벗어난 게 있을까 생각하며 다시 읽었다.

그런데,

'뭐지? 글이 좀 매력이 없어졌네.'

미장원에서 막 드라이를 하고 나온 것처럼 말끔하면서 어색했다.


밤에 작업한 샘플 파일을 오전에 출판사에 보냈다.

나는 고쳐서 너무 술술 읽히면 매력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나 너무 반듯하지 않게, 읽는 느낌이 살게 작업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확인하길 잘했다.


방향이 잡히고 나니 작가의 글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풀어서 멋지게 만들지 하는 생각은 좀 비우고,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꿰었을까에 집중하니 손 가는 부분이 좀 덜했다.


며칠 전, 다른 책 작업을 하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카톡을 보냈다.

"아, 남의 글 만지기가 쉽지 않아. 스트레스야"

확실히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러워서 나온 말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게 맡은 일이기 때문에(!) 의문 나거나 틀린 부분은 모조리 체크해서 메모를 다는 편이다. 거의 대부분 편집자들이 그럴 것이다. 그걸 안 하는 건 업무 태만이라 벌벌하면서도 할 수밖에 없다!

친구는 이런 대답을 보내왔다.

"나는 내 글인데도 그래."

그래, 새로 쓰는 건 더 스트레스겠지.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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