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대환장 파티, 교정교열

오타만 아니면 된다고?

by 대낮

1. 도대체 몇 번이나 봐


처음 내 기사를 썼을 때, 회사에선 왠지 집중이 되지 않아 집에서 썼다. 주말 사이 궁리궁리하고 끙끙 대며 글을 완성하고 나니 쳐다도 보기 싫었다.


월요일, 메일로 보내둔 기사를 마치 받은 원고인 것처럼 열어보았다. 음... 고쳐야겠군. 문단을 다시 짜고 내용을 보충하고 표현도 바꾸고 긴 말은 압축하고 글의 흐름을 점검했다.


점심을 먹고 와서 처음부터 한번 끝까지 읽은 뒤 프린트해서 편집장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얼마 뒤 화장실 다녀오니 기사가 돌아와 있다. 앗! 빨간 펜. 한두 문장이 사족이라고 빠졌고, 맞춤법에 틀린 것도 있다. 알맞은/알맞는 같은 헷갈리는 녀석이었겠지. 지적받은 문장을 삭제하고, 연결이 자연스럽게 수정한다.


맞춤법 검사기를 한 번 돌린다. 수정할 내용이 없단다. 편집장님 드리기 전에 진작 돌릴 걸, 후회하며 디자인팀에 넘긴다. 교정지가 왔다. 양이 넘친다. 두 줄을 줄여야 한다. 원고지 매수를 소수점 한 자리까지 맞췄건만, 문장 끝나고 남은 여백에 차이가 있어 이런 경우가 생긴다. 원고를 수정한다.


선배 편집자에게 수정된 원고를 준다. 여유가 있다면 편집실의 모든 편집자가 그 원고를 한 번씩 교정 본다. 그 사이 더 적절한 조사, 더 알맞은 형용사, 적합한 부사 등으로 문장이 수정된다. 의미가 모호한 문장엔 물음표가 달린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뜨아! 어렵게 두 줄 줄인 거라고요.) 그 문장은 보충하고 다른 문장에서 덜어낸다. 이렇게 한번 거치면 1교다! 디자인팀에서 교정 내용에 맞게 수정했는지 확인해서 수정된 원고를 또 보고, 읽을 때 수정 사항이 있으면 다시 적는다(2교). 이 과정을 한 번 더 거치고(3교), 디자이너 모니터를 함께 보며 3교 교정사항이 제대로 수정되는지 확인한다(오케이교). 예전에는 필름 확인, 대지(인쇄된 종이) 교정도 있었다.


대체로 출판사에서 펴내는 책은 전체 3교(부분 수정은 횟수가 무제한), 오케이교를 거치지만 이후에는 이렇게까지 꼼꼼한 점검은 받지 못했다. 선배 편집자들이 한 번씩 보는 과정을 거치는 건 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


담당 편집자라면 오케이교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은 표지 작업과 출간 준비 홍보 준비 때 더 편집자를 긴장시키기도 한다. 이 과정을 성실한 편집자가 모두 진행했더라도, 책이 출간되면 어디서 불쑥 오타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오타 자연 발생설'이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볼 필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어차피 나올 거... 스읍. 내 생각에 기본은 1인 3교다. 최소치가 그렇다. 여러 해 동안 여러 편집자들이 그 정도는 봐야 했기에 그렇게 정해진 것 아니겠는가.




2. 오타만 아니면 될까


연차가 좀 생겨서 기획사에 과장으로 입사했는데, 교정교열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아래 직급의 편집자들은 대놓고 교정교열은 잘 모른다고 했다. 기획사는 일이 많고 일정이 빡빡해서 꼼꼼한 교정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클라이언트사의 담당자가 그만큼 완벽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읽기에 말 되고 오타만 없는 수준으로 고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아, 그렇다면 저도 땡큐죠. 한 번 읽어보면 되겠네요.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일반 독자 대상의 단행본을 출간하기로 했다. 이 책은 그러면 안 되지 싶어, 나 혼자 3교를 보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른 일감을 던져주고 싶은 상사가 내게 링크를 보내왔다. 맞춤법 검사기였다. 이걸로 한 번 훑으면 되지 않겠냐고. 아,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 막막했다. 그 이후론 기억이 가물하다. 싸웠던가. 그 책 판권엔 내 이름을 넣지 않았다. 하하.


요즘 작업할 때 1교 끝나면 맞춤법 검사기를 돌린다. 1교는 수정이 가장 많으니, 1교 전에 돌리면 이후에 수정한 것은 점검이 안 된다. 그러니 1교 끝나고 원고가 정돈된 이후에 돌리는 것이다. 맞춤법 검사기는 내가 놓친 오타나 비문, 맞춤법 실수를 잘 잡아주는 나의 훌륭한 동료이다.


최근에 맞춤법 검사기가 찾은 오타를 예로 들자면, 짝궁, 증학교가 있다. 1교를 읽을 때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이런 오타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오타가 나오면 편집자들은 수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을 얼른 열어 본다. 누가 틀린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낸 오타인지, 문장을 수정하다 내가 저지른 실수인지! 이후 2교, 3교는 오타가 없다는 가정 하에 수정에 신중을 기한다. 꼭 고쳐야 할 때, 고쳐야 더 훌륭해질 것 같은 곳을 맞춤법, 사전 확인 후에 고친다.


이렇게 맞춤법 검사기가 잘 찾아준다면 2교, 3교는 뭘 고치는 걸까? 후훗, 2교에도 오타는 나온다! 최근에 찾은 2교의 오타는 재밌는(?) 내용이었다.


"최초의 교복은 치마저고리와 두루마리였지요."


위 문장에서 '치마 저고리'라고 띄어 쓰는 실수를 했다면 맞춤법 검사기가 찾을 수 있겠지만, 두루마리는 맞춤법 검사기에게 오타가 아니다. 두루마리를 두루마기로 고치라는 표시를 하고 원고를 확인한다. 작가의 오타였다. 그런데 1교 때 내가 못 걸렀던 것. 두루마리를 감고 등교한다고 쓰여 있는데도 안 보일 수 있다.


더 예를 들면 '영동군'이 '영국군'으로 표기된 경우(타자를 빠르게 치다 보면 다음 글자의 초성이 앞 글자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말할 때 버벅거리는 것처럼), 큰소리/큰 소리, 다음 날/다음날 처럼 둘 다 맞지만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들을 잘 거르지 못한다. 이런 건 어떻게 쓰든 의미는 통하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빌려간 다음날까지 갚지 않을 경우 이자를 부과하겠습니다."


이렇게 엄한 말로 경고를 한다 해도, 다음날은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이기 때문에 언제 갚아도 이자는 받을 수 없게 된다.


맞춤법 검사기도 다 못 골라내는 걸 편집자가 다 알고 있긴 어렵다. 그리고 편집자라면 자기가 알고 있는 걸 믿으면 안 된다(?). 아는 말도 사전에 넣어 봐야 안전하다. 편집자라고 표준어법에 맞게 말하고 쓰는 건 아니니까. 알던 거라도 틀릴 확률이 높다. 나 같은 경우 댓글, 카톡, 메일 등 일상에서 틀리게 사용해도 크게 마음 불편해하지 않는다. 언어는 원래 그렇다고 받아들인다(나도 자주 틀려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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