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지적질
오늘 고우리 편집자가 쓴 "편집자의 사생활"을 읽었다. 편집자도 다른 편집자의 사생활이 궁금하다(큭).
공감 가는 부분도 있었다. 50쪽이다.
"작가가 '지적질'을 일삼아 하는 편집자로부터 상처받지 않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적질을 생산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내 코멘트를 100퍼센트 기꺼이 받아들이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내가 그것을 원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100퍼센트 편집자가 아니니까. 다만 나의 의견을 제시할 뿐이고, 그가 내 의견에 대해 반박할 줄 안다면 나는 비로소 안심한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까지 그가 깊이 생각하여 원고를 썼다는 것을 잘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그는 편집자를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사실 외주 편집자는(교정교열만 하는 경우는 더욱) 이런 면에서는 더 편하다. 일차 점검이 끝난 원고를 받고, 작가와 직접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적질'을 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
예전에 "내용 전개가 논리 정연하지 않습니다"라고 메모를 단 적이 있다. 고민 끝에 지적한 것이다. 물론 메모에 적는 단어도 조심하지만, 결국 지적하는 거라면 뭐라고 적어도 기분이 나쁠 수 있다. 한 단락만 보면 무리 없지만 단락끼리 이어질 논리적 근거가 부족해서 저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다. 이는 표시된 부분(밑줄이든 형광펜이든)에만 해당한다는 점이다. 글 전체가 엉망이라는 말이 아니다. 글 전체가 엉망이고 글솜씨가 형편없다면 출판사에서는 아예 출판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을 고쳐서 더 훌륭하게 가자는 의미다.
이런 메모를 여러 개 달아서 넘길 때면 책임 편집자가 저자와 조율하면서 안 좋은 말이 오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긴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작가들은 편집자가 자기편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저자'의 위치에서 취할 건 취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한다.
"내용 전개가 논리 정연하지 않습니다"라고 메모를 달았던 부분은 내 의견이 반영되었다. 하지만 이때 내가 달았던 모든 메모가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 '대화가 가능한' 저자라면 더 좋은 책을 만들고자 하는 편집자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커진다. 하지만 그 대화의 통로를 저자가 막는다면, 사장도 아니고 편집장도 아닌 편집자는 '그래. 어차피 내 책도 아닌데, 작가님 맘대로 하세요'라며 일을 쉽게 진행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땐 이건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빨간 글씨로 표시하기도 한다. 주로 의견이 아닌 정보가 틀린 부분에 빨간 줄이 간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에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도움이 될 거라는 문장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초등학생은 단원평가나 쪽지 시험 외에는 시험이 없습니다"라고 메모를 달 수 있다. 저자가 확인하고 문장을 수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소설에서 이야기의 배경을 어느 소도시라고 했는데, 사건이 전개되는 와중에 갑자기 특정 지명이 불쑥 나온다면 작가의 실수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
의견이라도 편견이면 조심스럽게 물어봐 고칠 수 있다. 이 장면은 편협한 시각으로 비칠 수 있다고, 독자의 입장에서 말해 준다. 예를 들어,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다. 온갖 첨단과학, 생명과학이 등장한다. 그런데 장애인은 여전히 의수, 의족을 하고 다니는 것으로 그려진다. 무심코 현재에 익숙한 모습이 껴들어간 것이다. 이 부분이 의도한 설정인지, 다른 데 신경 쓰다가 실수로 놓친 것인지 체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독자는 '작가가 장애인의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구나'라고 오해할 수 있다.
'초고의 굴욕'에서 썼듯이 작가마다 출판사에 제출하는 원고 상태가 제각각이다. 이번에 넘긴 원고에 달린 메모는 모두 아홉 개였다. 일반적인 교정 교열은 빼고 반드시 작가에게 물어보고 수정해야겠다 하는 부분만 세어봤을 때 그렇다. 치명적인 실수는 없었다. 여러 권 출간한 작가답게 기존에 작업한 다른 책들에 비해 준수한 편이다. 수십 개씩 달리는 경우도 있다. 한 단락 전체가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자잘하게 틀린 부분이 보이는데 혹시 틀린 게 아닐 수 있어서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가 완성도 떨어지는 원고를 주거나, 실수를 너무 많이 하면 편집자가 피곤하긴 하다. 하지만 지적질은 편집자의 여러 일 가운데 하나다. 또한 지적질하는 편집자가 창작자의 영역을 침범하면, 그러니까 선을 넘으면 작가에게 역으로 편집 일 그렇게 하지 말라는 지적을 당할 수도 있다. 편집자가 여러 작가와 작업하는 것처럼, 작가 역시 여러 편집자를 만나기 때문이다! 작가와 편집자가 '책의 완성'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간다고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잘 팔리는 책을 써 주는 작가라면 환영, 괴발개발 쓴 원고도 '포장의 신' 편집자가 맡아준다면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