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버드나무/ 이은영

by 이은영

나무는 물의 깊이를 읽는다

나이테의 간격을 지나 푸른 파동을 긁으면

뿌리내린 발자국이 고요를 덧댄다

아찔한 물의 꼭짓점에는 접질린 길이 있고

잠시 현기증이 비틀거린다

물에 뿌리를 내린 초록 우듬지가

출렁거리는 회전을 하다 제 자리를 찾는다

그늘이 깊어지고 가풀막을 잇는

땅과 구릉이 닿는 면과 면

어스름이 짙어져

오후의 빛을 삼켜버린 벽이

모두 제각각 자신의 몸을 접는다

반으로 줄어 작아진 여백에

늙은 달빛이 몸을 구겨 넣는다

휘어지고 꺾인 풍파,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늘에는 읽다가 접어 둔 오래된 이야기가

책갈피 사이에 꽂혀 있다

기억은 표정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물을 오르내리는

나이테, 둥근 무늬는

열린 세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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