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노래
루체른에서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우린 취리히로 이동했다.
스위스에 와서 처음으로 엄청 추웠다. 시내투어를 한다고 해서 가볍게 입고 나왔는데 웬걸 너무 추워 덜덜 떨며 시내를 돌아다녔다. 3년 전 재림이와 함께 취리히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잘츠부르크에 여름 음악캠프를 왔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 7시간 기차를 타고 취리히에 왔었다.
3일간 있으면서 다른 도시는 가 볼 엄두도 못 내고 취리히 카드를 사서 취리히 근교와 시내를 기차 트램 지하철 유람선까지 무제한으로 타고 돌아다녔다. 살인적인 스위스 물가를 생각할 때 탁월한 선택이었다. 식사는 호텔에서 조식만 든든하게 먹고 나머지는 햄버거 하나씩 먹으며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특히 알프스가 보고 싶어 무료 기차 구간인 쥬크까지 갔지만 알프스의 낮은 봉우리만 살짝 봤을 뿐 우리가 기대한 알프스는 보지 못해 내내 아쉬웠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루체른은 가 볼 엄두도 못 내고 취리히 호수에서 유람선을 원 없이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때 비록 알프스는 못 갔지만 취리히 호수에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들이 너무나 그림 같고 예뻐서 3일 내내 주구장창 무료로 유람선을 탔다. 호수가 얼마나 맑고 깨끗하던지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꼭 다시 와 보리라 했던 스위스를 지금 다시 와 있다.
이번 패키지여행 일정은 취리히는 잠깐 스쳐가는 구간이어서 그때 유람선을 타고 취리히를 둘러보지 않았으면 많이 아쉬웠을 뻔했다. 언니에게 취리히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커피를 마시며 그림 같은 호수마을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나 어쨋던 쯔빙글리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교회도 가보고 시내투어도 하고 취리히 호수를 보기는 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시내를 투어 할 동안 얼마나 춥던지 난 목도리를 머리까지 둘러쓰고 쏘냐가 되어 돌아다녔다. 가이드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너무 좋은 날씨에서 여행했는데 이게 원래 스위스의 겨울 날씨라고 했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날 마지막 여정인 독일에서의 아침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편안하게 여행을 다녔는지 깨우쳐 주었다.
취리히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생갈렌으로 이동했다. 라인 폭포를 보기 위해서였다. 버스 안에서 잠깐 추운 몸을 녹이며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풍경들을 눈에 담아 보았다.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알프스도 한 번만 더 보고 가고 싶은데 오늘 오후엔 독일로 넘어간다. 5일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패키지여행을 하며 이렇게 마음 맞는 좋은 분들과 여행한 것도 너무 감사하고 마태 호른과 리기산 정상을 다 보게 해 준 날씨도 새삼 고맙다. 아니 이 모든 환경 뒤에 우리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스쳐 지나가는 스위스의 풍경들을 보며 깜박 잠이 들었는데 차는 어느 세 생갈렌 라인 폭포에 도착했다.
라인 폭포! 거대한 폭포는 아니었지만 완만하게 펼쳐져 있는 라인 폭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폭포는 너무나 장엄하면서도 고요했다. 가슴이 확 트여오는 폭포 앞에서 우린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절경을 즐겼다. 파랗게 반짝이는 물결을 따라 그 속에 수많은 물고기가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언니는 연신 사진을 찍으며 감탄을 연발했다. 폭포 뒤에 둘러 있는 낮은 고성들 폭포 밑 호숫가를 따라 쭉 들러 친 나무 테크 길을 걸으며 듣는 폭포 소리는 스위스 여행의 백미를 장식해 주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백조 한 마리가 호수에서 올라와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떡하니 앉아서 같이 사진도 찍고 귀찮게 하지 말라며 고개를 박고 졸기도 해서 한참을 그 녀석과 실랑이를 벌이며 웃었다. 마치 자기 구역 인양 사람을 무서워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한참을 웃었다
라인 폭포에서 마지막 스위스의 절경을 눈에 담은 우리는 생갈렌 마을로 이동해 점심을 먹었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식사다.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신선한 야채와 샐러드 오이 감자와 당근 브로콜리 피망 등이 골고루 나오고 찍어 먹을 수 있는 치즈도 곁들여 나와서 뒤에 나온 스테이크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감자나 야채들을 그냥 살짝 익혀서 나온 단순한 요리인데 치즈에 찍어 먹으니 고소하고 담백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시형이 엄마랑 한국에 돌아가서 이렇게 응용해서 요리해서 먹으면 참 건강식이 되겠다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이날 또 밀로 만든 맥주가 이곳 특산품이라고 해서 시형이 어머니가 아주 큰 잔으로 사 주셨는데 그날의 요리와도 너무 잘 어울려 대낮에 음주가무(?)를 했다. 그 많은 맥주를 다 마시고 나온 요리도 거의 다 먹어 정말 배부른데도 신기하게 속은 부대끼지 않았다. 스위스에 와서 식사 때마다 와인 아니면 맥주를 마셔서 졸지에 우린 술꾼이 다 되었다. 한국에서 먹지 않는 술을 스위스에서 매일 마셨으니 평생 마실 술을 이번 여행길에 다 마신 셈이다.
암튼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우린 즐겁게 마치고 마지막 일정인 생갈렌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옛날 수도원에서 직접 필사한 성경과 여러 다른 책들이 보관되어 있는 생갈렌 도서관 내부를 관람하며 사람이 필사한 책이 어떻게 그렇게 정교할 수 있는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들을 보며 한 자 한 자 성경을 필사한 수도사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이 말씀을 필사하며 주님과 어떤 영적인 교통을 가졌을까? 한 말씀 한 말씀을 필사해 나갈 때마다 주님과의 교통도 더 깊어졌으리라.
도서관 창가에 있는 이동식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잠시 책을 보며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도 느껴보고 도서관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이 그려진 아주 커다란 성경책도 읽으면서 생갈렌 도서관 내부를 돌아다녔다. 나무 바닥이 미끄러워 발을 질질 끌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도서관 투어를 마친 우리는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수도원과 성당 도서관 외부를 돌면서 마지막 스위스의 모습들을 가슴에 담은 채 우린 드디어 버스를 타고 독일로 향했다. 독일까지 3시간 정도 달려야 국경을 넘는다니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점점 바뀌어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스위스 여행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