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새암<<내 어머니의 샘>>
자연요법으로 갑상선을 치료한 그 일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세상의 모든 병이 약으로만 고쳐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달으며 그때부터 대체의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갑상선은 완치되었지만 가끔씩 고기를 먹으면 소화불량이 심하고 특정 음식물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어 불편할 때가 많았다.
그 무렵 사상 체질이 한참 사회 이슈로 떠오르며 체질의학이 유행이었다. 체질에 따라먹는 음식도 다르며 병의 치료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했다. 나도 내가 어떤 체질인지 궁금해 체질에 대한 많은 책들을 읽어 보고 음식물에 대한 테스트를 해 보기 시작했다. 체질에 관한 특징은 각 체질마다 공통분모가 있었고 성격도 타고난 성품과 후천적 성격이 섞여 있어 외모나 성격만으로 체질을 구분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사상 체질을 8 체질로 발전시킨 서울에 있는 ○○○ 박사님의 병원에 직접 가 보기로 했다. 그 당시 ○○○ 박사님께 체질을 진단받으려면 예약하고 몇 주를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 박사님을 처음으로 만난 날, 자그마한 체구에 조용한 성품이신 ○○○ 박사님은 내 맥을 잡아 보시고 몇 가지 질문을 하신 후 수음 체질이라고 진단해 주셨다. 그리고 수음 체질이 먹어야 할 음식 분류표를 주시며 한 달에 두 번 정도 침을 맞으러 오라고 하셨다. 수음 체질이 먹어야 하는 음식들은 평소 내가 즐겨먹는 것과는 정 반대의 음식들이 많았다 또 2년 가까이 먹던 녹즙이 속이 차가운 수음 체질에겐 맞지 않다며 항상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먹을 것을 권했다.
내게는 닭고기와 찹쌀이 좋다고 해서 자주 먹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소화불량 증상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얼굴엔 때 아닌 여드름이 극성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체질 식이 이 세상 최고의 학문인 것 같아 밤낮으로 체질에 관한 책을 읽으며 체질 전도사가 될 정도로 체질식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이 체질 식이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 수음 체질에 맞는 음식이 대부분 위장 장애로 찾아왔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불량이 왔고 피부가 가렵거나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그래서 ○○○ 박사님의 제자가 하는 부산의 다른 체질 한의원에 가서 다시 체질을 감별해 보았더니, 이번에는 정반대의 토양 체질이라고 하셨다. ‘아, 그래서 음식이 위장 장애를 일으켰구나!’ 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번엔 토양 체질의 음식과 운동 생활방식을 따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몸의 컨디션은 썩 좋아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 박사님의 책과 체질에 관한 다른 책들을 찬찬히 비교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성향과 음식물의 반응을 꼼꼼히 체크했다. 박사님의 책에서 분류해 놓은 체질과 임상 사례를 체크해 볼 때, 나는 금양인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았다. 육식을 할 때마다 나타나는 소화불량과 금양인의 금에 대한 반응을 소개해 놓은 임상 사례가 내 경우와 비슷했다. 그 무렵 금니를 하고 나서부터 알 수 없는 어지럼증이 나타나,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갑자기 핑 돌아 넘어진 적이 몇 번 있었다. 게다가 난 유난히 정전기를 잘 느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금양인의 금지 항목인 금니를 제거해야 할 것 같았다. 비싼 돈을 주고 했던 멀쩡한 금니를 제거해 달라니 치과에선 난감해했지만 금니를 없애고 나자 빙빙 도는 현기증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해 겨울, 잦은 감기 때문에 체질침을 맞았는데 뒷골이 조금씩 당겼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침을 맞을수록 뒷골이 너무 자주 당겨 더 이상 맞을 수가 없었다. 몸이 너무 불편해서 다른 체질 한의원에도 몇 군데 가서 진맥을 다시 받아 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의원마다 다른 체질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분명 체질이라는 게 있기는 한데 정확한 체질 진단은 다들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한의원마다 체질에 접근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고 음식 분류표도 모두 달랐다.
내 성향이나 평소에 앓아 왔던 병들, 그리고 음식물의 반응을 보면 금양인에 가장 가까운데 한의원마다 다른 체질을 이야기하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체질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이슈로 체질 한의원이 많이 생겼지만 체질 맥을 정확히 집어내는 것은 쉽지가 않아 보였다.
사실 성격이라는 것은 타고난 성품에 후천적으로 조성된 생활습관도 섞여 있어 성격과 외모만으로 체질을 진단하는 것은 상당히 무모해 보였다. 물론 특정 장기의 허와 실이 어느 정도 외형과 성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체질을 확정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았다. 사상체질에서 제시하는 외양과 성격을 보면, 나는 소음인에 상당히 가깝다. 그러나 내적인 성향과 음식물의 반응을 보면 난 금양인의 음식을 먹을 때 가장 몸의 반응이 건강하다. 그러나 사상체질에서 금양인은 태양인인데 이 태양인은 극히 드물어 한의원에선 태양인은 거의 없다고 했다. 난 몇 번의 체질이 바뀌며 혼란스럽고 확신이 없어 이 체질의학이 제대로 연구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당분간 체질에 대해서는 내려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