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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희 Apr 05. 2021

딸부자집

갯새암<<내 어머니의 샘>>


        

우리 엄마는 딸부자이다.

위로 셋이 한 그룹이고 밑으로 셋이 한 그룹이다. 막내와 큰언니는 나이 차가 제법 난다. 원래 중간에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잠깐 세상에 왔다가 빨리 주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 후 엄마는 다시 아들을 낳기 원했지만 딸만 셋이 연달아 더 태어났다. 아들을 낳지 못해 엄마는 시집살이도 많이 해야 했다. 큰아버지 댁에는 아들이 둘이나 있었는데 딸만 여섯인 엄마는 할머니의 눈치도 많이 보아야 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항상 딸들인 우리를 최고로 사랑하셨다. 아버지는 막내가 태어나고 한 달 만에 돌아가셨으니 사실 밑에 세 명의 동생들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어릴 때 세 명의 동생들은 언니와 내가 대부분 업어 키웠다. 사실 언니와 나도 어렸는데 애가 애를 키운 것이다. 어릴 때 동생들은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서도 밝고 예쁘게 자라 주었다.


 가난한 살림 가운데서도 엄마는 항상 우리에게 정성을 쏟아부으셨다. 가끔 한 녀석만 고추를 달고 나왔음 얼마나 좋았냐고 농담도 하셨지만 그래도 열 아들 부럽지 않다고 웃곤 하셨다. 우리도 엄마에게 “엄마 아들이 많으면 나이 들어 구루마 타고 다니고 딸이 많으면 비행기 타고 다닌대요” 하며 맞장구를 치곤 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나이 드셔서 구루마를 타고 다니지는 않지만 여전히 구루마를 끌고 고구마 밭에 물 주러 다니셔서 어릴 때 우리가 한 말은 별 효과가 없게 되었다. 가난하고 힘든 삶이었지만 우리 자매는 엄마의 바람대로 잘 커 주어서 다 자기의 짝을 찾아 시집을 갔다. 서울, 인천, 강원도, 전라도, 부산으로 다 흩어져 전국구가 되었지만 다행히 언니는 김천 엄마 곁에서 살아 아들 역할을 해 주었다. 

         

우리 육자매가 엄마 집에 모이면 마당에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숯불을 피워 한쪽에선 삼겹살을 굽고 또 한쪽에선 철마다 가리비나 굴 새우 고등어 등을 구워 먹곤 했다. 우리가 하도 웃고 떠들며 고기와 생선을 구워 먹어서 우리 집이 시끌시끌하면 동네 사람들은 저 집에 또 딸들이 왔나 보다고 부러워하셨다. 생선 굽는 냄새에 동네 고양이들도 담장 밑에 몰려 들 때면 우리는 마무리 음식으로 엄마가 직접 밀어서 만든 칼국수를 즐겨 먹었다. 애호박을 듬뿍 넣고 칼칼한 양념장을 한 숟갈 넣어 먹는 칼국수는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엄마 표 음식이었다. 고기를 구워 먹고 나면 남은 숯불엔 꼭 고구마가 익고 있었다.   

        

딸 여섯에 사위들과 손주들까지 다 오면 시골집은 북적거려 정신이 없었다. 밥도 다 같이 먹기엔 방이 비좁아 우린 모였다 하면 으레 마당에 숯불을 피워 놓고 고기를 구우며 왔다 갔다 하며 눈치껏 배를 채웠다. 옛날 어릴 때 삼대가 살던 우리 집의 풍경이 우리가 모일 때마다 재현되고 했다. 큰댁의 오빠들까지 가족을 데리고 와서 함께 모이면 우리 집은 그야말로 잔칫집 같았다. 엄마는 우리가 올 때마다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시고 계속 뭘 해 먹이셨다. 어린 날 우리에게 마음껏 먹일 수 없었던 아픔이 남아 있는지 우리가 다 커서 자식을 낳아서 가도 엄마는 항상 우리에게 맛난 것을 해 주고 싶어 하셨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마당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먹으며 우리는 엄마의 기억 보따리 속에 있는 우리의 어릴 적 얘기들을 즐겨 듣곤 했다. 매번 듣는 얘기들을 우리는 늘 처음 듣는 것처럼 깔깔거리며 듣곤 했다. 나중엔 사위들도 우리의 어릴 적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 엄마가 조금 틀리게 얘기하면 “에이, 장모님 그게 아니잖아요” 하고 거들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비록 엄마는 아들을 못 낳으셨지만 딸들은 대부분 다 아들을 낳아 엄마의 소원을 풀었다. 우리는 모이면 옷도 서로 바꾸어 입어 보고 다 커서도 엄마 앞에서 누가 제일 예쁜지 물어보며 어린 날로 돌아가기도 했다. 우리가 어릴 땐 아들이 없어 한 번씩 서운해하셨는데 지금은 딸이 많아 친구 분들이 부러워하신다며 자랑하셨다. 장미 넝쿨이 예쁜 시골 우리 집엔 딸부자인 우리 엄마가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들과 함께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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