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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Nov 17. 2020

Moo'tice

#05, 다시 일상 하지만 비상

그렇게 열정을 쏟았던 #사업 이 무산이 되어버리고 난 후, 나는 무엇을 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했을까?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를 실패했다. 첫째, #결혼. 둘째, #사업. 즉,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2가지를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평소에 하던 일들에 대해서도 의욕을 잃었다. 그나마 몸을 극한으로 몰아부쳐야 하는 #오래달리기 를 행할 때, #고통 을 잊을 수 있었고, #현실 을 벗어나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간의 아주 찰나간의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그 끝에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시간은 나의 가슴을 깊숙이 찌르는 칼이었다. 마치, 달리고 난 후, 잘 벼려놓은 칼이 내 가슴을 여러번 찌르는 듯 했다.


하지만 내 가슴에서 피는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 어떤 흉터도 있지 않았다. 남들은 확인할 수 없는 상처였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울 수도 없었다. 그냥 웃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괜찮은 척 해야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쉽게 대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또한, 주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가는 일이었기에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괜찮을 수 있어?"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그에 대한 내 답은 한결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맞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콘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범주였다. 그래서 나는 당연시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켠으로 되뇌고 있었다. 그러면서 '#현실이다.'라는 생각을 지속했다. 심적 고통이라는 것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한다면 평생 극복할 수 없을 것이었고,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내재하고 있었다.


"도망치기 보다는 맞서자. 맞서서 이겨내자. 그래야 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나를 거리를 두고 봤을 때, '참 불쌍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혼자서 이겨내려고만 노력해왔던 나였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에게 이전에 말했던 "안 괜찮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안쓰러운 나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나는 잠이 들기 전 '내 손'으로 '내 배'를 토닥여줬다. 배에서 나는 그 '통통'거리는 소리는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줬다. 그 행동이 살아내고자 하는 나의 처절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했다. 겨우 그 '#통통'거리는 소리에 의지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힘든 시기를 버텨왔다. 집이 워낙 가난하여 무엇하나 하고 싶은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하고 싶은 일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결국, 그 마음가짐이 습관이 돼, #꿈이 없었다. 현실에 맞춰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소풍도 마음 편히 가지 못했다.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갈 때면, 입장권을 끊곤 했다. 그래서 그때 입장권 가격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3,000원이었다. 지금 내게는 아주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지만, 그때는 세상 그 무엇보다 무거운 돈이었다. 그 안에 내재된 감정과 생각은 '우리집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돈도 용납할 수 없어'였다.


그렇게 입장권을 끊고 들어간 후, 나는 친구들의 자유이용권을 #구걸 아닌 구걸을 했다. 힘들어서 쉬는 아이를 찾아가, "나 한 번만 탈게"라는 쑥스러운 말을 던졌다. 물론, 그때는 당당했다. '너 안 타니까, 내가 좀 탈게!'라는 뻔뻔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 뻔뻔함 덕에 내가 타고 싶은 놀이기구도 마음껏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그런 가난함에도 난 우리집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이 내게 관심을 주는 것에, 두는 것에 감사해 했다. 그런데 난 이때 처음으로 비겁해졌다. '우리집이 가난해서 이렇게 된 거야'라는 아주 나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나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 아주 나쁜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떨결에 하소연을 하게 되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대상에게 말이다. 그렇게 나는 미련하고도, 인생에 가장 큰 후회를 남기는 일을 하게 됐다.




내 꿈이 새롭게 태어난 것은 대학교 입학 후 1년만이다. 정확히 1학년 2학기 때, 나의 은사님을 만나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고, #연구자 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을 공부했고, 정확히 10년 만에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다. 즉, 꿈을 #포기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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