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흔한스타트업 #좆타트업
한 줄 요약
- 퇴사를 한다는 건 무슨 이유에서건 회사에 불만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나는 퇴사했다..
✍️ #01, 오전 10시 15분, 자그마한 오피스텔 안
우리는 매일 정해진 루틴에 따라 업무를 시작한다. 나는 가장 먼저 출근해 데이터를 정리하고, 정리된 데이터를 정성적인 데이터로 변환한다. 그렇게 변환된 데이터를 팀원 모두가 볼 수 있는 구글 드라이버에 업로드 한다. 물론, 확인하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 아니, 그마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가 맡은 업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과거에는 안 그랬는데, 어느 샌가 우리 모두가 파편화돼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람이 많은 스타트업은 아니다. 5인 이하 규모의 스타트업이며, 각자의 성장을 위해 애자일과 OKR을 도입한 흔히 말하는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스타트업'이다.
흔히 말하는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스타트업은 애자일과 OKR을 제대로 하고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우리는 애자일을 지향한다. 애자일이 하라는 '유형'은 다 따라한다. 내재화는 글쎄(?) 잘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만약 애자일이 대표님의 생각을 신념을 마음에 새기는 거리면 말이다.
우리는 애자일을 지향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10시 15분에 데일리 스크럼을 한다. 데일리 스크럼의 주목적은 누구나 알듯 '대표에게 보고하는 형태'로 진행한다. 각자 한 명씩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가며 말한다.
대표님이 먼저 말씀하시는데, 일종의 훈화 말씀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해냈는지 등에 대해서는 짧게 말한다. 사실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개발자가 자신의 업무를 말한다.
"모달에 대한 내용과 컴포넌트 수정했고, 대표님이 요청한 일정에 맞춰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 기획에 대한 IA나 기능정의서, 플로우차트나 와이어프레임 나왔나요. 대표님?"
우리 회사는 대표가 기획자이며, PM이기 때문에 위 내용들을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대표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디자이너를 바라본다. 그리고 한 마디 한다.
"디자이너님 이전에 제그 A4 용지로 그려줬던 대략적인 내용 아직 있나요? 아니면 이전 버전 피그마에 제가 적어서 전달한 내용 정리해서 개발자님에게 주시겠어요?"
디자이너는 갑자기 얼굴에 물음표를 떠올린다. A4용지는 받은 적도 없고, 피그마에 적어준 내용은 한 줄 짜리 이상한 코멘트이기 때문이다.
"대표님 A4 용지는 받은 적 없고, 피그마는 한 줄 짜리라 기능정의서라 할 수 없어요. 더 자세하게 적어서 만들어 주셔야 해요. 더불어 플로우차트도 기획해서 주시겠어요?"
디자이너는 대표가 기획과 PM을 맡아서 하고 있기에 당연한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대표는 자존심이 상한 듯 갑자기 언성을 높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분명히 전달했는데, 그게 왜 없어요? 플로우차트? 이전에 같이 이야기했던 내용과 과거에 만들었던 내용 확인하면 되잖아요. 이미 그 플로우를 다 아는데 무슨 플로우 차트예요?"
대뜸 높아지는 언성과 어이없다는 대표의 반응의 디자이너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한번 더 반박을 하려고 했으나, 대표의 표정에서 질 수 없다는 표정이 드러난다. 결국 디자이너는 포기했다는 듯 말한다.
"아, 과거에 이야기했던게 다 우리 제품의 플로우라는 거죠? 그리고 이전에 만들다가 망했던 그 제품의 플로우와 같은 형태를 따르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디자이너의 한발 빼는 말과 표정에 대표는 정색한 표정을 살짝 풀더니 대답한다.
"네, 맞아요. 제가 이야기했던 내용들 다 기억하고 있으시죠? 그렇게 해주세요. 기한은 개발자님의 스케쥴에 맞춰서 전달해 주세요. 개발자님 대략적인 기한 잡아서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내용 전달하면 언제쯤이면 다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갑자기 개발자에게 제품 개발 완료일을 물어본다. 그 흔란 와이어프레임 하나 전달하지 않고 말이다. 이에 대해 개발자가 반박한다.
"아니, 적어도 와이어프레임을 주셔야, 제가 확인하고 개발할 수 있는 날짜를 러프하게 잡을 수 있어요. 그거 안 주시면 저는 상상으로 개발하고, 상상으로 일정을 짜야하는데 말이 안 되는 거죠."
대표는 개발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아니, 그러니까 언제까지 기획안을 줘야, 개발일정을 끝낼 수 있는지 대략적인 일정을 말해달라는 거예요. 그 일정을 짜주셔야 제가 디자이너님한테 자료 받아서 넘겨드리죠."
개발자는 대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수 없다. PM은 대표고, 전체 일정을 대표가 짜서 알려주고, 개발자는 제품 개발 일정을 짜기 위해 자료를 달라고 하는데, 일정을 짜주면 자료를 준다고 한다. 개발자는 어쩔 수 없이 말한다.
"그럼 대략적인 일정을 짜서 넘겨드릴게요. 오차범위는 최대 플러스 2주가 될 수 있어요. 그만큼 러프하게 짜는 거니까요."
대표는 알겠다는 듯이 수긍하고 넘어간다. 아직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말이다. 그 외 마케터와 경영지원 업무하는 직원은 별 이견없이 보고하고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대표가 한 마디 더한다.
"오늘도 우리 힘내요. 각자 맡은 바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우리는 스타트업이라는 점 잊지 말자고요! 화이팅!"
그렇게 데일리 스크럼이 끝난다.
______
#번외
Q. '위에 보면 전혀 데일리 스크럼의 방식과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방법인데요. 왜 이렇게 하고 있죠?'
A. "응? 데일리 스크럼은 그게 아니라고요? 우리는 대표님이 그게 맞다고 하는데요? 제가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한 열번은 말했는데, 그게 맞다고 했어요. 자기가 어떤 글에서 봤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데일리 스크럼을 슬랙 #dailyscrum 페이지에 적고 있어요. 마치 매일 회의록을 적듯이 말이에요."
Q. '오 그럼 각자 했던 일, 할 일, 공유할 업무 내용, 함께 해결할 업무 내용'과 같이 협업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나봐요?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데요?'
A. "네? 각자 아젠다를 미리 공유하고 협업을 통해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해 데일리 스크럼을 한다고요? 우리는 그냥 어제했던 일 대표님에게 보고하고, 다음 할 거 대표님에게 보고하는 데요? 그리고 그 내용 대표님이 자기 입맛에 맞는 형태로 작성하던데요? 한 단어로 표현하면 #dailyscrum 페이지는 '대표의 입맛대로 쓰는 보고서'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