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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Dec 30. 2020

Moo'tice

#29, 우리가 아닌 우리


송정집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은 여전히 대기중이었다. 그나마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 나는 애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 다른 한 곳을 쳐다보기 전까지 말이다. 그곳은 쳐다보지 말아야 할 곳이었다. 감히 내가 쳐다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그 사람'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회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친구들이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며 도망가기 싫었다. 또한,  그 사람은 다른 남자와 함께였다. 그래서 더욱 도망갈 수 없었다. 


나뉘어진 공간 속에서 '우리가 아닌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은 더이상 내가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었고,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내게는 죄가 됐다. 그 사람과 나는 더이상 '우리'라는 말로 묶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태연한 척 할 수밖에 없었다.


절로 가는 시선을 억지로 돌리며 한 공간을 쪼개고 쪼개어 둘로 나누려고 했다. 그 결과 내가 둘로 나뉘어 한 공간을 점유한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나와 그 사람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 나로 말이다. 그러다가 나를 돌아보니 정말 한심했다. 이미 끝난 관계인데 나 혼자 억지로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금세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내가 안절부절하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보였었나보다. 


"너 왜 그래? 똥마려우면 화장실이나 다녀와. 밥 먹기 전에 한 번 비우고 와. 그러면 더 맛있겠지 ^^"


정말 더러운 말을 쉽게 하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나 또한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넘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친구들의 가벼운 농담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덕에 그 사람에게서 관심을 떼게 됐다. 잠시나마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니 2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무의식 중에 그 사람을 찾아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많이 지나 그 사람이 없어졌을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과 달랐다. 그 사람은 여전히 앉아있었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점점 우리가 들어갈 차례가 다가왔다. 그 사람과 마주치기 싫었는데, 어쩌면 마주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각오를 했다. 어떻게 그 사람을 대할지, 아니 어떻게 그 사람을 무시할지 말이다. 그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서 돌렸다. 나 혼자 머릿속으로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빨리 그 사람이 떠나가라고 속으로 빌었다.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우리가 들어갈 차례가 왔다.




ps. 그 사람의 표정은 세상 무엇보다 환했다. 여전히 아름답고 이쁘다고 생각은 했다. 하면 안 되는데 떠올랐다. 절로 말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사람을 쳐다보려고 했던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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