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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Jul 21. 2021

꽃잎점

  여덟 살이었다. 아빠 회사의 가족 동반 회식 자리에서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로 시작하는 노래를 정성껏 불렀다. 그건 아빠를 구하려는 작전이었다. 아빠는 노래를 못했기 때문이다. 아빠하고 나하고는 꽃밭을 만든 적이 없었다. 노래에 나오는 채송화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박수 칠 준비를 하고 앉은 회사 사람들 앞에서, 아빠가 만들어 준 적 없는 꽃밭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빠는 늘 집을 떠나 있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빠는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멀리 일하러 갔고, 열 밤씩 여러 번 자고 나면 선물과 함께 집에 온다 했다. 엄마의 말대로 아빠가 돌아왔는데, 아빠는 내리 잠만 잤다. 아빠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한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아침마다 잠자는 아빠 위로 점프하고, 얼굴을 잡아당겨 보았다.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는 특별한 사람이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인형의 집도 사 왔지 않은가.     


  아빠에게 매달리기에는 내 덩치가 너무 커버렸을 때였다. 아빠는 역시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식탁 위는 따뜻했지만, 대화가 없어서 공기는 무거웠다. 아빠의 동료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에서 뷔페 음식을 먹게 되어 설레었다. 집에서처럼 말없이 음식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아빠는 동료에게,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얼마나 외로운지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를 따돌려 놓고 염치불구한 채 음식을 얻어먹는 중이었던 거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얗고 둥근 뷔페 접시에 얼굴을 처박고 들어가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아빠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 것이 화가 났다.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가졌다. 집에 들어갈 일이 줄었고, 아빠를 만날 일은 더욱 줄었다. 간혹 마련하는 가족의 시간은 삐걱거리며 끝이 났다. 나는 그때마다 상심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아빠가 우리를 위해서라면 눈 한쪽도 빼어주고, 팔다리도 잘라줄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아빠의 사랑을, 누군가 사지를 절단하거나 눈알이 빠져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래도 잔혹한 장면을 그려 보았다. 나를 사랑하는 아빠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서.     


  퇴직한 아빠는 시골로 가서, 나 없이, 꽃밭을 만들었다. 텃밭도 있고, 잔디밭도 있다. 나는 주말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찾는다. 아빠는 마중하는 인사도 않고 마당만 돌본다. 아빠 뒤에서, 잔디밭을 걸어본다. 맨발에 자갈 하나 걸리지 않는다. 날 사랑해서 이리 곱게 골랐을까 생각한다. 아빠가 텃밭을 바라본다. 날 주려고 키운 채소들이 잘 자라나 지켜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다음 주에 찾아온다는 아빠의 옛 동료들에게 보여주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럴까 봐 묻지는 않는다. 아빠의 꽃밭에는 채송화가 핀다. 채송화는 꽃잎이 참 많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무수히 점칠 만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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