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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Jul 22. 2021

내가 똥통에 빠졌는데

기억이 난다. 마실가는 할머니를 따라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길이었다. 훌라후프만큼 동그랗고 얕게 팬 땅을 딛고 폴짝 뛰어보려 했다. 땅이 아니라 똥이었고 얕지 않고 깊었다. 나는 쑥 빠졌고 와중에 한 발이 어딘가에 걸쳤고 그 때 할머니가 달려와 나를 건졌다.

 


, 똥통에 빠졌슈-.” 할머니가 대문을 들어서며 외쳤다. 오빠들이 툇마루에서 벌떡 일어섰다. 대야에 찬물을 담았다가 비웠다가 가마솥 더운물을 날랐다가 야단이었다. 나는 명절이라 입은 벨로아 원피스가 똥범벅이  것을 차마 내려다볼  없었다. 오빠들은 나를 씻긴  수건에 꽁꽁 싸안고 툇마루에 앉았다. 추우면 아랫목에 눕혀야지  툇마루에 안고 있나. 서른 훌쩍 넘어도 장가를     오빠들은 방에 앉을  없었을 거다. 안방에는 아버지 항렬의 사람들, 사랑방에는 할아버지 항렬의 사람들이 종일 드나들며 서울 가서  하는지, 장가는   가는지 물었겠지.   아들들에게 툇마루란 어른들 오실  바람직하게 인사도 하고, 불러 앉힐라치면 신발 정리도 하고, 곤란하면 다과를 나르고, 그마저도  일이 없으면 처마 끝으로 시선을 보내 골똘히 존재를 숨기는 장소였겠다. 툇마루에 내리 이틀을 앉아 있는데 막내 사촌이 똥범벅이 되어 들어섰다. 개똥 형제가 약에 쓰일 시간이다. 섬돌만 내려서면 옛집의 수돗가는 원형극장이 된다. 형은 우는 아이 옆을 지키고 동생은 더운물을 나르고. , 형은 옷을 빨고 동생은 마른 옷을 입혔다. 형제는   쪽도 나누어 먹는 심정으로 무대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툇마루에서 나를 안고 똥통 소리를 스무 번은 했다. 똥통에는 내가 빠졌는데.

 


“얘 똥통에 빠졌잖아.” 아빠가 사랑방 손님들에게 말했다. 아빠는 서울에서 회사도 다니고 부인과 자식도 데려왔으니 방 안에 앉아도 되었겠다. 다만 그러느라 똥통에서 살아나온 딸을 살필 기회를 툇마루 조카들에게 빼앗겼다. 사건에서 이미 멀어진 아빠는 똥통에 관련된 무슨 말이라도 해야 내 아빠인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빠가 나만큼 어렸을 때, 친구 동생이 사라져서 마을 어른들이 모두 찾아 나섰단다. 해 질 때까지 찾지 못하자 어른들은 키를 훌쩍 넘는 장대로 똥통을 젓더니 아이 시신을 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깊고 무서운 곳에 내가 빠졌는데 아빠는 뭐 하는 건가. 다음 명절에도 똑같은 다과를 먹으며 똑같은 얘기나 나눌 사람들 앞에서 똥통에 빠진 아무개 이야기라도 떠올라서 신이 난 건가. 그 뒤로도 아빠는 “얘가 똥통에 빠졌잖아.”로 말문을 열고는 똥통에 빠져 죽은 아기가 주인공인지 그걸 목격한 아빠가 주인공인지 모르겠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했다. 내가 똥통에 빠졌는데.

 


“나 똥통에 빠진 적 있어.” 아홉 살이 되었을 때 하굣길 친구에게 말했다. 이렇게 따뜻한 날, 이렇게 나란히, 이렇게 오랜 시간 걷고 있는데, 나와 존재를 함께 하는 친구에게 이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수줍게 고백했다. “뭐? 똥에? 우웩!” 친구는 그때부터 멀어져 걸었다. 다 씻었다고 말해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따뜻한 날씨는 식은땀이 되고 집에 가는 길은 후회로 지루해졌다. 아빠의 고향 마을은 6・25 때 공산당도 지나쳤고, 그보다 옛날에는 박해를 피한 천주교인이 숨어들었다 했다. 시대의 격변조차 닿지 못한 똥통은 훗날 X세대로 불린 나에게까지 오고 만 것이다. 아빠의 동네를 벗어나서 친구에게 3년 전의 똥통을 말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그 친구는 이후로 나와 함께 걸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난 똥통에 빠졌었는데.

 


“그때 니가 똥통에 빠져 갖구선.” 엄마가 6인 병실의 끝 침대에 누워 말했다. 밤새워 놀려는 친구처럼 서로 손을 잡고 새벽까지 소곤거리던 중이었다. 의사는 내일 보자고만 말했지만, 그 내일이 몇 번 남지 않았고 그도 별수가 없다는 것을 우린 알았다. 기억이 난다. 할머니 손을 잡고 대문을 들어설 때, 명절 내내 아궁이 앞에만 있던 엄마가 부엌 문턱에 잠시 섰다. 내 꼴을 위아래로 훑고 달려드는 시조카들을 보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기억이 난다. 똥통에 빠져 죽은 아기를 보았다는 아빠의 목소리가 창호문을 넘을 때 부엌에 있던 엄마가 사랑방 문을 벌컥 열고 외쳤다. “그런데! 그때 죽은 똥통을 아직도 안 막았단 말이야?” 똥통에 빠진 일은 남과 나눌 수 없으니 감기 걸린 일만큼도 못 된다고 어느새 지워버린 나는, 마흔이 훌쩍 넘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부엌에서 일만 하고.”

 


내가 똥통에 빠질 때 부엌에서 일만 하게 만든 모두를 원망했던 사람이 있었구나. 나는 똥통을 잊었는데 그걸 나보다 오래 기억한 사람이 있었구나. 나는 똥통에 빠졌어도 이렇게 잘만 살아있는데 나를 놓친 잠깐을 죽어가면서도 후회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내가 똥통에 빠졌는데, 당신이 내 엄마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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