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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Jul 10. 2022

신고하세요. 0486-0486

학부모라서

“너 그러면 남자들이 싫어해.”

“여자 없으면 술자리가 칙칙해서.”

20대에 불편한채로 듣고 살았던 말이 어느날 폭력으로 규정되더니 신고하라는 안내도 따른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들었느냐에 따라 신고번호가 다르다.

국가인권위원회 1331

여성긴급전화 1336

고용노동부 1522-9000

어린 사람들에게 그건 네가 견뎌야 할 말이 아니라고 분명히 알려주는 사회가 되어서 좋다.


40대가 되었다. 정지우 작가의 신작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가 나왔다. 내용은 보지도 못했는데 제목이 병따개다. 부모 되고 15년 간 듣고 삼키고 삭히려던 말들이 우르르 흘러 나왔다. 말들은 하나도 소화되지 않았다.


“애 밥 세끼 다 먹이시나요? 성장이 왜 이렇게 더디죠?”

“자식 학교 생활이 걱정되면 너부터 피부과를 가고 옷을 사 입고 가방을 들어.”

“보통 차 마시러 오라고 하고 애 들어갈 그룹을 봐. 그래서 인테리어는 좀 필요해.”

“그 여자도 공부만 하느라 세상 물정 모르고 답답한 소리만 하더라구요.”

“요즘 시대에 집에서 노는 여자들 수준은 좀 떨어진다고 봐야지.”

“학원 선생님이 더 가르쳐 준다고 하면 감사하다고 해야지. 왜 고민을 해? 자기 상황을 알아야지.”

“너가 자식 영어교육 망쳤다.”

“나는 우리 애 공립학교 버려진 애들한테 섞이진 않게 하려고.”


20년 전에는 없었던 신고번호를 가만 보면 고용주와 노동자, 여성과 남성, 상사와 부하 같은 입장의 변별이 읽힌다. 부모끼리 주고 받는 폭력과 비하와 혐오의 말들은 입장이 같아서 신고가 어려운걸까? 이웃간의 실갱이는 드라마에선 경찰서로 가던데 드잡이를 해야만 갈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조용히 ‘그 말, 신고합니다.’ 만 하고 싶은데. 번호는 생기질 않고 이런 말을 백 여든 세번쯤 더 들으면 자아가 대패삼겹살처럼 깎여 나가고, 결국 누군가의 머리 끄댕이를 잡고 흔들지도. 그러니 번호는 ‘사랑해-사랑해’면 좋겠다. 네 눈 앞에 아이 키우는 사람을 사랑해 달라고. 사랑해, 사랑해,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네이버에 신고번호를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은 군인과 학생은 외부 기관이 아닌 군인권센터와 교육청에 신고하게 되어 있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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