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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Aug 04. 2022

생각이 많아지는 토마토쨈

딸이라서



땅 사서 집 지으려는데 암반이 나왔다는 얘기처럼

내 마음에도 암반이 있다. 드드드드드. 꽝! 뚝. 만사를 그치게 하는 속절 없는 암반덩이.


의도적으로, 그러니까 내 마음에 정직하려고 아빠에게는 연락을 잘 하지 않았고 또 못하였다. 

아빠와 나 사이의 거리를 통화로 가로지르려 할 때마다 그 아득함에 화가 좀 났다.

‘그렇게 멀리 혼자 있어도 자식이 저절로 클 줄 알았잖아. 아빠는 건너 온 적이 없잖아.’

아픈 마음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며칠이 훌쩍 지났다.


뜸해진 채로, 아득한 채로, 그러다 연락을 ‘안’한다 할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불쑥 아빠를 찾았다.

여름비를 맞은 아빠의 마당은 초록

옹기 항아리에 곧추선 연꽃은 분홍

가지가지 주렁주렁 고추보다 많다

도라지꽃 정원틈에 반짝. 또 반짝

2도어 냉장고에서 아빠가 꺼내 놓는

가지무침, 오이김치, 부추김치

식탁위에 달가닥. 툭! 탁.

가지는 무르지 않아 곱고

늙으려다 만 오이는 아삭파삭

부추김치는 유튜브 남의 집 맛


“너 이거 가져가라.”

치워진 식탁 위에 아빠가 마지막에 꺼낸 건 토마토쨈. 토마토쨈?

“그게 뭐야?”

“응, 토마토 쨈이야.”


이름이 무어든, 맛이 어떻든.

아빠의 재료는

잡초뽑은 마당이고

황토부은 옹기이고

지지대 세운 텃밭이고

쪄서 가른 가지무침이고

속을 파낸 오이김치이고

요리유튜버의 부추김치이다가

또 토마토 쨈이 되고 만 것.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토마토를 칼집 내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기고

작은 덩어리로 썰어

설탕을 넣어 저어가며 끓이면,

토마토 쨈이 된단다.

아빠가 내게 전화를 안 하는 동안 만든 것.


내가 하는 전화는 사랑이고 아빠가 하는 전하는 훼방인가. 

나는 미워서 참고 아빠는 자식이라 참았나.


내 집 식탁에 놓인 토마토쨈.

투명하기도 탁하기도 한, 붉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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