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숙녀로 숙녀에서 엄마로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딸. 여자친구. 아내. 엄마. 며느리. 시누이. 시동서. 워킹맘. 전업주부. 돌싱맘. 언니. 누나. 여동생 …
어느 범주에 당신이 서있던지 당신은 존재자체만으로도 소중합니다.
육아, 학업, 가사노동과 경제활동을 모두 해내기에 벅차다 못해 지친 나를 두고 본인의 일이 힘들다며 육아와 가사노동은 주말에만 하겠다고 일방적 통보를 하다 싸우고 본인이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니 아이를 자기 가족들에게 맡기고 나도 본인도 한 달 쉬자는 이상한 제의를 하며 집을 나간 남편이 양심이 찔린 건지 걱정은 됐던 건지 친정엄마에게 연락을 하여 하시던 일까지 내려놓으며 딸을 돕기 위해 함께 우리 집에 있은지 일주일째.
몸도 마음도 우리를 키울 때와 다르게 연로해지고 나약해진 친정엄마가 체력적으로 힘겨워지자 감정적 폭발을 일으켰다. 유감스럽게도 나 또한 그런 그녀를 받아줄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닌지라 부딪힘이 강렬히 일어났다. 그 와중에 답답해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위해 가다 옆집 어머님을 마주했다.
우리 엄마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는데 같은 60대이지만 조금 더 연세가 있으신 옆집 어머님이 손주들에게 저녁을 만들어주기 위해 장을 보고 오시는 길에 마주쳐서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
옆집 어머님은 2월에 배우자분을 암으로 보내시고 마음이 힘들어 불면증을 겪으시면서 동네 근처 산을 맨발로 걸으시며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하셨다. 항상 밝고 단단해 보이셔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놀랐지만 덤덤한 그녀의 말에 친정엄마와 말동무가 되시면 어떨까 싶어 제안을 해보았다.
극 외향인으로 보이는 쿨한 어머님의 동의에 육아를 도우시며 신체적 노화와 한계를 느껴 힘겨운 엄마에게
좋은 동네 친구분을 만들어드리고 함께 대화도 하고 옆집끼리 오며 가며 지내실 수 있으면 하고 바라본다.
오늘 어머님께 그 힘든 상황을 어떻게 에너지 넘치는 손자 2명까지 케어하시면서 보내고 계시냐고 여쭈어보았더니 씩 웃으시며 시원시원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려니 해야지"
이 한마디가 이해도 안 되고 수용하기 힘들었던 나의 일부 상황들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관점을 주어서 왠지 모르게 힘이 되는 오늘.
나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마음이 힘들 때 나의 힘겨움을 극복하고 있음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며 쿨하게 반응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 가기를
그런 나를 나의 딸이 보면서 힘든 역경이나 고난을 겪을 때 담대하게 잘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