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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 인간 Oct 04. 2024

누군 처음부터 잘했나요?

열한 번째 이야기; 새로움, 변화가 필요한 순간

잘 산다는 것은 역할 노릇을 잘하는 것 같다.

그런데, 처한 위치에서 제 역할을 척척 해내며 산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 역할이 생에 처음이라면 더욱 난감하다. 평소 교육을 잘 받았거나,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겠지만. 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역할은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는 남편 노릇, 아내 노릇, 아버지 노릇, 어머니 노릇이 그렇다. 사회생활에서도 사원 노릇, 간부 노릇, 임원 노릇, 사장 노릇이 그렇다. 그 모든 역할을 처음 맡게 된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함께하는가? 그래서 사람노릇 하면서 사는 게 제일 어렵다.


"숙성이고 나발이고 좋은 고기가 맛있습니다."

체인점으로 보이는 집 주변 고깃집 간판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좋은 재료로 요리를 해낸다면 뭔들 맛이 없겠는가? 문제는 내가 그렇게 좋은 재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숙성이라도 잘해서 재료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부모를 둔 가정에서 잘 자란 자녀는 성인이 되어 서로 성장을 돕는 남편과 아내가 되고, 정서적 안정감을 갖춘 부모과 된다. 또한, 좋은 인사정책을 두고 인재를 선발하여 육성하는 회사라면 새로운 직책을 맡더라도 시행착오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선발된 인재도 썩 좋은 재료가 아닐뿐더러 인재 육성도 세련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나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변화는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뭐든 새로운 역할이나 직책을 맡으면 쉬운 방법을 택했다. 그동안 성과를 만들던 방법을 재현했던 것이다. 업무 방식도 그랬고, 조직관리 운영도 엇비슷했다. 나름 인정도 받고 검증까지 되었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생각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성과는 유지되나 조직관리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고 그에 걸맞은 인격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 예견된 결과였다. 결혼을 했으니 따스한 남편이 될 거라는 착각, 아이를 낳았으니 넉넉한 아버지가 될 거라는 착각, 승진을 했으니 리더십을 갖춘 팀장이 될 거라는 착각. 그 어떤 역할도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오랜 기간을 들여 돌 깨기 작업을 통해야 역할에 걸맞은 사람노릇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뭐든 숙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회사 주변에 승진하여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된 선후배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어떤 분들은 시간이 흘러 자리를 잘 잡아 승승장구하고, 1~2년 내 자리를 내려놓는 분들도 흔하다. 내 경험에 비춰 그 차이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찾은 답은 '자기 객관화'였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분들은 자기 개방도 없지만, 내부의 파열음도 듣지 않는다. 새로운 직책에 힘겨워하는 후배들이 내게 조언을 구할 때면 내 경험을 들려준다. 네가 겪고 있는 고민과 고충은 당연한 것이라고. 잘 해내려니 고민되는 것이고, 그 방법을 모르니 고충이 생기는 거라고. 처음부터 척하고 어울리듯 해내는 사람은 없다고.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다만, 시간을 보낸다고 자연스레 숙성되는 것이 아니니 주위에 도움을 청하라고 일러준다.


숙성이 잘 되려면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힘들어하는 후배들과 조직관리에서 오는 고충을 나누다 보면 대부분 종착지는 비슷하다. 성장과정에서 내면에 쌓인 정서적 경험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보이는 인간관계의 본질적 패턴이 가정에서도 엇비슷하다는 것까지 알고 나면 모두들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정리가 된다. 내 경험에 비춰봐도 나 역시 비슷한 힘듦을 갖고 있기 때문에 후배들과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어떤 방법으로든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정서적 경험의 반복된 패턴을 자각하게 된다면 지금의 고민과 고충을 해결할 수 있다. 내 경험에 비춰 자신의 정서적 패턴을 자각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 '자기 객관화'다. 자기를 기꺼이 개방하고 타인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지금도 무엇이든 처음 해보는 역할은 힘겹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툶을 인정하고 주위에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청한다. 그리고 타인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아직도 내가 찾지 못한 내면의 정서적 패턴을 찾는다. 누군들 처음부터 잘 해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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